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이유

에필로그

by 류완


편집자 경력만 20년입니다.


그것도 유명한 출판물이 아닌 매달 공공장소에 부착되는 평범한 글 몇 편입니다.

아르바이트하듯이 시작한 일이 내 일이 되었고 지금은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비영리단체 업무 특성상 소득은 평균 이하입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만하라는 사람도 없고 계속하라고 떠미는 이도 없습니다.

엄청난 이슈를 만들거나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내는 공간도 아닙니다.

사실 그래서 좋습니다.

관심을 끄는 공간은 아니지만 그곳에 작은 사랑과 희망을 피워내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일을 오랜 시간 지속해 오다 보니 자신의 일에 대한 확신을 잃어갈 때가 있습니다.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어느 직종, 어느 업무를 맡고 있던지 일은 자부심과 부담감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은 빠르게 변하지만 내가 하는 일은 그대로 정체되어 있는 기분이 들 때,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지, 잘 살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처절한 몸부림 속에서 어떤 결단을 하고 나면 한 단계 레벨 업 하는 삶을 사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20년 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여전히 글을 쓰고 있지만 그 글은 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지만 무미건조하기도 하고 너무 평범해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더욱 많습니다. 공공장소에 실리는 글은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공익광고도 자극이 지나치면 빗발치는 항의를 받는 세상에서

타인의 이름으로 화려하고 멋진 글을 남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급여는 항상 최저 시급에 맞춰져 있지만 앞으로도 오를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만할까? 하는 생각이 뒤늦게 머리를 스쳐갑니다.

지금 이 나이에 뭘 해야 하나 하는 순간 받았던 한 통의 전화는

삶에 대한 고민을 다른 쪽으로 흐르게 만들었습니다.






한 중년 여성이 지하철 승강장의 글을 읽고 전화번호를 찾아 무작정 전화를 걸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의 여성은 자신이 읽은 글을 딸과 함께 나누고 싶다며 글을 보내 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묻지도 않은 딸의 상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딸은 명문대를 나왔지만 취업했던 회사에서 따돌림을 당해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회사를 그만두고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집 밖을 나오지 않는다는 안타까운 사연이었습니다.

딸에게 어떻게든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어머니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문을 열지 않는 딸에게 문틈으로 위로가 되는 글을 넣어주고 싶다는 고백이었습니다.


10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저는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희망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아주 작은 능력으로 말입니다.





착한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기적이고 모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나로 인해 상처받고 분노했던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고집도 강하고 화를 참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날카로운 부분이 깎여 조금 부드러워졌을 뿐,

여전히 욕심 많고 이기적인 생각들 속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땅속, 낮은 곳에서 일하다 보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습니다.

서있는 위치가 달라지면 보이는 세상도 달라집니다.

낮고 낮은 곳에 있다 보면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삶이 보입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고 시간도 없고 금전적으로 넉넉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때론 불쑥 걸려온 전화로 삶의 푸념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어지간히 힘들지 않고서야 모습도 모르는 이에게 자신의 신세를 풀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명상의 시간을 갖거나 책을 사다 볼 여유도 없는 이들에게

작은 휴식이라도 남겨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씁니다.

누구의 이름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위로가 되는 글이면 됩니다.

오늘 하루 단 한 명이라도 글을 읽고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앞으로 언제까지 제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할 수 있을 때까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전할 수 있기만 바랄 뿐입니다.


돌아보니 참 오랜 시간, 글을 쓰면서 살아왔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참 많이 웃기도, 울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글을 쓰면서 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인생의 중반전을 넘어오면서 갖게 된 소박한 소망입니다.

아마도 욕심을 버리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순진한 생각이라 할지라도 남은 인생은 그렇게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요.

6월 초에는 끝마치려고 했는데 역시 내 글쓰기는 속도가 더딥니다.

올해는 브런치 북을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마지막으로 내 자전적 고백이 담긴 책 하나 남겨보기로 했습니다.

지루하게 이어진 평범한 글쟁이의 삶이지만 읽어주신 시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제 푹 쉬었다 오겠습니다.

아니 본 업에 충실해야겠지요.

여전히 글 쓰는 일입니다.

도움을 주고 싶으시다면 연락 주세요.

저는 사랑을 나누고 픈 글이라면 언제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올여름도 무척 더울 것 같아요.

청량한 글로 다시 뵙겠습니다.

평온하시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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