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님께서 2년에 한 번은 무조건 건강검진을 하라고 합니다.
하기 싫으면 벌금 내야 한다는데 이건 무슨 '우리 애 어디 아픈지 보자' 하는 것도 아니고
'검진받을래? 맞을래?' 하는 것 같아 이 날이 다가오면 두렵고 애가 탑니다.
벌써 몇 번이나 봤을 위장 식도 사진인데 다시 볼 생각 하니 목구멍이 저절로 좁아집니다.
나는 잠이 들어 모르겠지만 내시경이 목에 막혀 전문의께서 고생 좀 하실 것 같습니다.
비슷한 심정으로 정기 검진 날짜를 기다리시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연말이 되면 이런저런 모임이 늘어나는데 다들 최근에 받은 건강검진 이야기를 꺼내 놓습니다.
무수면으로 위아래 내시경을 받은 친구는 역전의 용사 같은 무용담을 늘어놓습니다.
물론 수면 중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모르는 대 다수의 친구들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손에 땀을 쥐며 듣습니다.
고통을 잠과 치환한 이들은 남의 일처럼 느껴지나 봅니다.
'야 이 바보들아. 우리가 다 당했던 일이라고!!!'
사실 저도 건강검진을 매우 두려워합니다.
어느 정도냐면 2년 전 검진을 받고 나면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2년 동안 걱정을 쉬지 않고 하는 편입니다.
'나 2년 뒤에 검진은 어떻게 받냐?'
2년 전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했던 말입니다.
특별히 제가 검진을 두려워하게 된 계기는 불면증 때문입니다.
5년 전부터 극심한 불면증을 호소하다 수면제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스틸녹스 반 알이면 잠이 들곤 했었는데 공황장애 증상이 심해지면서
이런저런 약들이 추가되었고 잠들기 전에 먹어야 하는 약이 9개가 되었습니다.
약이 일상인 사람에게 약 없이 잠을 자야 하는 일은 곤혹입니다.
그래도 어쩌다 하루니 어두 컴컴한 방에 누워 있다 보면
몇 시간이라도 잠을 잘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지고 누웠습니다.
한두 시간 후면 잠들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습니다.
눈을 감은 채 밤을 지새웠고 아침 8시가 되어 머리를 쥐어뜯으며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덕분에 혈압은 평소보다 높게 나왔고 검진 내내 돌덩이를 매고 다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밤을 새운 탓인지 수면약이 들어갈 때는 편안히 잠을 잤습니다.
시간을 확인하고 잠이 든 지 30분 만에 깨어났습니다.
혹시나 병원에서 길게 잠들까 봐 걱정했는데 약 기운이 떨어지니 바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잠은 어디에서나 나와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내시경 결과를 들었습니다.
다행히 식도와 위장은 깨끗하다 하십니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잠 못 자는 걱정을 하는 동안 검진 결과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걱정이라는 것도 총량의 법칙 안에 있나 봅니다.
다른 것을 걱정하는 동안 나는 평범한 다른 사람들의 걱정을 잊고 있었습니다.
걱정으로 걱정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걱정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수면제 한 알을 골라 먹고 잠을 잤습니다.
4시간 정도 잔 것 같은데 편안한 휴식이 된 것 같습니다.
방 문을 열고 나오니 거실에 앉아 있는 아내와 마주쳤습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건넸습니다.
"여보, 나 2년 뒤 건강검진 어떻게 받지?"
됐고, 저녁이나 차리랍니다.
맞습니다. 일단 먹고사는 일이 먼저입니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겠습니다.
부디 새해에도 모두 건강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