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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y

by 류완



"그런 건 다 판타지야."


거나하게 취기가 오른 친구가 크게 한 마디 던졌습니다.


Fantasy

공상, 또는 환상


그 날 우리가 나눈 대화는 매우 평범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부부는 육아와 학부모의 역할에 지쳐 있고

부모님은 점점 기력이 쇄하는 시점

우리는 모두 중년이라는 시간을 달리고 있습니다.


누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자영업을 하는 친구였는지,

회사를 다니는 친구였는지,

음악을 하고 있는 친구였는지


모두 참 잘 살고 있는 친구들이었는데

우리는 그 날 우리가 처한 현실과 환상을 구분했습니다.


우리가 부른 환상은 이렇습니다.

가족, 사랑, 부부애

그리고 더 이상 꾸지 못하는 꿈......


현실은 줄어드는 은행 잔고,

매달 찍히는 대출 이자,

해마다 늘어가는 아이들의 교육비와

부모님의 병원 방문 횟수


그때는 나 역시도 크게 공감하며 인정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이후 하루, 혹은 이틀이 지날수록

그때의 대화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내 삶에 환상은 무엇일까?

환상이 현실이 될 수는 없는 걸까?





공상, 또는 환상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공상 -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을 막연히 그리어 봄

환상 - 가능성이 없는 헛된 생각이나 공상


돌이켜보면 환상이라 여겼던 생각들은

한 번 즘 우리가 이루었던 일들이었습니다.

사랑을 했고, 가족을 이루었으며, 한 때는 모두 꿈을 꾸고 살았습니다.

판타지는 흘러간 나의 이야기, 과거의 경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이를 환상이라 부르는 걸까요?

마치 한 번도 손에 쥐어 본 적이 없는 것처럼......





"그래도 그때가 참 좋았지."

"그래, 지하철이 끊기고 택시비가 없어. 일곱 정거장을 걸어간 그날 새벽이 아직도 기억난다."

"너네 부부 단칸방에 모두 모여서 잔 날 기억해?"

"아직도 너네 욕한다. 이렇게 눈치 없는 친구들이 어딨냐고."


가진 것이 없어도,

아니 가진 것이 없기에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때의 젊음, 꿈, 그리고 사랑을 여전히 그리워하는 것 같습니다.

가능성이 없는 헛된 생각이라 치부하기엔

우리의 판타지는 구체적인 과거의 흔적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판타지는 내가 경험했던 과거의 기억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내 삶을 지탱하는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환상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사랑은 남아 있고, 가족은 소중하며,

그때와 다를 뿐, 새로운 꿈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먼 훗날, 지금을 추억하며 다시 또 판타지라고 투덜댈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은 시간이 살짝 밀어내고 나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다시 꿈을 꾸자고 말했습니다.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친구에게 답장이 왔습니다.


'미친놈. 그러든가. ㅋㅋㅋ'


괜찮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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