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완 Dec 10. 2020

그린치는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훔쳤을까?

 


미국의 동화 작가 닥터 수스(Dr. Suess)는 1957년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하는 동화 한 편을 발표했습니다.


동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그린치는 초록색 괴물로

남들과 다른 외모 때문에 사람들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린치는 마을에서 떨어진 동굴에서 혼자 살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1년 중 가장 큰 축제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서로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심술궂은 그린치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

마을 사람들이 준비한 선물을 모두 훔쳐갔습니다.

선물을 모두 잃은 마을 사람들은 슬픈 얼굴로 광장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마을 사람들은 선물에 집착한 나머지

그동안 보지 못했던 가족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외모 때문에 상처 받았던 그린치에게

마을 사람들이 용서를 구하며 이야기의 끝을 맺습니다.


닥터 수스는 짧은 동화 이야기에 진정한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담고자 했습니다.

1950년대 미국은 여전히 인종차별이 계속되었고, 빈부격차도 심했습니다.

작가는 크리스마스가 상업적으로 변질되어 가는 현실과

값 비싼 선물을 받아야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이 되는 문화를 꼬집었습니다.

동화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동기들과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종로 어디에서 만나 영화관으로 향했습니다.

영화 예매를 책임진 과대표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는 멋진 영화를 예매했다고 자랑했습니다.

영화 제목은 '그린치',

모인 친구들은 모두 충격과 공포로 그 자리에 얼어붙었습니다.

개인의 독특한 취향이 갈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영화관 자리에 앉을 때까지 과대표에게 투덜댔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영화는 생각보다 재밌었습니다.

녹색 괴물 그린치의 인상적인 연기가 돋보였고

뻔한 결말이지만 따뜻한 스토리에 연말 분위기를 흠씬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다 볼 때까지 그린치 역의 녹색 괴물이 짐 캐리인지 몰랐습니다.

극장을 나오다 팸플릿을 챙긴 후배 덕에 알게 되었습니다.

참 멋진 배우입니다.

배역을 위해 자신을 버릴 줄 아는 배우라 생각이 듭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동화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코로나가 이번 크리스마스를 훔쳐간 것 같습니다.

녹색의 괴물도 아니고 우리 눈에 보이진 않지만

영화처럼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잃었습니다.

선물도, 여행도, 만남도 줄었습니다.

캐럴이 흘러나오는 멋진 카페도 찾아가기 어려워졌습니다.

모두 자신의 공간에서 조용히 맞이해야 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잃은 요즘, 닥터 수스의 이야기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린치의 이야기를 통해 나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봅니다.

나에게도 외면하고 무시했던 녹색의 괴물은 없었는지,

나로 인해 상처 받은 사람들은 없었는지,

나를 잃고 불필요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았는지......


자고 일어나면 힘든 소식들이 밀린 빨랫거리 처럼 쌓여 갑니다.

좌절이 일상이 되는 요즘, 마스크에 가린 사람들의 표정은 밝아 보이지 않습니다.

위로가 필요한 시간, 하지만 우리가 기다리는 희망은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집니다.


'끝났다고 울지 말아요. 그 일이 일어났기에 미소 지어봐요.'

(Don't cry because it's over. Smile because it happened.) 

닥터 수스가 남긴 한 마디입니다.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머릿속에서 털어내 버리고 홀가분하게 웃어보세요.

힘들면 힘들다고 소리쳐보고, 외로우면 외롭다고 이야기하세요.

걸음을 묶어 둔다고 마음까지 닫을 필요는 없습니다.

선물도, 여행도, 만남도 없는 크리스마스지만

서로의 마음은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기를,

그 어느 때보다 사랑과 희망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랑 (Blu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