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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Dec 06. 2020

파랑 (Blue)

행복과 우울 사이



지구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색은 파랑입니다.

맑은 날, 어디서든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면 볼 수 있는 색입니다.

지구 표면의 70%는 푸른빛을 띠는 바다로 채워져 있습니다.

아폴로 17호는 파란 구슬 같은 지구를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사진에 붙여진 이름은 '블루 마블',

오랫동안 사랑받는 보드게임 이름으로 알려졌지만

지구를 표현하는 가장 유명한 닉네임이기도 합니다.


파랑은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으면서 쉽게 만질 수 없는 색이기도 합니다.

인위적으로 색채를 내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파란 물질은 많지 않습니다.

식물, 동물, 광물 중에도 파란 빛깔을 내는 존재는 흔치 않습니다.

하늘의 푸른빛과 바다의 푸른 물결 또한 손으로 잡아 본들

투명한 물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공기만 존재할 뿐입니다.


그래서 행복을 상징하는 색이 되었을까요?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만 쉽게 잡을 수 없기 때문에 말입니다.






어릴 때는 파랑이 행복을 상징한다고 여겼습니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예요.'

'파란 하늘 파란 하늘 꿈이 드리운 푸른 언덕에'

이런 동요를 따라 부르곤 했습니다.

당연히 파란색은 희망이고 행복이라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파란색에 대한 감정이 조금씩 변해갑니다.

날씨가 좋은 날 파란 하늘 아래 햇빛을 쐬고 있으면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일을 하고 있거나 공부를 하고 있어야 하는 시간에 어울리지 않는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 높고 푸른 하늘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지곤 합니다.

내 감정과 다른 세상의 흐름에 나만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가슴이 아립니다.


서양에서는 파랑을 의미하는 단어, blue가 우울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입니다.

고흐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에'는 어두운 밤을 파랗게 표현했습니다.

그가 이 그림을 그릴 때,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휩싸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아름다운 그림이면서도 고흐가 느꼈던 정신적 고통이 강렬한 파란색을 통해 전해집니다.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



어느덧, 우리에게도 파랑은 행복만이 아닌 우울의 의미를 같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전염병의 확산으로 생겨난 우울증을 뜻하는 '코로나 블루'는 조금씩 친숙한 용어가 되어갑니다.

우울증은 제법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평범한 질병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울과 행복은 많이 닮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 어떤 감정보다 강력하지만 내 의지로 쉽게 바꿀 수 없는 점이 그렇습니다.

파란색이 우울과 행복을 같이 담고 있는 것과 닿아 있을까요?





벨기에의 동화 ‘파랑새’의 주인공 남매는 가난한 나무꾼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크리스마스 전 날 밤, 부잣집 아이들의 파티를 바라보며 부러워하는 남매에게 요술쟁이 할머니가 찾아옵니다.

남매는 할머니의 아픈 딸을 위해 파랑새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파랑새를 찾을 때마다 새는 죽거나, 변하거나, 날아가 버립니다.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잠에서 깬 남매는 집안에서 키우던 새가 파랑새였음을 알게 됩니다.

아이들이 그렇게 찾아 나선 파랑새는 자신의 곁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술쟁이 할머니에게 파랑새를 주고 나서야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합니다.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동화 '파랑새'



아이들은 꿈속 여행하던 중에 '행복'을 만납니다.

함께 춤추던 '행복'은 남매에게 뜻밖의 이이기를 전해줍니다.


"우리를 못 알아보겠니? 우리는 너희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행복이야."






행복은 내 옆에서 함께 걷는 말없는 친구입니다.

잡으려 하지 않아도 이미 어깨에 내려앉아 내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내 곁을 떠난 적이 없기에 붙잡아 둘 필요도 없습니다.

내 삶의 동행이자 나의 그림자입니다.

그저 고개를 들고 바라봐 주기만 기다릴 뿐 행복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손에 쥐는 순간 조금씩 그늘을 드리웁니다.

내 것이 되는 순간, 우리는 상실의 두려움을 함께 느껴야 하기 때문입니다.

행복과 우울은 서로 다른 공간에 있지 않습니다.

어쩌면 나의 우울은 행복의 반대편에 붙어 있는 동전의 양면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손에 쥐었다 펴면 행복이라 기대했던 동전이 때론 우울한 면으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우울증을 토로한지도 5년째에 접어듭니다.

가족들의 힘으로 극복하고 있으면서도

우울증의 시작은 가족이기도 했습니다.

사랑하기에 나를 울게도 웃게도 하는 것이겠지요.

이제는 마음을 붙잡고, 지워지지 않는 동전의 뒷면을 굳이 들춰보려 하지 않습니다.

나의 우울은 나의 행복과 함께 가는 것이라 여기며 스스로를 탓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푸른 하늘이 그리운 계절입니다.

그 아름다운 파랑에 빠져 헤어 나오지 않는 꿈을 꿉니다.

나는 행복을 꿈꾸는 걸까요?

우울의 끝을 달리는 걸까요?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인생은 하늘보다 아름답고 바다보다 깊이가 있습니다. 

푸른빛이 어떠하든 내 삶은 나의 색으로 빛날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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