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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Dec 08. 2022

아름다운 경쟁


1964년, 도쿄 올림픽 마라톤의 우승자는 에티오피아의 영웅 비킬라 아베베입니다.

맨발의 마라토너로 알려진 그는 대회 전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어찌 보면 그의 우승은 당연했습니다.

이전 올림픽에서는 맨발로 달리고도 금메달을 땄는데 도쿄 올림픽에서는 멋진 신발까지 신었으니까요.


그가 결승선을 통과한 뒤에 작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2위로 메인 스타디움을 들어온 일본인 선수

쓰부라야 고키치가 마지막 한 바퀴를 남기고 영국 선수에게 역전을 당했습니다.


영국 선수는 환호했고 쓰부라야 고키치는 아쉬움을 삼켜야 했습니다.

동메달을 획득했지만 그의 인터뷰는 자신의 실수를 고백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올림픽에서는 반드시 금메달을 따겠다는 의지를 다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4년 뒤에 열린 멕시코 올림픽을 출전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 부상과 중압감을 견디지 못한 그는 올림픽을 6개월 남짓 남긴 어느 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나는 이제 지쳤습니다. 더 이상 달리고 싶지 않습니다."


올림픽에 참가할 순 없었지만 그의 유서는 올림픽에 대한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해 주었습니다.


최근 들어 국제 대회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대변하기보다 개인의 기량을 뽐내는 자리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국적이 달라도 우정을 표현하기도 하고 같은 나라 선수끼리 서로 견제하기도 합니다.

여전히 페어플레이에 대한 논쟁은 사라지지 않고 있지만

이마저도 기술의 발전을 동원해 바로잡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승부의 세계는 냉정합니다.

1등과 2등에게 주어지는 영광의 간격 또한 좁지 않습니다.

기량의 발전을 위해 더 많은 기술이 동원되고 있으며 새로운 전략, 훈련 방법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최고가 되기 위한 인간의 욕망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멈추지 않는 게임의 룰은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승자와 패자는 정해져야 하며 숫자로 기록되는 순위는 내 위치를 정확이 짚어줍니다.


선의의 경쟁이라는 말은 스포츠에서나 어울립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숨 가쁜 경쟁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입시, 취업, 창업, 선발전뿐 아니라 예술적 재능을 가리는 다양한 공모전까지

사회적 성공의 타이틀을 얻으려면 경쟁이라는 틀 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주변에는 쓰부라야 고치키와 같은 이웃을 쉽게 만납니다.

오래전 고등학교 동창이 스스로 세상을 등진 소식을 들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마음이 참 힘들었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세명의 지인이 같은 선택을 했습니다.

지금은 그런 소식에 조금씩 무뎌지는 나 자신이 더 잔인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아프지 않은 경쟁을 꿈꾸어 봅니다.

이어달리기처럼 한 팀이 되어 경쟁을 하거나 발을 묶고 2인 3각 경기를 할 때면

승리의 영광도 패배의 아픔도 누군가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함께라는 말이 경쟁의 아픈 부분을 채워주지 않나 싶습니다.

설령 우리 팀이 약하더라도, 매 번 패하더라도 

우리는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알고 있으니까요.

패배를 탓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서로를 격려할 수 있는 경쟁,

더 많은 마음을 모아 한 팀이 된다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하는 생각입니다.


축구 국가대표팀이 세계 최강 브라질에 4대 1로 패했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한 골, 한 골 들어갈 때마다 가슴이 아프기는커녕 

골을 먹어도 열심히 상대방 골 문을 향해 달리는 선수들이 멋졌습니다.

브라질도 멋있었지만 우리 선수들이 참 훌륭해 보였습니다.

얼마 만에 느끼는 패배의 기쁨인지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아주 조금 성장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경쟁을 위해 나는 또 누군가와 한 팀이 되어야겠습니다.

약해도 좋습니다.

약할수록 서로의 숨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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