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에서 배우는 관계

by 류완


어린 시절에는 누군가와 항상 함께 걷습니다. 어디를 가든 손을 잡고 함께 걷기에 걸음은 즐겁습니다. 손을 놓아도 누군가의 시선은 나의 걸음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마음이 닿아 있기에 떨어져 있어도 두렵지 않습니다.


성장할수록 우리는 혼자 걷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와 함께 걷기를 좋아합니다. 오히려 함께 걷는 즐거움을 배워갑니다. 친구는 걷기의 참 좋은 동료입니다. 비슷한 나이, 비슷한 생각, 비슷한 운동 능력을 생각하면 평생 같이 걸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각자의 꿈과 재능이 다르기에 함께 걷기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또 다른 친구를 만날 수 있지만 우리는 결국 홀로 걸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만남이 모두 아름다운 동행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우리는 경쟁하는 사람들과 더 많이 걸어야 할 때를 만납니다. 경쟁은 때론 친밀한 걸음보다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서로에게 복잡한 감정이 밀려옵니다. 이겨야 한다는 심리 안에는 두려움과 미움도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경쟁 안에서 형성된 공감은 우정과는 다른 특별한 동료의식을 형성합니다.


프로 스포츠는 경기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이 정해져 있습니다. 명단(entry)은 정해져 있으며 슈퍼스타를 위시해 실력이 앞서는 선수들로 명단이 채워집니다. 선수단 모두가 경기에 참여하지는 않습니다. 이들 중에서도 후보 선수가 있고 후보 선수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경기에 나서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주전이라고 해서 기회를 보장받는 것은 아닙니다. 기량이 떨어지거나 부상을 당하게 되면 명단에서 제외되고 다른 선수에게 기회가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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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는 잔인한 경쟁입니다. 영원한 스타는 없습니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선수만이 경기장에 남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가장 잘 이해하는 건 관중이 아닌 선수들 자신입니다. 잔인한 경쟁 속에서도 서로의 노력을 이해하고 알아줍니다. 팀 승리를 위해 헌신하다 보면 동료의식도 생겨납니다. 질투와 존경심, 경쟁과 협력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혼자 걷는 것 같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지금도 함께 걷고 있습니다. 따로 각자의 길을 걷지만 서로를 의식합니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걸음일지라도 우리는 타인의 걸음을 의식하고 나의 걸음을 조절합니다. 걸음은 관계 형성의 중요한 매개체입니다. 걸음의 수만큼 관계의 폭도 넓어집니다. 매체와 통신의 발달로 가만히 앉아서 관계 형성을 늘릴 수도 있지만 두 다리가 쉬고 있는 순간에도 마음의 걸음은 바쁘게 움직여야 합니다.


관계를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홀로 걷고 싶어 인적이 드문 곳을 찾습니다. 하지만 어디에 있던지 걸음은 생각을 낳고 생각을 남기는 순간 우리는 언젠가 그의 생각을 만날 수 있습니다.


28살 청년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사람이 살지 않는 호숫가 오두막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홀로 걸으며 사색을 즐겼습니다. 매일 서너 시간을 걸으며 자연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소로는 그곳에서의 생활을 글로 남겼습니다. 호수의 이름으로 출간한 ‘월든’은 소로의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구도자의 걸음처럼 ‘월든’은 매우 느리게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출간 당시에는 인기를 끌지 못했으나 제국주의와 전쟁, 자본의 무자비한 확장 속에서 소로의 자연주의적 삶은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소로의 사상이 톨스토이와 간디에게 영향을 끼쳤음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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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는 ‘월든’에서 자신의 오두막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 오두막에는 세 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둘은 우정을 위한 것이며, 셋은 사회를 위한 것이다.’ 홀로 자연으로 들어간 소로였지만 그 안에서도 세상과 소통하는 글쓰기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홀로 걸으며 떠올린 소로의 생각들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었습니다.


시간과 장소가 달라도 걸음은 공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길은 어디로든 연결되어 있고 누구와도 닿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살아갑니다. 싫든 좋든 우리는 관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이 길을 만들었고 나는 그 길 위에서 걷고 있습니다. 지금 나의 발걸음도 누군가가 걸어갈 과거의 흔적이 될 것입니다. 힘들고 외로울 때는 이 길을 걷는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됩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 누군가 함께 걷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힘이 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고 걸었습니다. 그러나 일어서고 걷기까지 오래 걸리는 아이가 있으면 걸음마를 위해 손을 잡아 주어야 합니다. 때론 일어서기 위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도움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도움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1950년대 하와이의 카우아이섬은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높은 범죄율과 약물 중독자의 수는 섬의 골칫거리였습니다. 심리학자 에미 워너 교수는 섬에서 출생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40년간 추적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연구진은 아이들이 대부분 범죄자가 되거나 약물 중독자가 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을 빗나갔습니다. 대상의 3분의 1이 평균 이상의 모범적인 가정을 이뤘습니다. 이들은 공통 적으로 가족이나 이웃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은 경험을 고백했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도 누군가 함께 하고 있다는 마음만으로도 회복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unnamed.jpg 하와이 카우아이섬



우리는 함께 걸을 때 더욱 힘이 납니다. 물리적 동행만이 아닙니다. 다른 공간과 시간에 머물러있더라도 내가 걸었던 흔적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아무도 걷지 않은 미지의 공간이라면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새로운 공간을 여는 개척자로서 미래의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는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조선 후기 문신 이양연(李亮淵)의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음에 와 닿는 문장입니다. 아무도 닿지 않는 고요한 걸음도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낯선 공간을 걷다 보면 의도하지 않은 만남을 경험합니다. 새로운 만남은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나 역시 수많은 만남을 통해서 자신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갔습니다. 세상은 중심은 내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내 삶에 들어왔다고 생각했지만 나 또한 불쑥 누군가의 삶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우리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관계는 이렇게 뜻하지 않는 상황에서 의도치 않게 이뤄집니다.


한적한 시골길을 걷던 중에 반대편에서 마주 오던 중년 남성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도심에서는 아무 부담감 없이 흘려버릴 수 있는 상황이 묘한 부담감으로 다가왔습니다. 눈을 돌리기도 전에 마음속에서 경계심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어떤 사람인지, 여기서 무엇을 하는지, 나를 왜 쳐다보는 건지 궁금함이 끝나기도 전에 남성은 나에게 미소와 짧은 목인사를 건넸습니다. 경계심은 무너졌고 함께 길을 걷는 동질감으로 빠르게 채웠습니다. 발걸음에 힘이 생겼습니다.


그는 짧은 인사로 서로의 불안을 날리고 편안한 길을 걸었습니다. 얼마나 걸으면 낯선 만남에 두려움 없이 미소를 보낼 수 있을까요? 나에게는 아직 그런 용기가 부족합니다. 새로운 만남은 여전히 어려운 숙제입니다. 하지만 몇 번을 더 걷다 보면 언젠가는 편안한 인사를 건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용기도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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