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 아내와 동네 어귀를 돌다가 평소 다니지 않는 길을 걸었습니다.
발길에 차이는 낙엽을 따라 걷다 보니 길은 특별한 공간을 열어주었습니다.
노랗고 붉은 융단 위를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쁜 길이 있었네."
감탄에 감탄을 물고 걸음은 미소를 따라 흘렀습니다.
"안 되겠다. 내일 카메라를 들고 다시 와야겠어."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굳은 다짐으로 내일을 계획했습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다가 사흘을 그냥 보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해가 지기 전 늦은 오후에 맞춰 이전에 걸었던 길을 찾았습니다.
햇살이 낮게 깔린 낙엽의 진한 붉은빛을 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잔뜩 기대를 품고 찾아간 길은 며칠 만에 다른 풍경을 담고 있었습니다.
노랗고 붉은 가로수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남겨 있었고
낙엽은 쌓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가지런히 쓸려 나갔습니다.
덕분에 보도블록은 깨끗한 회색 빛을 되찾았습니다.
누군가 성실히 쓸어 담은 흔적은 기대하지 못했던 아쉬움으로 되돌아왔습니다.
"하아~"
한 숨이 흘러나왔습니다.
며칠만 그냥 두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서
원치 않았던 누군가의 성실함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한편으론 세상은 나처럼 게으른 사람만 있는 건 아니라는 안도감과 부끄러움도 함께 다가왔습니다.
길을 걷다가 두툼하고 커다란 포대 자루를 발견했습니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가을이 저 안에 담겨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단단한 보도블록을 지그시 밟으며 길 위에 아쉬운 마음을 뿌렸습니다.
원했던 가을의 색은 사라졌지만 길은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뜻한 바를 얻지 못하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느리게 걷는 발걸음 뒤로 뒤늦게 떨어진 낙엽 한 두 개가 바람에 날려 따라붙습니다.
아쉬움을 달래주는 건지, 약을 올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골목을 돌아서니 누군가 쓸다 만 거리를 만났습니다.
희미한 그 경계가 참 반갑습니다.
손을 잡고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밟고 걷는 이들이 부럽습니다.
가을은 이렇게 즐기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해가 지자 찬 공기가 대기를 채우고 손가락 끝이 금세 시려집니다.
걸음을 재촉하는 내 모습은 내 의지가 아닙니다.
한 해의 끝에 다다를수록 시간이 달리는 속도는 왜 이리 빨라지는지 아쉬움만 깊어갑니다.
천천히, 느리게 변하는 시간이 그리워지는 요즘입니다.
어쩌면 나의 부지런함이 필요했을지 모르지만
오늘은 누군가의 게으름이 그리운 날이었습니다.
부질없는 혼자만의 욕심임을 알면서도
조금만 더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바라며
함께 느리게 걷기를 기대했던 그런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