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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Apr 02. 2021

관심


아내가 컴퓨터 옆에 화초 하나를 두었습니다.

공기도 안 좋고 삭막한 방 분위기 때문에 화분을 두어야 한다고 합니다.

낮은 키에 귀여운 초록잎이 눈에 띄지는 않지만 보기에 좋습니다.

식물에 관심이 없는 남편은 그러려니 하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보름 즘 지나서였나 아내는 방 정리를 돕다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머, 어쩜 좋아?"

"깜짝이야. 뭐야? 뭔데?"


뭔가 심각한 문제가 일어난 것처럼 호들갑입니다.

그러나 아내의 대답은 싱거웠습니다.


"화초가 시들었어. 이대로 놔두면 그냥 죽겠는데?"

"아니 난 또 뭐라고. 그 정도 일로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해?"


내가 두어 놓은 화초도 아니고 한 번을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습니다.

그 자리에 화초가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살았습니다.

시들었다는 이야기에 이제 버려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괜스레 귀찮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조심스럽게 화초를 들고 주방으로 갔습니다.

화초가 비워진 조그만 공간이 눈에 들어옵니다.

채워져 있을 땐 몰랐던 빈자리입니다.


사흘이 흘렀습니다.

빈자리가 익숙해질 때 즈음 아내는 화초를 다시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빈 공간에 화초를 다시 채우면서 감탄을 연발합니다.


"이것 좀 봐. 물 좀 주고 햇 빛을 들게 했더니 다시 살아나는 거 있지?"





살렸다는 자부심이 아내의 목소리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눈에는 이전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녹색의 잎은 녹색일 뿐입니다.


3일에 한 번만 분무기로 물을 주라는 숙제를 내어 줍니다.

귀찮은 마음에 싫은 소리 좀 했더니 타박이 되어 돌아옵니다.

화초 하나 키우지 못하는 사람이 사람한테 잘할 수 있겠냐고 합니다.






마음에 두지 않으면 연둣빛과 초록색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모두 화초일 뿐 이름조차 마음에 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보면 초록빛의 차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관심의 힘입니다.


수험생 자녀를 두었다면 수능은 특별한 하루입니다.

아들을 군에 보낸 어머니는 길에 보이는 군인이 모두 특별해 보입니다.

아내가 갑상선암으로 수술을 받은 뒤로는 쉬운 암이라는 생각을 버렸습니다.

불면증이 심해지고 난 뒤에는 잠을 못 자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나칠 수 없습니다.


관심이 생겼습니다.

마음이 당깁니다.

저절로 끌려가 나를 움직이게 합니다.

시선은 생각을 바꾸고 생각은 태도를 바꿉니다.


관심은 사랑의 전 단계입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이어지기 전에는 언제든지 끊어질 수 있습니다.

불완전하기에 노력하지 않으면 관심은 소리 없이 사라지고 무관심이 됩니다.


그렇게 끊어진 관심이 많습니다.

한 때는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던 마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한 번 사라진 관심은 냉정하게 얼어붙어

다시 타오르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돌아보면 내 삶에도 관심을 이끄는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거나 멋진 인생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안타까운 일에, 혹은 분노가 멈추지 않는 사건 앞에서 

잊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한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머릿속에 담아두었던 모든 기억을 희미하게 만듭니다.

무던하게 보냈던 시간 속에는 귀찮은 마음으로 흘려버린 누군가의 아픔이 있습니다.

한 때는 마음 가득 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관심과 무관심은 한 단어일지도 모릅니다.

스스로 가슴에 새기는 고통을 머금지 않고는

관심은 무관심으로 향하는 간이역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관심이 사랑으로 흐를 수 있을까요?

무심하게 틔운 관심이 나도 모르게 사랑으로 꽃을 피웠으면 좋겠습니다.

애쓰지 않아도 마음에 남아 나를 움직이게 하는 그런 사랑이 되기를,

차마 멈추지 못하는 작은 물결이 되어 세상 끝까지 잔잔히 흐르는 마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묵묵히 초록의 생명을 살아내는 키 낮은 화초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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