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꿀호떡

by 류완



집 근처 분식집을 지날 때였습니다.


"여기 호떡을 파네?"


아내의 반가운 반응에 나 또한 시선이 움직였습니다.


하얀 종이에 매직으로 그리듯이 적은 '꿀호떡'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날씨가 추울수록 따뜻한 먹을거리에 눈길이 가는가 봅니다.

공원 한 바퀴 돌고 나서 호떡을 먹으러 가자는데 운동하러 나온 아줌마가 맞나 싶습니다.

자기는 호떡을 먹을 테니 나에게는 떡볶이를 먹으라는

한석봉 어머니의 주문 같은 요청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입니다.

어차피 떡볶이도 자기가 다 먹을 거면서......


음식을 채워야 하니 걸음은 더 경쾌해졌습니다.

산책 코스는 짧아졌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부부는 분식집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손님은 없었지만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사장님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이전에도 몇 번 들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사장님은 항상 친절하셨습니다.

아니 과하게 친절하셨습니다.

음식을 내어 놓으시고는 입맛에 맞는지 꼭 물어보셨고

무언가 부족하다 싶으면 새로 해서 내주신 적도 있었습니다.

괜찮다는데도 한사코 본인이 아쉬워서 그런다며 음식을 손님 입맛에 맞추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어떻게 맞추려고 그러시는지 답답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호떡 하나, 떡볶이 1인분, 튀김 한 접시,


메뉴 하나가 더 늘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하나씩 과하지 않은, 적당한 양이라고 합니다.

사장님은 떡볶이와 튀김을 먼저 내주시면서 다 먹을 때 즈음 호떡을 후식처럼 내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쯤 되면 오성 호텔 레스토랑급 서비스입니다.

사장님의 세심한 서비스에 이미 배가 불러옵니다.





떡볶이와 튀김이 먼저 나왔습니다. 적당히 맵고, 적당히 달고,

적당히 익은 떡볶이는 적당히 살고 있는 부부에게 잘 어울리는 맛입니다.

튀김 역시 아주 바삭하지는 않지만 떡볶이 양념에 찍어 먹기 좋은 크기와 식감이었습니다.

눈이 번쩍 뜨일 만큼 훌륭한 맛은 아닐지라도 사장님의 정성이 느껴지는 그런 맛입니다.


호떡이 나왔습니다.

배가 불러 그냥 싸가자고 했더니 아내는 아직 본인의 위장에는

빈 공간이 남아 있다며 종이컵에 담긴 호떡을 후루룩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새로나온 액상형 호떡인가 싶었습니다만

나에게는 맛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먹는데 살이 안찌겠냐?'라고 지나가는 고양이를 쳐다보며 중얼거렸습니다.

분명히 마음속으로 외쳤는데 서늘한 눈빛으로 쳐다봅니다.

불현듯 재판을 마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떠올랐습니다.

들릴 듯 말 듯 '그래도 지구는 돌 껄?'이라고 속삭였는데

어느 귀 밝은 양반이 그걸 듣고 멋지게 부풀린 것은 아닐까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상상하는 동안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아내에게는 떡볶이가 조금 매운 것 같다고 얼버무렸습니다.


기분 좋게 먹고 기분 좋게 계산하며 감사인사와 함께 근황을 여쭈었습니다.

잔병치레도 힘든데 장사도 잘 안된다며 살며시 불평을 풀어놓으셨습니다.


생각해보니 얼마 전, 길 건너에 유명 프랜차이즈 분식점이 들어왔습니다.

식당 입구에는 떡볶이 한 접시에 990원이라고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렸습니다.

괜찮으시냐고 물었습니다.

괜찮다고 대답하십니다.

좋아하는 맛을 따라가는 거라 하시며 상관없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몸이 편찮으셔서 종종 문을 닫으셔야 하는 사장님에게는 허탈한 기분일 것 같습니다.


묵직한 정적이 흐르고 나니 사장님은 깊이 있는 진심을 꺼내어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한 번 먹어봤는데 너무 맵고 별로더라고. 이게 더 맛있어."


세 사람은 호탕하게 웃으며 서로 맞장구를 쳤습니다.

웃음은 서비스, 할머니 사장님은 식당 밖으로 나오셔서 인사를 하셨습니다.

부부는 얼마의 돈을 지불했는지 기억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돈을 내고 정당한 서비스를 받았을 텐데 대접을 받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돈을 내고도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고 나온 것 같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Fanta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