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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Jan 07. 2021

알 도둑


‘오비랍토르(oviraptor)’는 백악기에 살았던 공룡입니다.

이 공룡은 1924년, 몽골의 고비사막에서 처음 발견되었습니다.

발견 당시 공룡 주변에는 알이 있었고, 당시 공룡학자는 

이 공룡이 다른 공룡의 알을 훔치다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공룡의 이름을 ‘알 도둑’이라는 의미가 담긴 ‘오비랍토르’로 지었습니다.



1993년, 또다시 알 더미 위에 오비랍토르의 화석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발견된 알의 화석에는 놀랍게도 오비랍토르의 태아가 들어있었습니다.

이 화석은 오비랍토르가 알 도둑이 아니라

자신의 알을 지키려다 죽은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이후 공룡학자들은 오비랍토르를 알 도둑이 아닌 모성이 강한 공룡으로 분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룡은 여전히 ‘알 도둑’이라는 의미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100년 가까이 불렸던 이름을 쉽게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편견의 역사는 뿌리가 깊습니다.

대항해시대, 유럽인들은 신대륙에 사는 사람들을 괴물로 묘사했습니다.

꼬리가 있거나, 깃털이 있거나, 동물 소리를 낸다고 생각했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신성한 존재로 만들고

힘이 없는 존재에게는 인격을 빼앗아 갔습니다.

편견은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정보가 쏟아지는 세상에서 편견은 줄어들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수많은 정보들 속에서 

원하는 정보만 취사선택할 수 있는 시대로 흐르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면서 편견을 강화합니다.

한 번 각인된 이미지는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편견이 자리 잡고 나면 대화를 나누어도 오해가 해소되기보다

도리어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이는 것만으로 상대방을 평가하면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서있는 곳은 한쪽 면 밖에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멈춰있는 생각은 항상 외곡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일어서서 반대편으로 움직이면

내가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시선을 바꾸면 배경까지 다른 색으로 채워집니다.

다가가면 더욱 좋습니다.

감정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면 이해의 폭은 더욱 넓어집니다.

생각의 지점을 바꾸는 움직임은

편견을 깨는 가장 확실한 노력입니다.




항상 큰 소리로 이웃 주민과 언성을 높이는 어르신이 계십니다.

나이가 지긋하셔서 발음도 엉성하신데 목소리는 크시니 지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랍니다.

그냥 피하는 게 상책이라 생각했습니다.

하루는 분리수거하러 갔다가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중얼거리시면서 분리수거를 하고 계셨습니다.

'다시 올까?' 생각하던 중에 어르신에게 발각되었습니다.

한 참을 살피더니 손에 든 걸 두고 가라고 하십니다.

"아닙니다. 제가 할게요."라고 말씀드렸더니 귀찮은 듯 말씀하십니다.

"뭐라고? 안 들려. 그냥 가."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해소되는 기분에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어르신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십니다.

꾸벅 인사를 드리고 잽싸게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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