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보다 추위를 싫어하지만 방학은 겨울방학이 항상 좋았습니다.
연말연시의 분위기도 좋았고 방학이 끝나도 며칠만 버티면
작은 방학을 한 번 더 맞이할 수 있기에 부담이 없었습니다.
한 해 동안 함께 했던 친구들과 헤어지는 슬픔도
새 친구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등가교환할 만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르는 봄 방학은 24 절기상으로는 봄이 맞겠지만
꽃 피고 따스한 봄이라 부르기에는 조금 이른 시즌입니다.
여전히 겨울 옷을 벗어버리긴 힘든 계절에 우리는 봄 방학을 맞이했습니다.
성인이 되고 더 이상 3월이면 새로운 학년을 부여받지 않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봄 방학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지도 않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 새롭게 봄 방학을 체험하게 되지만
아이들의 봄 방학이래 봐야 부모들에게는 여간 귀찮은 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에는 봄 방학이 없는 학교도 늘고 있다고 하더랍니다.
학교를 다닐 때면 3월이 새 해의 첫날 같았는데
지금은 3월이면 벌써 한 해의 4분의 1이 지나갔냐며 한숨만 내뱉습니다.
나이를 먹어도 제대로 먹었나 봅니다.
봄이 즐거워야 하는데 봄이 심심합니다.
봄이 달콤해야 하는데 봄이 씁쓸합니다.
반가운 친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꽃피고 좋은 계절인데 어디 안 가나네요.
무릎이 쑤시고 시간도 없어서 동네 뒷산도 못 간다고 했더니
좋은 계절에는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라고 합니다.
없는 시간을 어찌 만드냐고 짜증 섞인 투정을 건네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봄 방학이라고 생각해."
'이 자식 천잰데?'
팔자 늘어졌다고 핀잔을 주었지만 속으로는 꽤 멋진 아이디어라 생각했습니다.
진짜 봄 방학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날, 가을과 함께 가장 아름다운 색으로 물드는 시간,
나에게 봄 방학 같은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며, 지나간 아쉬움을 정리하고
따스한 정오의 햇살과 푸르게 올라온 새싹의 냄새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우리 봄 방학처럼 지내보아요.
콧노래 흥얼거리며 거리에서 마주치는 환하게 터진
꽃망울을 환한 웃음으로 맞이해 봅시다.
여전히 바쁘고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뭐 어때요.
방학이라 생각하고 적당한 게으름으로 느리게 흐르는 시공간에 올라탑시다.
끽해야 아내에게 등짝 스메싱 한 대 맞거나
정신 차리라는 부모님의 질책 한 마디 웃음으로 넘기면 되겠죠.
학생들이라면 중간고사는 적당히 포기하시고 기말에 만회하겠다 다짐하면 될 것 같아요.
물론 회사에서 '내일부터 나오지 말게나'라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안됩니다.
불경기에 입에 풀칠은 못해도 거미줄은 걷어 내야 봄바람 맛이라도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항상 오늘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생각을 뒤집어 보려고 합니다.
'그래 오늘이 내 인생 가장 행복한 날이야!'
동네 공원에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부터 나는 봄 방학입니다.
건들지 마세요.
이 세상 게으름은 모두 나의 것입니다.
브런치도 글 좀 쓰라고 닥달하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