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하나를 쓰기 위해서

버려야 하는 것들

by 류완



오늘은 일찍 저녁을 먹었습니다. 메뉴는 불고기입니다.


국내산 한우에 간장, 마늘, 후추, 생강, 양파 그리고 설탕 대신 매실액이나 과일을 갈아 넣고 만든 불고기가 몸에도 좋고 소화도 잘 되겠지요. 하지만 오늘은 시간이 부족합니다. 마트에서 대충 양념이 되어 있는 호주산 소불고기를 사 왔습니다. 양념이 되어 있는 불고기에 따로 양념과 채소를 더하면 국물이 자박자박 올라오면서 전골처럼 달라집니다. 이렇게 불고기를 상위에 올리고 나면 아이들은 숟가락으로 국물과 함께 비벼먹기를 한 공기, 두 공기 채우더니 가장 많이 먹는 둘째는 세공기까지 말아먹습니다. 아빠 음식이 최고라고 아내는 연신 추켜올려줍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밥해달라는 일종의 협박이겠지......


음식은 내가 했으니 설거지는 아내의 몫입니다. 나는 재빨리 믹스커피 한 잔을 타고 방으로 들어와 모니터 앞에 앉습니다. 아내는 아직도 그 자리에 앉아 오늘 설거지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다음 생에는 저렇게 살아야겠다는 꿈과 희망이 생겼습니다. 아직은 내 글을 쓸 시간이 아닙니다. 미리미리 이달에 끝내야 할 업무를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천천히 하면 되지만 늦으면 늦을수록 다른 일을 하는데 여유가 없습니다. 밀리지 않고 나만의 빈 공간을 만들어 두어야만 공상과 상상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제 주변 청소도 하고 적당히 운동도 해야 합니다. 날씨가 좋으면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옵니다. 지금은 재미가 들렸지만 한 동안은 이 시간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하지 않으면 책상 위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위장염 약을 먹고 쓰린 속을 부여잡고 누워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버려진 날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정신력으로 버티라고 하는데 제일 미련한 게 정신력으로 버티는 것 같습니다. 약으로 버텨야지......


아무튼 그렇게 늦은 저녁이 되면 느긋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보장받습니다. 아이들도 아내도 이쯤 되면 잠을 자냐 마냐로 실랑이를 벌일 시간입니다. 그들이 콩으로 메주를 쑤든 상관없이 나는 오늘 머릿속에 맴돌았던 이야기를 글로 적어 내려갑니다. 혼자만의, 자유로운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순간입니다.






쉽게 적어 내려가는 글도 있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느긋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글쓰기도 결국 하루 24시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마무리를 지었던 못했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두 손은 키보드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대개 한두 시간 고민하고 고민했던 글들은 일단 저장이 되기도 하지만 생각과 거꾸로 달리는 글은 지워버리기도 합니다. 글을 쓰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데 다시 읽어보면 글이 아닌 분노, 혹은 불만만 털어 낸 적도 많습니다. 순간의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면 생각은 뒤틀리거나 왜곡되고, 결국 좋지 않은 글을 만들어냅니다. 혼자만의 일기장이라면 몰라도 함께 나눌 글이라면 꾸깃꾸깃 뭉쳐서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하루에 완성되는 글은 없습니다.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면 오늘을 반복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서랍에 담긴 저장된 글을 꺼내 완성작으로 다듬는 일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면서도 괴로운 시간입니다. 문장 하나를 두고 기싸움하듯 노려봅니다. 내가 지면 그 문장을 지워버리지만 내가 이기면 매직 아이처럼 뭔가 대단한 문장이 화면에서 튀어나옵니다. 더디고 지치지만 글쓰기의 기적을 가장 많이 체험하는 순간입니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행위가 인고의 고통이라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내 삶의 일부를 나누는 글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글을 토해내는 마지막 순간에 다다를수록 속이 메스꺼워지는 감정을 경험합니다. 하나의 글을 완성하고 나면 기쁨보다 허탈감이 크게 다가옵니다. 글을 쏟아내는 순간에는 대단한 상상력이라 여기고 머릿속에 담긴 생각들을 풀어냈지만 시간이 흘러 두 손에 남은 건 식어버린 감정들 뿐입니다.


하나의 글을 쓰기 위해 버려야 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시간은 기본이요, 소비되는 감정도 제법 넉넉히 버려집니다. 글을 쓰지 않을 때 즐겼던 유희들도 하나 둘 포기해야 합니다. 스포츠, 드라마, 영화 감상 같은 취미가 줄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경험하면서 의도치 않게 만남과 대화가 줄었습니다. 혼자의 시간이 늘었다는 건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도 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생각이 뒤죽박죽 엉키고 잡다한 생각들로 가슴이 답답할 때 면 혼자 있는 시간이 괴롭게 느껴질 뿐, 아무것도 내 손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저 머릿속에서 빠르게 사라지는 불필요한 생각들만 반복될 뿐입니다. 그럴 때, 하나의 글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내가 버려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합니다. 생산적 활동을 위해 비워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버리지 않으면 채울 수 없듯이 말입니다.


이 지긋지긋한 과정을 반복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리고 나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 걸까요?


무언가를 얻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이 이끄는 데로 쫓아갔지만 두 손에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습니다. 나는 결국 글을 쓸수록 버려야 하는 것들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좋은 글은 내가 얻는 것보다 내가 버려야 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늘을 향해 열기구를 띄우는 상상을 합니다. 기구는 떠오르기 위해서 모래주머니를 버려야 합니다. 떠오르는 순간에는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조금씩 멀어지는 지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잘하고 있는 건지 의구심이 듭니다. 현실과 멀어지는 모습이 불편하고 두렵습니다. 그러나 어느덧 땅 위의 아름드리나무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고개를 들면 산 너머에 섬어 있었던 새로운 세상이 보입니다. 조금 더 오르면 지평선은 아름다운 곡선을 보여줍니다. 꾸준히 버릴 때마다 열기구는 더 높이 떠오르고 세상은 더 넓게 펼쳐집니다.


내가 쓰는 글들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요? 욕심 없이 쓰자고 다짐했는데 여전히 욕심의 때가 벗어지지 않았습니다. 딱히 유혹도 없었는데 스스로 잡다한 생각을 채워 부끄러운 글이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버려야 할 때입니다. 처음 그때처럼, 내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모습을 찾기 위해 느리고 정직한 글쓰기를 따라가 봅니다.


'너무 잘 쓸 필요 없어. 진심을 담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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