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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Nov 01. 2022

거울



우리는 매일 거울을 봅니다.

거울의 나는 어제와 조금 달라져 있을지 몰라도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물리학으로 따지고 들면 상이 맺히고 반사되는 과정에서 

왜곡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라고 생각합시다.

나는 문과생이니까요.


그런데 거울 앞에만 서면 매일 다른 나를 발견합니다.


하루는 무기력한 중년의 남성을

하루는 제법 괜찮은 청년 같은 모습을

하루는 곧 죽을 것 같은 모습을 눈으로 확인합니다.


모두 다름없이 나입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입니다.


그날의 컨디션이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자면 나를 향한 생각의 변화에 원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20대에는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오늘 고른 옷이 잘 어울리는지, 한쪽으로 넘긴 머릿결이 자리를 잘 잡았는지

거울을 보며 미세한 조정을 마치고 나면 뿌듯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즐거움보다 한 숨이 터져 나오는 날이 많습니다.

나이가 들어 이전처럼 싱싱한 모습이 아닌 것은 나만 느끼는 감정은 아닐 겁니다.

그것보다 나를 더욱 괴롭히는 시선은 내 앞에 놓여 있는 현실에 대한 불만입니다.





이제 과정보다 결과가 쌓이는 연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두 손에 주어진 결과는 보여주기 민망한 수준입니다.

하루하루 늙어가는 모습도 씁쓸한데 참 못살았다는 마음속 부끄러움은

거울을 보는 나 자신을 더욱 초라하게 만듭니다.


더 열심히 살았어야 했는데, 더 노력하고 부딪혀야 했는데, 더 공부하고 실력을 키워야 했는데

현실의 나를 바라보면서 과거의 자신을 탓하고 있습니다.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입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턴가 자책하는 일들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겸손해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그렇게 보는데 다른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좋을 리가 없습니다.


긍정적인 언어보다 비관적인 말들이 많아집니다.

세상을 더욱 부정적으로 보게 됩니다.

나 자신만큼이나 타인의 실수에도 너그럽지 못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내 부정적인 시선들로 고통받는 이들은

내가 아닌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가벼운 관계라면 떠나가면 그만입니다.

나로 인해 힘든 것은 잠시 뿐, 그런 존재가 있었는지 잊고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 아이들, 그리고 아내는 그런 모습을 보고 있어도 떠날 수 없습니다.

함께 괴로움을 감당해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거울을 봅니다.

여전히 부끄러운 모습이네요.

하지만 내가 가장 사랑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가장 먼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여전히 볼품없는 모습에 웃음기 잃은 표정이지만

거울을 보면서 나만이 알고 있는 내 모습을 천천히 찾아갑니다.

나는 때로 용감했고, 뜨거웠으며, 너그럽고, 유머러스한 남자였습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입니다.


믿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당신을 보겠습니다.

소망을 담아 내일 더 자신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시작하라.' - 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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