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그늘 아래

by 류완



얼마나 달렸을까?

재킷을 벗어

자전거 손잡이에 걸고는

털썩 주저앉아

한 숨을 들이켠다


쉼 없이 달린다는 게

항상 그렇더라

실수 투성이 발자국도

뒤 돌아볼 여유 없어

부끄러울 시간도 없더라


잠시 멈추어 서서

나무 그늘 아래

지나온 시간을 묶었다


희한하다

걷지도 달리지도 않는 너는

평생 그 자리에서

스치는 발걸음에

휴식을 주고 있구나


그저 팔 벌려 안아주는 것 만으로

제 할 일 다 하는데

나는 무슨 욕심으로

꿈쩍도 하지 않는 땅바닥을

힘차게 차올랐을까?


다시 일어설 때는

나도 너를 위해

두 팔을 벌릴 수 있다면





이제 앞만 보고 달리는 시절은 지난 듯합니다.

조금씩 뒤를 돌아보며 지나온 길을 확인하는 순간이 늘어갑니다.

지나온 시간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줄어 들수록

점점 더 지난 시간에 눈을 뗄 수 없습니다.


나이를 먹는 게 행복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생일이 지나면 한 살 더 어른이 되었다고 기분 내기도 했고

친구들이랑 서로의 생일을 말하며 내가 더 형이라고 어깨를 들썩이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먹어가는 나이를 무어라 그리 고대하며 지금의 시간을 맞았는지......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걸음을 돌릴 수도 없는 지금의 나는

멈춰 선 그곳에서 하늘을 우러러봅니다.

흐린 하늘을 가린 붉은빛의 나뭇잎이 바람에 날려 손을 흔듭니다.

언제고 떨어질 잎이지만 오늘은 우울한 하늘을 가려 내 마음에 붉은색을 더했습니다.


고마운 녀석도 한 때는 푸르른 시절이 있었을 터

이제 곧 저 붉은빛 마저 땅에 떨어져 마르고 썩어질 생각이 안타까움을 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는 팔을 내리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앙상한 마른 가지로

꿋꿋하게 하늘을 품습니다.

따스한 바람을 기다리며, 다시 만날 푸르름을 꿈꾸며,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나아가는 것 만이 인생이 아니라면

나도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누군가 기다리는 행복을 알아가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사랑하며 살아가는 꿈을 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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