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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Dec 25. 2020

엄마와 딸의 관계가 궁금한 남편

'32년째 엄마 사랑해'를 읽고



브런치 작가님이 출간하신 책 한 권을 구매했습니다.


출간 이야기를 읽고 링크된 구매 페이지에서 책 한 권을 담았습니다. 추천을 받거나 부탁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마음이 무거워질수록 지갑 가벼워지는 요즘 책 한 권 사는 일이 부쩍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끌렸던 이유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에 부쩍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형제만 낳은 어머니는 종종 딸이 하나 있어야 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뚝뚝한 아들들에 대한 불만이 담긴 말씀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려니 생각하고 살아온 지 30년도 안되어 어머니는 며느리를 보셨습니다.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참 잘해주셨습니다. 정성껏 식사도 차려주시고 이런저런 선물도 많이 하셨습니다. 낯선 여인에게 이런 관심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겠지만 아내도 적당히 눈치를 맞추며 어머니의 호의에 호응을 보냈습니다.


때론 과하다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근처 옷가게에서 사셨다며 재킷에, 치마에, 심지어 옷에 장식하는 액세서리까지 한 세트로 준비해 두시고는 방문할 때마다 조용히 불러 본인 앞에서 패션쇼를 벌리셨습니다. 며느리야 당연히 준비된 멘트로 호응할 뿐이지만 아들은 눈치 없이 끼어듭니다.


"자기 스타일이 있는데 힘들게 옷을 사요? 그냥 돈으로 주든가..."


아내는 내 한 마디를 응원하는 건지 타박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내의 표정을 살피기도 전에 어머니께 등짝을 한 대 맞고 방에서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딸이 있다면 어떠셨을까?' 며느리를 대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궁금증이 발동했습니다.






그런 궁금증이 잦아들고 한 참을 무탈하게 살았습니다. 아내는 딸 욕심이 있었는지 두 아들을 낳고도 하나만 더 낳고 싶다고 밤마다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아들 둘도 징그러운데 셋이면 어떡하냐고 결사반대했지만 드라마 제목으로 유명한 '아내의 유혹'은 생각보다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다행히 셋째는 딸이었습니다. 아내는 딸을 반겼고 어머니는 더욱 반겼습니다. 정작 나는 반가움보다 현실에 대한 걱정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래도 딸은 딸이라고 커갈수록 아들과 다른 즐거움이 있습니다. 몸이 피곤한 아들과 달리 딸은 귀가 피곤한 스타일이고, 때때로 깜짝 이벤트와 선물로 엄마 아빠를 놀라게 해 줍니다. 꼬치꼬치 따지고 들 때는 징그러운 벌레 같다가도 간혹 사고 싶은 물건이 있다며 애교를 부릴 때면 이런 캐릭터를 요물이라 부르는구나 체득하곤 합니다.


그런 딸이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기도 전에 첫 생리를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축하할 일이라며 호들갑을 떠는데 나는 허전함과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딸아이의 당연한 변화를 축하하고 기뻐해야 한다는데 마음의 준비가 안된 아빠에게 딸의 변화는 '멀어지는 감정' 그 이상의 어떤 기분도 들지 않았습니다. 자려고 누웠는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보내야 하는 머나먼 시간이 눈앞에 다가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주책도 이런 주책이 없다 싶습니다. 




아내에게 아쉬운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위로를 기대했던 생각과 달리 아내는 뜻밖의 대답을 건넸습니다. 이제야 자신의 삶에 함께 할 진정한 친구를 만난 것 같다는 겁니다. 딸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합니다. 딸에게 엄마와 아빠는 다른 존재일 수밖에 없음을 뼈저리게 느낀 대답입니다. 나의 우울함이 아내에게 기쁨이라니 어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나는 아내와 딸의 관계에 깊은 회의와 호기심을 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펼쳤습니다.






책은 하루 만에 모두 읽었습니다. 다양한 감정으로 느끼는 재미와 감동이 있었습니다. 남자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있었지만 엄마와 딸의 찐한 러브 스토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합니다. 작가님은 유쾌한 분 인 줄로만 알았는데 사뭇 진지한 글쓰기에 색다른 모습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종종 만나 치킨에 맥주 한 잔씩 하고 싶은 분입니다. 닭 가슴살만 먹는 사람은 우리 곁에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아내에게 읽어보라고 책을 건넸습니다. 재밌게 읽던 아내는 반쯤 넘어가더니 재미는 있지만 와 닿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생각해보니 아내는 오래 전부터 장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엄마의 마음으로 읽는 부분은 즐겁지만 딸의 입장이 되어 읽다 보니 마음에 닿지 않나 봅니다. 모두가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간다면 공감이란 단어가 사무치게 다가올 일도 없겠지요. 그렇게 다양한 이웃의 삶에 고개를 내밀어 살피고 감정을 나누면서 우리는 공감이라는 큰 그릇을 채우며 사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로서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기 어려운 아내일지라도, 딸에게는 사랑 고백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은 예측할 수 없고 그러기에 아름답다는 아주 단순한 방정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이렇게 한 발 더 아내의 생각에 다가갑니다. 20년째, 그렇게 천천히 다가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20년 더 아내와 딸의 관계를 관찰하며 소소한 행복을 채우며 살고 싶어졌습니다.  






책의 뒷 표지에 '15000원' 가격표가 스티커로 붙여 있습니다. 호기심에 스티커를 조심스럽게 떼어 보았더니 아무 숫자도 없었습니다. '어라?' 이 책 공짜였나 싶습니다. 내 돈 주고 산 책인데 원래 가격이 없었나 싶어 뭔가 아쉬움이 지날 때 즈음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원래 공짜였지. 엄마의 사랑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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