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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Apr 17. 2021

계란 프라이



세 아이가 한 집에 있습니다.


큰 놈은 놀고먹는 대학생이고

둘째는 중2병에서 벗어나 마지막 중학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막내딸은 만화에 빠져있습니다.

등장인물의 성우 이름까지 줄줄 외우고 있습니다.

성우가 꿈이라더니 본인도 목소리는 자신 없는지

요즘에는 애니메이터가 되겠다고 매일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 가장 어려운 요리는 계란 프라이입니다.

요리를 즐겨하는 아빠는 찌개나 볶음은 간단히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계란 프라이는 한 번도 아이들의 마음을 모두 만족시킨 적이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계란 프라이는 기피하는 반찬이 되었고

혹여나 아이들이 요구할라치면 조심스럽게 다른 반찬을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첫 째는 적당히 익은 노른자를 좋아합니다.

앞 뒤 골고루 적당히 익은 노른자가 터져 나오지 않게

그리고 퍽퍽하지도 않게 구워달라고 합니다.

한 번은 아들로 태어나서 고맙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군대 선임, 학교 선배, 혹은 직장 상사로 만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항상 적당히라고 요구하는데 한 번도 그 간격을 맞출 수가 없습니다.

덕분에 적당히 사는 인생이 얼마나 힘든 건지 깨닫고 있습니다. 

뭔가 부족하다는 표정이지만 배고픈 청춘은 남김없이 잘 먹습니다.


둘 째는 노른자의 흔적을 찾을 수 없도록 부쳐 달라고 합니다.

혹여나 노른자를 찔렀는데 찔끔 국물이 흘러나오기라도 하면

실망이 담긴 한 숨을 짧게 내뱉곤 합니다.

그나마 반찬 투정은 하지 않는 편이고 주는 대로 잘 먹습니다.

사춘기인데도 아직 초등학생 입맛을 고수하고 있는 것 보면

여차저차 크게 문제없이 힘든 시기를 보내리라 생각합니다.


막내는 몽글몽글 노른자 모양이 살아 있는 반숙 그 자체를 좋아합니다.

예쁜 모양의 봉긋한 노른자를 살포시 터뜨려 밥에 비비고

김치 한 장 얹어 먹는 아재 입맛의 소유자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김치는 파김치며 간장 게장의 내장에 

따끈한 밥을 비벼 먹는 것이 최고의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비교적 조용히 밥만 먹는 다른 식구들에 비해 막내딸은 매우 시끄럽습니다.

식사시간 내내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만화 이야기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까지 쉬지도 않고 풀어냅니다.





오늘도 실패했습니다.

각자 뭔가 2% 부족하다는 표정으로 식사를 마쳤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계란 노른자는 생각처럼 그 속을 알맞게 익히지 못했습니다.

계란 프라이는 과학입니다.

적당한 불의 양과 프라이팬의 온도, 그리고 시간까지......

뼛속까지 문과생인 아빠에게는 좀처럼 일정한 모양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항상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내는 계란 프라이가 터져 흐르던, 까맣게 태우던 상관없이 

항상 맛있게 잘 먹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요리하는 남편이 그저 기특할 뿐이지요. 

갑상선이 없는 아내는 퇴근 후, 루틴처럼 꼼짝없이 드러누워 회복의 시간을 요청합니다. 

언제부턴가 저녁 식사는 그렇게 아빠의 임무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아빠는 요리를 좋아합니다. 

즐겁게 요리하고 식사 후 회복한 아내가 설거지를 맡습니다. 

"요리보다 치우는 게 더 힘들어."

사실 그게 맞습니다.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시간보다 깨끗이 정리되어 되돌아가는 시간이 더 지루하고 피곤합니다.

아이들도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는 남겨도 '잘 치워주셨습니다.'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뿌듯한 저녁 식탁의 마무리는 언제나 아내의 마무리로 완성되었습니다.


언제고 두 사람만의 식탁이 차려질 날이 오겠지요.

그 날이 행복할지 쓸쓸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지금 보다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반찬 삼아 식사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나란히 놓인 꼭 닮은 두 개의 계란 프라이가 떠오르는 걸 보면

개인의 취향보다 대화의 깊이가 더 행복한 식탁을 만들어 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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