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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크리스마스 이야기

by 류완



비좁은 집에서 다섯 식구가 살아온지도 20년째가 되었습니다. 여차저차 살다 보니 좁은 집도 견디며 살게 되더라고요. 둘째를 낳을 때까진 늘어나는 짐들을 어찌하지 못해 이사를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는데, 셋째를 낳고 나서 하나 둘 버리기 시작했더니 공간은 크게 넘치지 않았습니다.


작고 부족하게 사는 삶,

넉넉하진 못하지만 그 안에서 찾는 여유가 쏠쏠한 즐거움을 전해줍니다. 게다가 요즘은 미니멀 라이프라고 우리 가족이 사는 모습이 하나의 트렌드라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그저 따라갈 뿐입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우리 집의 작은 역사를 돌아보게 됩니다. 때때로 장만한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한쪽 공간을 채우기 시작하더니, 더 이상 채워 넣을 공간을 찾기가 어려워졌습니다. 20년 동안 시나브로 채워 나간 장식들에는 지난 시간 가족의 일상을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기 전, 작은 트리 하나를 장만했습니다. 부부가 한 집에서 처음 맞이하던 크리스마스는 무릎 높이도 안 되는 키 낮은 트리 하나로도 따뜻했습니다. 지금은 조명도 바꾸고 장식도 바뀌어 주방 한 편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트리는 리모델링되었지만 뼈대는 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제법 오래된 우리 집 터줏대감입니다.


트리 옆에는 이듬해 첫 아이를 낳고 맞이한 크리스마스 때 어머니께서 선물해주신 도자기 인형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귀여운 산타와 눈사람들이 여전히 그 미소를 잃지 않고 있습니다.


1년 뒤에는 방 문에 설치할 장식을 장만했습니다. 지금은 특별하지 않지만 그때는 대단한 인테리어를 한 것처럼 신선한 느낌이었습니다. 부부는 트리 옆에 장식과 조명을 설치해 두고 제법 뿌듯한 기분을 만끽했습니다.





이후로 크고 작은 장식들이 채워졌다가 사라지곤 했습니다. 파손되거나 수명이 다 해서 버려지는 장식들도 생겼습니다. 무생물도 그 수명을 짐작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건 큰 아이보다 나이를 많이 먹었음에도 여전히 멀쩡한 물건도 있고, 불과 한 시즌도 함께 하지 못한 안타까운 장식들도 있습니다. 관심과 애정은 사람이나 동물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닌가 봅니다. 그렇게 만남과 이별 속에서 장식은 하나씩 공간을 채워 나갔습니다.


집이 좁기 때문에 불필요한 물건을 바닥에 내려놓고 살 수 없습니다. 아이들의 체격이 커져갈수록 공간은 비좁아지고 가능한 한 발걸음이 닿는 곳은 무조건 치워야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장식은 벽과 천정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장식에 더욱 눈이 가게 되었습니다.


10여 년 전 즘에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고속터미널 역 지하상가를 구경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파는 곳이 많았는데 시즌이 다 와서 그런지 사람들의 발걸음은 한산했습니다. 마침 예쁜 장식을 보고 한참을 살피고 있는데 가게 주인이 시즌이 다 되었으니 3만 원에 팔던 걸 만 오천 원에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예정에 없었던 지출이었지만 부부는 기분 좋게 장식을 구매했습니다.


오래되다 보니 지금은 장식이 갈라지고 색도 빠졌습니다. 전구는 중간중간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자세히 보면 그 흉한 몰골이 드러나지만 여전히 부부에게 가장 사랑받고 있는 장식입니다. 가난한 부부에게 단 돈 만 오천 원으로 살 수 있었던 그 날의 감동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물론 힘겨웠던 시절의 마음에 함께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6년 전 즘에는 주광색 전구가 심심해서 별 모양의 백색 등을 마련했습니다. 서로 다른 색의 빛이 어울리지 않으면 어쩌나 했는데 생각보다 조화롭게 분위기를 살려주었습니다. 이듬해 하나 더 장만해서 더 길게 연결하려고 했지만 가격이 두배 이상으로 뛰었습니다. 모르면 몰라도 한 번 저렴한 가격에 샀던지라 구매욕구가 차갑게 식어버렸습니다. 하늘 높이 오르는 물가에 투덜대면서 부부는 오래간만에 마음을 맞추었습니다.




4년 전, 큰 맘먹고 대형 가랜드를 장만했습니다. 천정에 매달아 두었더니 거실을 환하게 비춥니다. 제법 고가였지만 오래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는지 길게 고민하지 않고 구매했습니다. 오래된 장식들을 초라하게 만들 줄 알았는데 나름 조화를 이루면서 자신의 웅장한 모습을 과감히 드러냅니다. 이것 역시 시즌 떨이로 2만 원 깎아서 구매했니다. 떨이로 사는 재미를 들인 건 셋째 아이 생일 때문이기도 합니다. 셋째의 생일은 1월 18일입니다. 우리 집 트리 장식은 막내딸 생일 때까지 치우지 않습니다. 좀 더 오래 걸어 둘 핑계로 적절합니다. 생일 파티가 끝나면 다음날 치워냅니다. 그리고 얼마 후 맞이할 입춘을 기다리며 조금씩 길어지는 낮을 즐기며 늦겨울을 보냅니다. 그렇게 좁은 집에서 길고 긴 겨울을 보내는 가족의 루틴이 만들어졌습니다.





제법 많은 장식들이 거실의 한쪽 벽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아이들이 어린 시절 만들었던 소품들도 그대로 두었습니다. 아름답지만 약간 서투른 장식들의 조화가 우리 가족의 모습 같습니다. 때에 따라 이 겨울의 주인공이 달라지는 것이 우리 가족 구성원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이 곳에 새로운 가족이 함께 할 일은 없지만, 누군가 이 집을 떠나갈 날이 가까워지고 있음은 예측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부부 둘 만 남아 오붓하게 캐럴을 들으며 담소를 나눌 때가 오겠지요. 그게 그리 서글프지만은 않습니다. 부부가 함께 늙어갈 수 있음이 축복이기도 하니까요.






시간의 간격을 채우며 차분히 쌓여간 크리스마스 장식을 통해 나의 글쓰기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오래된 글도 있고 때에 따라 버려진 글들도 있습니다. 새롭게 장식을 해서 이 전 보다 깔끔하고 맛깔날게 고쳐진 글도 있다고 자찬도 해봅니다. 그렇게 쌓인 글들이 마음의 한쪽 벽을 채워 내 삶을 장식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대부분 감동을 나누기에는 부족한 글입니다. 하나하나 떼어 보면 초라하고 부끄러운 글이지만 하나로 모인 글들은 내 삶의 역사이자 한 권의 책이 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이야기는 특별한 힘이 있습니다. 어떤 글이든 모이면 모일수록, 쌓이면 쌓일수록 자신만의 색으로 빛을 내는 것 같습니다. 20년 동안 차곡차곡 모았던 불 빛이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 낸 것처럼, 오랜 시간 쌓여 간 이야기들은 작품을 만들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화려하고 단단한 보석이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품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동지가 지났습니다. 내일부터는 밤 보다 낮이 조금씩 길어집니다. 하루하루 늘어가는 햇 빛에 마음을 비추면서 우울은 날려 버리고 싶습니다. 어느 해 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넉넉한 겨울이지만, 하루하루 희망으로 채워 가다 보면 반전의 스릴러가, 혹은 감동의 스토리가 펼쳐질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이 곳에 글 쓰는 모든 분들의 작품이 명작으로 남기를 기대하며......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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