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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Nov 25. 2022

당신의 아픔이 누군가에게는



동창을 만나고 온 아내가 한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얼굴에 피곤이 내려앉은 친구는 며칠째 잠을 잘 못 자고 있다고 합니다.

상황을 들어보니 수면제를 먹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다며 

수면제에 대한 고민과 불안함이 또 다른 고민거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내는 친구에게 저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공황장애와 불면증으로 약을 먹고 자게 된 지 1년이 넘었으며

본인도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오히려 잠을 푹 잘 수 있어서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는 희망찬 이야기입니다.


희망찬 결론으로 이어진 부분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친구는 내 이야기로 적잖은 위로를 받았나 봅니다.

남편과 함께 즐기라며 커피 쿠폰까지 보내 주었으니 말입니다.


허락 없이 남편의 아픔을 팔고 온 아내에게 그런 말은 왜 하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달리 밉거나 섭섭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이기도 했거니와 아내의 친구가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으니까요.





꽤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수능 1세대였던 저는 지망했던 대학을 모두 떨어지고 

재수를 해야 하나 후기대를 가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겨울 방학이 끝나고 학교를 찾았습니다.

제법 많은 친구들이 학교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입학에 성공한 친구들만 좋은 소식을 나누러 나오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나도 괜히 나왔나 싶었던 찰나 한 친구가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넌, 어때?"


인사도 없는 간단한 질문, 

한 숨과 함께 고해성사보다 어려운 대답이 이어졌습니다.


"다 떨어졌지 뭐."


평범한 위로의 말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예상을 벗어난 뜻밖의 대답이 이어졌습니다.


"힘내 인마. 나도 다 떨어졌어."


지금도 잊어지지 않는 내 인생 가장 큰 위로였습니다.





삶이 참 어렵습니다.


돌아보면 성공보다 실패의 경험이 많았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합니다.

그 이야기 속에 혹시나 성공으로 향하는 비밀이 숨겨져 있지는 않을까 정성을 다해 들어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누어야 하는 진짜 이야기는 실패의 고백 속에 있는 건 아닐까요?

누구나 하는 평범한 실패, 그리고 실수 연발의 삶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은 아름답고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다는 수많은 고백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파도 괜찮은 세상을 꿈꿉니다.

아픔이 자랑은 아닐지라도 부끄럽지 않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아픔이, 혹은 실패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2022년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저무는 세월의 경험이 늘어갈수록 마음의 무게도 무거워집니다.

그저 나의 실패가 당신께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야 내 삶도 나쁘지는 않았다고 스스로 위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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