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두 번째 이야기
골목의 끝에서 넓은 도로를 만났습니다. 건너편에 낡은 중국음식점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낡은 건물에 홍콩 영화에서나 본 것 같은 커다란 간판이 제법 오래된 가게라고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지친 체력을 채우고자 들어간 식당은 매우 비좁았습니다. 겨우 식탁 서너 개만 있었고 식탁 사이도 비좁아 안쪽으로 들어가려면 옆으로 게걸음으로 걸어 들어가야 했습니다. 마침 사람이 없어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항구의 맛을 느껴보고 싶어 짬뽕을 시켰습니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단무지와 춘장이 먼저 나왔고 커다란 빈 그릇도 함께 나왔습니다.
한참 동안 빈 그릇의 용도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식탁에 짬뽕 두 그릇이 놓였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두 사람의 시선에 불안함을 느끼셨는지 퉁명스럽게 조개껍데기를 빈 그릇에 버리라고 알려주셨습니다. 해결된 궁금증에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반면 너무나 단순한 해답에 아쉬움도 느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뭔가 대단한 것을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커다란 그릇에 담긴 짬뽕에는 조개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꽤나 크기도 컷 는 데 바다 생물에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는 모두 그냥 조개로 보였습니다. 면을 만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조개를 까서 입에 넣고를 반복했습니다. 젓가락으로 국을 저으면 숨어 있던 조개들이 걸려 올라왔습니다. 낚시를 하는 재미가 이런 것일까 궁금했습니다. 이윽고 비어있던 그릇은 조개껍데기로 가득 차올랐습니다. 바다 향 가득히 입에 고일 때 즈음에 노란 면발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이미 배는 반쯤 차올랐습니다. 한 번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천천히 면을 입에 넣었습니다. 맛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조개 향 가득한 국물은 적당히 매운맛을 머금었고 간이 잘 배어든 면발은 제법 굵었지만 부드럽게 넘어갔습니다. 확실히 바다를 인접한 식당은 특유의 바다 향을 품고 있습니다. 가까운 항구의 짠 내가 식당 안까지 들어와 코를 찌르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맛이야 개인차가 있겠지만 도시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그런 특색이 있는 맛이었습니다. 쉴 새 없이 젓가락질을 하면서도 주방에서 일하는 아저씨와 서빙을 하시는 아주머니를 살펴보았습니다. 식당에 들어왔을 때는 보지 못했던 알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내고 계셨습니다.
몇 번의 젓가락이 오르내렸을 즈음에 아저씨 한 분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검은 봉지를 식탁 위에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왔어요.”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는 동안 아저씨는 음식을 주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내가 먹고 있는 짬뽕과 똑같은 음식이 아저씨 앞으로 놓였습니다. 분명히 아저씨는 주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저씨는 조심스럽게 검은 봉지를 풀었습니다. 봉지 안에서 꺼낸 것은 플라스틱 반찬통이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김치를 바로 꺼내 먹기 좋게 담던 통과 비슷해서 기억에 남습니다. 아저씨는 반찬통을 열었습니다. 반찬통은 반찬이 아닌 하얀 쌀밥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밥을 떠서 짬뽕 국물에 말았습니다.
흔히 식당에서 추가로 밥을 먹기 위해서는 돈을 더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간혹 서비스로 밥 한 공기 그냥 주시는 사장님도 계시지만, 밥을 직접 가져와서 남은 국물에 말아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미세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짬뽕 삼매경에 빠진 아저씨에게 아주머니는 이런저런 말을 건넸습니다. 고개만 끄덕이시던 아저씨는 국물까지 후루룩 마시고는 그게 아주머니 때문이라며 무슨 내용인지는 모를 아주머니 칭찬을 디저트로 쏟아 내셨습니다. 뜨겁고 매콤한 짬뽕 국물로 식당 안은 제법 온기가 차올랐습니다.
계산을 마치고 주인아주머니와 인사를 주고받은 뒤 가게를 나왔습니다. 알싸한 기분으로 엔도르핀이 도는 것 같았습니다. 한 차례 땀을 쏟고 난 뒤였지만 가슴은 시원하게 뻥 뚫렸습니다. 발걸음이 제법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더 걷고 싶어 졌습니다. 걸으면서 군산의 숨겨진 공간과 사람들의 모습을 마음에 담고 싶어 졌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더 보내며 걷고 또 걸었습니다.
느리게 걸었던 2008년의 군산은 지금까지도 제법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적한 소 도시의 느긋한 풍경이 아름다웠고 동네 아주머니의 구수한 사투리도 좋았습니다. 느리게 달리는 거리의 차들도 도시의 속도에 발을 맞추는 것 같았습니다. 빠르게 지나는 것은 학교를 마친 아이들의 달리기와 벽을 타고 오르는 고양이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식당 주인의 날것 그대로의 친절과 음식의 풍부한 맛은 잊을 수 없는 군산의 기억으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