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기

부부의 걸음

by 류완



차 없이 살고 있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도 이유겠지만 대중교통이 편리한 지역에 살고 있었던 터라 차가 필요한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아내도 크게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자연히 부부가 모두 요구하지 않다 보니 그렇게 차 없는 삶이 계속되었습니다.


부부의 습관이기도 합니다. 연애 시절 때부터 우리는 막연히 걷는 즐거움을 배웠습니다. 나란히 걷다 보면 바라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많습니다.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나누는 이야기는 소재가 끊이지 않습니다. 모습을 보지 않아도 함께 걸음과 호흡을 맞추다 보면 함께 한다는 감정은 더욱 풍부해졌습니다. 이따금 어깨가 스칠 때면 손을 잡고 걸을 때보다 짜릿한 감정을 느끼곤 했습니다. 하염없이 걷다 보면 얼마만큼 걸었는지 계산하기 힘든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거리만큼이나 두 사람의 세상은 넓어져 갔습니다.


마음이 맞는다는 것이 그런 것 같습니다. 서로 같은 것을 좋아하고 불편한 부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우리 부부의 일상이나 연애 경험을 이야기하면 독특하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좋게 말하면 그렇고 다르게 보자면 왜 저러고 사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세계에서 하나의 공감을 만들어 내는 순간 타인의 시선은 그리 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강력한 보호막이 작용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만큼 두 사람의 공감대에 강한 확신이 생깁니다.


함께 걷는 모습이 보기 좋은 사촌 부부



사랑은 공감대를 타고 흐릅니다. 외모, 목소리, 재능처럼 외형에 끌려 애정이 발전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공감대가 반복되면서 호감은 사랑으로 발전합니다. 우리 부부도 서로에게 많은 부분을 공감하면서 사랑을 키웠습니다. 좋아하는 음식, 음악, 영화, 취미까지, 하나하나 맞춰보니 비슷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걸음은 공감을 키워내는 가장 큰 공간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사진을 찍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서는 한참을 걸으면서 서로가 느낀 감정을 공유했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감탄이 지나는 거리마다 뿌려집니다. 혼자 걸으면 지겨웠을 거리가 시공간을 초월한 것처럼 너무 가깝고 짧았습니다. 한 번을 더 걸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야기가 멈추지 않는 한 걸음은 무한한 사랑을 발산했습니다.






함께 걷는다고 항상 좋은 감정만을 유도하지는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지칠 것 같으면 감정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도 합니다. 어느덧 풍경은 아름답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시선이 흐트러지면서 서로를 향한 감정도 흔들립니다. 흔히 이럴 때 느끼는 감정을 짜증이라고 합니다. 단순히 체력적 한계만으로 오는 감정은 아닙니다. 좋았던 감정이 짜증의 단계로 넘어가려면 알아채지 못했던 작은 갈등이 존재했으리라 봅니다. 좋아한다는 마음으로 가려왔던 서로의 불편한 모습이 조금씩 감정의 선을 넘고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알아채지 못했던 불안한 모습이 드러나면서 조금씩 실망도 경험합니다.


낯선 공간에서 느끼는 불안은 더 크게 다가옵니다.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은 낯선 공간을 즐기기도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순간을 만나면 누구나 불안을 느낍니다. 두려움 때문에 여행을 떠나지 못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수많은 정보를 취합하고도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합니다. 정보의 가장 큰 힘은 두려움의 극복입니다. 지금은 스마트한 시대를 살다 보니 낯선 공간에서도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지 크게 두렵지 않습니다. 핸드폰 배터리가 방전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부부의 청춘은 호출기가 대중화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습니다. GPS가 달린 기기도 아니었고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액정에 오로지 숫자 십 여자리만 확인할 수 있는 기기였습니다. 약속 시간이 다 되어도 서로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할 수 없었고, 문제가 생겨도 상황을 알리려면 근처 공중전화를 찾아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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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본 적이 없던 공간을 걷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보를 얻기도 어려웠습니다. 지금처럼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쉽게 말해 그냥 걸어야 알 수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골목을 만나면 이 골목이 어디서 끝날지, 골목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예측대로 흘러가는 걸음은 많지 않았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헤맸던 경험은 흔한 일상이었으며 지쳐서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 마음에도 없던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도 당연했습니다.


실수투성의 시간이었습니다. 하루의 계획을 근사하게 짜 맞춰도 그대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두 다리는 녹아내릴 것 같은데 마음은 더욱 무겁게 느껴집니다. 밀려오는 짜증은 투정이 되고 투정이 싸움이 되는 것도 한순간입니다. 기분 좋게 시작했던 하루가 낯선 공간에서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으로 무너져 내립니다. 어린아이 장난같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은 이처럼 잘못된 길을 들어서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갈등만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낯선 공간에서 일어나는 믿음은 힘을 발휘합니다. 실수가 연속되고, 피로가 누적되고, 어딘지도 모를 공간에서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을 기다리고 있는데 허탈하게 웃으며 “이것도 추억이지.”라는 한 마디에 함께 미소를 짓습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을 다시 쌓아가는 회복의 한 마디입니다. 우리는 우리 걸음의 실수를 받아들이는 순간 서로를 탓하기보다 위로하고 새로운 걸음에 힘을 불어넣었습니다.


함께 걷는다는 것은 서로의 불안한 발걸음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비슷해 보여도 걸음은 미세한 차이가 있습니다. 신발 밑창을 보면 사람마다 걸음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바깥쪽이 먼저 닳는 사람이 있으면 안쪽이 더 빨리 닳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편은 무릎을 스치듯 걷습니다. 신발을 오래 신다 보면 양쪽 신발 뒤꿈치 안쪽이 사이좋게 닳아 있습니다. 아내는 한쪽 발을 항상 바깥쪽으로 향하고 걷습니다. 어디 출신 양반이냐며 놀리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반대로 내 오래된 신발을 보면 타박하곤 합니다. 서로의 다른 습관이 처음에는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보폭을 조절하고 호흡을 맞춰 가다 보면 두 사람의 걸음은 조금씩 편안함을 찾아갑니다. 상대방의 공간을 배려하고 걸음을 이해하는 순간 부부의 다른 모습은 어느새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KakaoTalk_20200827_175429856-1212.jpg 유난한 걸음을 보여주는 낡은 신발



아내와 처음 손을 잡고 걸을 때가 생각납니다. 긴장한 탓에 손에 땀이 나고 손목이 저려 오는데 언제 놓아야 하는지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한참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 잡았는지 모르게 자연스럽게 손을 잡기도 놓기도 합니다. 아내는 힘이 들면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지만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서로에게 살며시 기대어 걷다 보면 혼자 걸을 때보다 편안함을 느낍니다. 날이 더우면 주먹 두 개만큼 공간을 비우고 걷지만 서로에게 한 마디씩 건넬 때마다 살며시 고개를 기울여 상대방을 배려합니다.


부부의 편안한 걸음에는 지난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많은 경험과 기억이 모여 두 사람의 발걸음이 되었습니다. 함께 걷는 길 위에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즐겁고 행복했던 이야기도 있겠지만 힘들고 괴로웠던 시간도 뿌려져 있습니다. 이야기를 다 모으고 모으니 지금의 걸음이 되었습니다. 편안함에 닿기까지 부부는 다양한 감정을 주고받았습니다. 걸음이 소중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차를 못 살 것 같아."

거리를 걷다가 길게 늘어선 차량 행렬을 보며 아내가 불쑥 건넨 말입니다.

"그러게 요즘 차값이 너무 비싸더라고."

"아니, 이젠 그냥 걷는 게 편해졌어."

생각해보니 나 또한 그런 것 같습니다. 참 답 없는 부부입니다. 우리는 도시의 교통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착한 부부라고 서로를 칭찬하며 웃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편안하고 여유롭게 걷자고 말했습니다.


살다 보면 서로의 생각이 조금씩 빗나갈 때가 있겠지요? 하지만 함께 걷기에 언제든 그 간격을 맞춰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부부는 빠르게 가다 서다를 반복하기보다 느리지만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일상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홀로 걸었다면 찾을 수 없는 행복입니다. 외롭지 않은 걸음의 발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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