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이 지난 뒤에 다시 군산을 다녀왔습니다. 얼핏 보면 그대로 인 것 같았지만 골목골목 바뀐 공간이 많았습니다. 그사이 유명해진 관광 명소도 제법 늘었습니다. 두 번째 방문한 곳인데도 이전과 달리 선택해야 할 공간이 너무나 많아졌습니다. 건물, 식당, 철길, 영화 촬영 장소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전에는 인적이 드문 길을 조용히 걸었지만, 지금은 어디를 가든 비슷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공간의 한 편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하룻밤을 보낸 게스트하우스
괜찮은 숙소를 찾는 것도 어려웠는데 지금은 골목 사이마다 아기자기한 게스트하우스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옛 건물의 느낌이 남아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습니다. 적산가옥 풍의 게스트하우스는 옛 정취를 느끼는 외형과는 달리 내부는 비교적 깨끗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숙소를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매다 찾아낸 모텔 방에서 동그란 물침대를 보고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던 10여 년 전의 기억과는 사뭇 다른 기분이 들었습니다. 깨끗하고, 편하고, 볼거리, 먹을거리도 많았습니다.
이전에는 정보도 부족했고 누군가에게 추천받은 장소도 없었습니다.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지도를 펼치고 다음 장소를 정했습니다. 세세한 정보는 현지 분들의 입을 통해 들었고 이 길이 맞는지는 두 다리로 확인해야 했습니다. 대부분 계획했던 시간보다 초과되었고 몇몇 장소는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지금은 정보가 넘쳐납니다. 낯선 공간 앞에서 물음표가 생기면 검색 몇 번 만으로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덕분에 낭비되는 시간과 걸음을 줄일 수 있습니다. 계획의 틀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여유롭고 부담 없는 걸음을 걸을 수 있습니다.
늦은 시간에 지나간 초원 사진관
그러다 보니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걸었던 길을 비슷한 감정으로 걷게 됩니다. 누군가 올렸던 사진이나 영상을 보고 먹을거리와 일정을 정합니다. 헤매는 시간을 절약하고 여행을 편하게 보내기 위한 결정입니다. 준비를 잘해야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합리적인 가격, 편안한 공간, 맛있는 음식, 그리고 멋진 순간을 꿈꾸며 여행을 준비합니다.
여행의 준비는 여행의 또 다른 매력입니다. 그러나 과하게 몰입하다 보면 정작 여행의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줄여버릴 수 있습니다. 타인의 감동은 온전히 내 것일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여행지를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열 명이 찾아가면 열 명의 감상이 다른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정보의 공유가 대중화된 지금은 가능한 많은 사람의 의견을 한쪽으로 모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타인과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음을 불안해하기도 하고, 자신의 시선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이럴 필요가 없다고 되뇌지만 나 자신도 남들과 비슷한 방향으로 걷고 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10여 년 전에 갔던 중국집을 찾아갔습니다.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식당은 다른 곳으로 이전한 것 같았습니다. 굳이 그때의 기억을 찾지 않더라도 군산에는 맛있는 짬뽕집이 많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여기저기 검색을 한 뒤, 맛 평가가 좋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중식당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짬뽕 대신 유명하다는 국밥집을 찾아갔습니다. 줄을 서지는 않았지만, 식당 안은 매우 분주했습니다. ‘다른 곳으로 갈까?’ 하는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자리가 났습니다. 자리에 앉아 고된 한숨을 풀어내기도 전에 음식이 나왔습니다. 뜨거워 입에도 가져가기 어려운데 연신 후후 불어 대며 빠르게 털어 넣었습니다. 누가 재촉하는 것도 아닌데 분위기가 그랬습니다. 느긋하게 음식을 바라보고 감상하는 것은 불법처럼 느껴졌습니다.
국밥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워 내고 서둘러 일어섰습니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니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습니다. 같이 간 일행도, 비슷하게 일어선 다른 손님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분명 맛있게 먹고 만족한 얼굴들 일터인데 나는 묘하게 힘든 기분이 들었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군산의 시계는 가속도가 붙은 것 같았습니다. 급하고 바쁜 마음을 차분하게 달래주던 거리는 여행객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이곳저곳을 누비고 있었습니다.
군산은 여전히 여행하기 참 좋은 곳입니다. 친절한 설명과 관광지로 꾸며진 공간은 멋진 사진 한 장을 그려내기에 참 좋았습니다. 누구나 함께 찍는 사진, 모두가 함께 맛보는 음식, 모두 함께 걷는 그 거리는 아무리 걸어도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여행객이 될 수 있습니다. 부담 없이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전보다 깊이 생각하며 걷지 않습니다.
편안함이 여행의 즐거움을 담보하지 않습니다. 여행은 그곳에서 발산하는 감정을 통해 빛을 발합니다. 그것이 웃음이든 고통이든 상관없습니다. 나를 자극하는 모든 것들이 기억으로 남습니다. 오히려 나중에 돌아보면 발바닥에 피로가 쌓여 더는 걷기 힘들었던 순간이 기억에 남습니다. 살며시 턱 밑에 짜증이 걸리고 남은 시간을 어찌할 줄 모르는 상황이 여행의 여운으로 진하게 남습니다.
그 맛을 따라 걸었던 10년 전과 쏟아지는 정보가 안내해 주는 지금의 여행은 같은 공간에서도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시간은 변화를 이끌기 마련이며 처음엔 어색하더라도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는 전통이 되기도 합니다. 10년 전 군산에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어색한 변화는 신선한 공간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마음을 비우고 편안하게 걷다 보니 어색함은 천천히 흩어지고 새로운 변화가 마음에 닿았습니다.
다시 걷는 군산은 아쉬움과 기대가 공존하는 곳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인생의 절반쯤을 보내고 있는 내 모습을 돌아보는 느낌입니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는데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삶을 살고 있는 나를 향한 아쉬움이 느껴지면서, 10년 뒤에는 좀 더 많은 것을 이룬 모습으로 이 곳을 찾으리라는 기대감이 발걸음에 힘을 불어넣었습니다.
나는 또 10년 뒤에 지금을 추억할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그때의 새로운 경험이 지금을 그립게 만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이 곳을 걸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군산을 걸었고 군산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내 인생의 지도에 소중한 흔적을 새겨 넣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