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꿈을 꾸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굳이 더 묻고 답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수저 두 벌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남들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결혼했습니다. 누구보다 깊이 사랑해서 결정했다고 믿었습니다. 둘만 있다면 마냥 행복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함께 사는 삶은 순탄하지 못했습니다. 대충 볼 때는 비슷해 보였던 생각이 세심하게 살펴보니 다른 부분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부부는 모두 해물을 좋아했지만, 남편은 조림을 먹지 못했습니다. 생선을 좋아하리라 생각한 아내는 고등어조림을 정성껏 요리했지만, 남편은 음식에 젓가락을 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아내는 남은 음식을 버리면서 눈물이 나왔다고 고백했습니다.
사소한 갈등이지만 어째서인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함께 하는 것과 함께 사는 것은 너무나 다른 삶입니다. 믿음이 무너지면 의심이 자라납니다. 서로의 말을 믿지 못하다 결국 서로의 말을 듣지 않게 됩니다.
단절의 시작입니다.
등을 돌리고 누우면 편할 것 같지만 불편한 마음으로 한 공간에서 지내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한여름에도 냉기가 흐르고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무심하게 보내던 시간이 그리워집니다. 왜 이렇게 변했는지 원인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문제의 원인은 항상 나보다 상대방이 더 크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몇 해를 그렇게 보내고 부부는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대화를 위해 나선 길은 아닙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식사를 하고 나면 몸이 불편하고 소화를 시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부부는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습니다. 근처 공원까지 거리가 가까워 부담 없이 걸을 수 있었습니다.
세월이 묻어난 걸음은 청춘의 그것만큼 경쾌하지 않습니다. 느리게 걷다가 멈춰 서기를 반복합니다. 새로운 곳을 찾아가지도 않습니다. 항상 걸었던 곳을 다시 걸을 뿐입니다. 반복된 일상은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같은 공간, 같은 거리를 걷더라도 대화가 달라지면 많은 것들이 달라집니다.
평범한 거리에도 이야깃거리는 넘칩니다. 전에 없던 식당이 하루아침에 생겼습니다. 간판도 재밌고 인테리어도 특별합니다.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개성이 넘치고 크고 작은 사건도 일어납니다. 비교적 평범할 것 같은 공원도 며칠에 한 번씩 가다 보면 새로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봄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붉은빛으로 가득 찹니다. 이야기할 것들로 넘쳐납니다. 아무 말 없이 걷다가도 같은 공간에 시선이 머물면 대화가 시작됩니다.
“여기 맛있을 것 같네.”
“저 큰 개는 어디서 키우는 걸까?”
“이런 곳에 차를 대면 어떡하라고!”
대화의 시작은 정말 사소한 것들이었습니다. 사소한 불평, 호기심, 감상평 같은 단순한 이야기로 길지 않은 대화가 여백을 채우듯 이어집니다. 대화를 이어가는 가장 큰 힘은 공감입니다. 평범하게 던진 말에 “그러네”라고 한 마디 건넸을 뿐인데 이어지는 대답에 한결 여유를 얻습니다. “괜찮아”, “더 해봐”라고 응원하는 것 같습니다. 한두 마디로 끝나던 대화는 조금씩 더 길게 이어집니다. 마치 테니스 경기에서 랠리가 이어지듯 대화는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갈등도 회복도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같은 원인으로 싸우기도 하고 서로의 마음을 회복하기도 합니다. 안 먹겠다는 사과를 기어코 깎아놔서 음식을 낭비하냐고 타박하자 깎아두면 아이들이 오가면서 하나씩 집어 먹을 거라며 놔두라고 합니다. 한참 뒤에 tv를 보고 있는 아빠 입에 아이가 사과를 집어넣습니다. "응, 고마워."하고 받아먹으니 아이가 엄마를 향해 한마디 합니다. "봐요. 아빠 사과 먹어요." 아내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고 남편은 웃는 얼굴을 숨기느라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대화의 긴 랠리 끝에는 강력한 스트로크를 받기도 했습니다. 알지 못했던 아내의 생각, 오해했던 마음, 그리고 무시했던 아내의 말과 행동이 남편의 가슴에 날아와 박혔습니다. 다행히 예전에는 화를 내며 부정했을 이야기가 시간이 흘러 마음의 여유를 얻고 보니 천천히 받아들여집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각자의 공간에서 걸으며 나누었던 생각들을 복기합니다. 차분하게 정리된 생각은 잠들기 전에, 혹은 다음 걸음의 과정에서 매듭을 풀어내는 기회를 얻습니다.
걸음은 두 사람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털어놓는 고해성사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서로를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느 정도 함께 걷는 훈련이 되었다면 발걸음은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적당히 박자를 맞춰갑니다. 따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조금 더 힘들어하는 발걸음에 맞춰 걷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어도 불편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대화는 멈추지 않습니다. 목적이 바뀌었습니다. 걷기 위해 나섰던 걸음이 대화를 나누기 위한 걸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내는 항상 결정을 내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그런 모습을 지적했습니다. 아내를 '우유부단한 사람'이라고 평가했고 반대로 자신은 결단력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결정을 다그쳤습니다. 신속하게 따라주지 못하는 아내를 원망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빠른 결단이 행복과는 크게 상관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은 복잡하고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일은 하나도 없는데 남편은 정답을 정해놓고 살았습니다. 생각의 틀이 좁고 시선에 여백이 없으니 타인의 마음을 담아낼 줄 몰랐습니다.
‘누군가가 밉다면 그가 자네 안에 있는 그 무언가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네. 우리 내면에 없는 것은 우리를 화나게 하지 못하는 법이니까.’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한 구절입니다. 함께 걸으며 새롭게 만난 아내는 생각처럼 우유부단하지 않았습니다. 여유롭고 신중한 사람이었습니다. 받아들이지 못했던 아내의 모습은 도리어 남편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남편은 스스로 내린 결단에 확신이 없었습니다. 불안하고 갈팡질팡했지만 겉으로는 자신이 정답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하고 싶었던 아내의 마음을 우유부단하다는 핑계로 밀어냈습니다. 아내의 뒷모습에 나의 불안한 모습을 그려 넣고는 당신의 문제라고 밀어붙였던 것입니다.
부부는 함께 걸으면서 서로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발견해 나가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부끄러운 자아를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떨쳐낼 수 없는 나의 그림자 같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걸으면서 서로의 부끄러운 모습까지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가끔씩 부부는 고등어조림을 잘하는 집 근처 식당을 찾습니다. 남편은 우연히 고등어조림에 담겨 있는 잘 조려진 무에 입맛을 빼앗겼습니다. 음식이 나오면 아내는 고등어를, 남편은 무를 사이좋게 나누어 먹습니다. 아내는 정성스럽게 가시를 바르고 고등어 한 조각을 남편의 밥 위에 올려줍니다. 생각보다 비린 맛도 없어 밥과 함께 넘기기에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아내의 입맛을 닮아갑니다.
함께 걷는 일이 익숙해지기까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랑을 확신할 때마다 작은 파편이 날아와 부부를 흔들었습니다. 생각보다 우리가 믿는 사랑은 단단하지 못했습니다. 같은 길을 걸을 뿐 우리는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걸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갈등과 회복의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 길이 편안합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라 생각하지만 어떤 일이든 확신하지 않고 살기로 했습니다.
언제나 같은 걸음을 걸을 수는 없습니다. 매일 걷는 길도 오늘과 내일의 분위기가 다르듯 우리는 항상 같은 기분으로 걸을 수 없습니다. 인생은 파도와 파도의 연속이며 언젠가는 함께 걷는 시간도 끝날 때가 찾아옵니다. 그래서 걸음에 좀 더 의미를 담기로 했습니다. 지금 이 걸음이 가장 소중한 순간이라는 생각을 마음에 담고 살기로 했습니다. 후회 없이 살 수는 없겠지만 함께했던 걸음으로 채우다 보면 제법 괜찮은 인생을 살았다고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내와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사랑은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동의했습니다.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그 노력이 우리가 살아가는 하는 힘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 날의 대화도 좋았지만 내 말에 살며시 지어 보이는 아내의 미소가 더욱 마음에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