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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Aug 27. 2020

모기향



마트에서 모기향을 발견했습니다.

마침 날파리가 기승을 부리기도 하고 옛 추억도 떠올라 카트에 담았습니다.

모기향에 불을 붙이고 향이 피어오르니 아이들이 신기하다고 모여듭니다.

관심은 잠시 뿐, 이내 코를 막고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이런 향이었구나.'

어린 시절, 참 많이도 맡았던 것 같은데 그때와는 사뭇 다른 향기가 느껴집니다.

요즘은 보기 힘든 모기향이지만 늦여름 모기가 기승을 부릴 때면 

잔잔히 타들어 가는 추억의 향기가 이따금 떠오릅니다.




에어컨도 없던 시절, 

할머니는 손주들의 편안한 밤을 위해 문 앞에 모기향을 피우셨습니다. 

그리고 잠이 들 때까지 천천히 부쳐주셨던 할머니의 부채질 덕분에 

손주들은 편안한 여름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문틈을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이마에 내려앉으면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선 잠을 날립니다.

방 안에는 밤새 태웠던 모기향 내음이 제법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모기향은 나선형의 회색 재만 덩그러니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처음 타들어 갈 때는 넓게 원을 그리며 제법 오래 태울 것 같았지만

고작 하룻밤을 넘기지 못하고 재만 남았습니다.




마치 우리 인생 같습니다.


젊을 땐 한없이 계속될 것 같던 인생도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 버렸음을 깨닫습니다.

아쉬움으로 돌아본들 지나온 시간은 재가 되어 흔적만 남았습니다.

타들어 가는 시간은 아무리 애를 써도 붙잡을 수 없습니다.

조금만 더디 가라 애원해봐도 무심하게 흘러갑니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둠이 내려앉았습니다. 

모기들의 시간입니다.

어둠을 뚫고 미세한 불빛이 눈에 들어옵니다.

피어오르는 연기와 회색빛 재만 남길 줄 알았는데 

모기향은 그 속에 불꽃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모기향은 지금 뜨겁게 불타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불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한 순간도 타오르지 않았던 적이 없습니다.

남은 것이 없을 뿐

매 순간 타오르는 불꽃으로 가득 찼습니다.

인생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빛이 납니다.

지나간 시간에 후회하고 불안한 미래에 무너지다 보니

타오르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할 뿐입니다.     


시간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후회도 불안도 무의미한 까닭입니다.

그저 나는 나의 빛을 밝힙니다.

더 이상 불타지 않을 그 순간까지 

나는 나의 시간을 살아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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