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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Feb 11. 2021

나에게 새벽 4시는

신민경 / 새벽 4시, 살고 싶은 시간



하루? 아니 한 시간이나 걸렸나 싶습니다.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작은 책, 짧은 분량은 부담 없이 읽기에 좋습니다.

그러나 책의 내용은 부담 없이 읽기 어렵습니다.


책의 저자는 브런치 작가입니다.

지난해 가을에 처음 읽게 된 그녀의 글은 묘한 충격과 호기심으로 눈을 돌리기 어려웠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써 내려간 글에는

때론 격정적이고 때론 담담한 고백이 담겨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풀어내는 마음으로 읽어 갔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숨겨 두었던 그녀의 삶과 죽음에 대한 감정들을 만났습니다.

 






길지 않은 내용이지만 작가의 정성이 곳곳에 묻어 있습니다.

고통의 시간 속에서 얼마나 이를 악물고 글을 써 내려갔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위장염 만으로도 몸을 부르르 떨면서 글을 쓰기는커녕 읽기조차 힘들었던 경험이 떠오릅니다.

마약성 진통제로 흐릿한 정신을 부여잡고 써 내려간 

그녀의 글 위에는 고통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그러나 책은 무던하게 그 시간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다행히 눈물을 쏟아내는 고백은 아닙니다.

천천히 그리고 반복해서 읽다 보면 편안하게 한 사람의 삶의 고백을 마음에 담을 수 있습니다.







새벽 4시,


한 동안 나에게는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불혹의 나이를 건너 던 시기에 우울증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불면의 시간이 끌려왔고 한두 시간으로 끝나던 뒤척임은

줄어들기는커녕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 길게 이어졌습니다.

어두운 방 안에서 4시간을 넘도록 잠들지 않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일찍 해가 뜨는 날은 다음 날 아침 햇살을 뜬 눈으로 받아야 했습니다.

악몽 같은 현실이 이어질수록 또렷해지는 생각은 하나로 이어졌습니다.

'왜 사는 걸까?'


불면과 수면의 밀고 당기는 삶 속에서 저자를 만났습니다.

이런저런 안부를 묻기도 하고 농담도 주고받으면서 삶을 응원했습니다.

본인의 글이 책으로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최종 표지가 나왔다며 올린 글에서 책의 제목을 보았습니다.

'새벽 4시, 살고 싶은 시간'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나에게 하는 말인가 싶었습니다.


책을 두 손에 받아 들고 나자 의문은 확신으로 변했습니다.

나에게 새벽 4시는 죽음이 아닌 삶을 갈망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느리게 잠드는 삶이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 깨어있는 시간이 많았음을 감사하며 

고통을 아름답게 그려내는 능력을 키워가자고 다짐했습니다.

 

본인의 바람대로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었습니다.

그 고백을 들으면 본인도 희망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백합니다.

나에게도 새벽 4시는 하루 중 삶이 가장 그리워지는 시간입니다.

한 권의 책이 그렇게 만든 건 아닐지라도

이 책을 읽으며 마음속 진심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생 막내딸이 책을 읽고 이렇게 말합니다.

"글 좀 쓰시는 듯...."

어이가 없어서 책은 다 읽고 하는 말인지 물었습니다.

뒤적이며 중간중간 아무 곳이나 뽑아 읽어도 읽힌다고 좋은 책이라고 합니다.

진득하게 읽으라고 타박을 했었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잠을 청하거나, 무료하거나, 머리가 복잡할 때,

이 책을 꺼내 아무 곳이나 펴서 읽습니다.

초등학생이 말한 좋은 책의 정의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한 손에 들어오는 아담한 책은 손에 쥘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보드라운 표지의 질감도,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그렇게 책의 제목을 마음에 담는 일이 취침 전 루틴이 되었습니다.

친구 같은 책입니다.


아픔을 담은 책이지만 아프지 않습니다.

슬플 것 같지만 미소가 지어집니다.

절망적인 이야기지만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얼마 동안 가장 좋아하는 책이 될 것 같습니다.

작가가 만들어내는 문장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소중합니다.

또다시 만나고 싶은 욕심이 간절합니다.

확신만 있다면 기다림은 전혀 지루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도리어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행복할 것 같습니다.


힘들면 그녀의 느낌표 하나 만이라도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나는 당신의 글로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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