"엄마가 마흔다섯이에요? 와! 곧 있으면 할머니네."
큰 아들이 엄마의 나이를 듣고 버릇없는 말을 내뱉습니다.
원래 실언이 많은 아들입니다.
그런 언행 때문에 종종 훈계를 하기도 했지만 이젠 그마저도 내려놓았습니다.
성인이 된 아들, 가르치기보다 사랑 안에서 서서히 떠나보내기로 아내와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이 더 가관입니다.
"그때까지 지겨워서 어떻게 살아요. 나는 50살 되기 전에 죽었으면 좋겠다."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엄마도 듣고 있기 거북했는지 타이르듯 분명한 어조로 아들의 실언을 받아쳤습니다.
처음엔 철없는 아들의 어처구니없는 생각처럼 들렸지만
찬찬히 시간을 되돌리자 내 스무 살 즈음 언행이 떠올랐습니다.
나도 딱 그 맘 때, 그런 생각으로 살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적당히 살다가 늙기 전에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들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나를 닮긴 닮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부모 앞에서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다니
경이로운 용기와 무지성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한 마디 툭 던져 넣고는 아들은 친구들과 재밌는 시간을 보낸다며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 한마디는 부부에게 고민거리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철없는 아들 녀석의 세상살이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싶었지만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우리 부부의 인생에 대한 성찰로 변했습니다.
"당신은 지겹지 않아?"
"당신이 옆에 있는데 지겨울 게 있겠어?"
"뭐야? 좋은 뜻이지?"
"몰라. 알아서 생각해요."
"우린 몇 살까지 살까?"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힘들대요. 그런 거 따지지 말고 일단 밥이나 드세요."
아내도 이제 많이 늙었나 봅니다.
대화의 주제와 상관없이 결론은 잘 먹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이상한 부분에서 우리 엄마와 꼭 닮았습니다.
여러분은 몇 살까지 살 것 같으신가요?
우리는 대부분 내일을 약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쏟아져 나오는 사건 사고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건강했던 몸이 갑자기 불편하게 느껴지면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하다고 하지요.
그러나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은 저마다 다릅니다.
그래서 오래 살아서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오래 사는 일이 힘에 겨운 분들도 계십니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수록 삶과 죽음에 대한 경험이 누적되면서
죽음에 대한 가치관이 시나브로 달라지고 있음을 알아챕니다.
죽음은 조금씩 내 삶에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달리 노력하지 않아도 나는 어제보다 오늘, 한 걸음 더 죽음에 다가갑니다.
조금씩 망가져가는 몸의 신호로도 알 수 있습니다.
무릎의 연골은 다 닳았고 한 끼 식사를 소화하기가 조금씩 버겁게 느껴집니다.
한 번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적이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죽을 때 이런 기분일까 싶어 한 동안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죽음이지만 가까운 타인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곤 합니다.
점점 더 가까운 사람들이 죽음의 문턱을 넘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 제법 오랜 시절을 함께 한 사람들이 곁을 떠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겪었던 조부모님의 부고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는데
아픔이 쌓이다 보니 지금은 이름만 아는 유명인의 안타까운 비명에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메멘토모리 - '자신이 죽을 것을 기억하라.'는 라틴어가 와닿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삶에 대한 방향이나 자세를 점검해 봐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나는 잘 살았는지, 잘 살고 있는지, 후회하는 일은 없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며 살고 있는지를 돌이켜봅니다.
시선을 돌려보면 인생은 그래서 살아갈 만한 건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모두 언제 죽을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당장 내일을 기약할 수 없음에도, 100살까지 살지 모르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나는 맛볼 수 없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마음이 이런 것일까요?
누군가 내가 열심히 살아온 흔적으로 세상을 평화롭게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실언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을 던져 준 아들은 지금 군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종종 연락이 닿으면 죽을 것 같다며 현실에 대한 불만을 풀어놓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죽고 싶지 않은 아들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죽음은 나이와 상관없이 느닷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기에 염려는 가시질 않습니다.
이 또한 사랑이라면 불안도 기쁨에 비견될 만큼 삶에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안온한 하루가 되셨기를 바랍니다.
아프고, 슬프고,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 당신께 부디 오늘은 미소가 흐르기를 소망합니다.
삶에 너무 커다란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저 함께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께 감사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