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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Jan 18. 2021

방아쇠


A


"그 기사 봤어?"

"무슨?"

"가수 J 이야기."

"아, 그래. 본 것 같아."

"이건 정말 아니지 않냐?"

"뭘 기사 한 구절 가지고 그래. 아직 확인된 이야기도 아니고......"

"대충 봐도 견적 나오지. 예전부터 그럴 것 같더라니까."

"그래서 사실이면 어쩌라고?"

"그만둬야지. 사람들이 그 노래를 어떻게 듣고 있겠어?"

"아니 네가 무슨 수로 그만두게 하려고? 네가 소속사 사장이냐?"

"대중이 그만두라면 두는 거지. 기사 댓글만 봐봐. 얼굴 내놓고 걷지도 못할걸?"



B


"누군가 너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으면 어떨 것 같아?"

"긴장되겠지? 영화에서 보면 그럴 때 겁 없이 노려보기도 하던데?"

"그래, 영화에서라면 그러겠지. 배우들은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는 거니까.

하지만 진짜 탄환이 들어 있는 총이라면 총구가 나에게로 향하는 순간의 두려움은 사뭇 다를 거야."

"그렇지. 황급히 피하거나, 소리를 지르며 상대를 밀쳐내겠지?"

"그래, 우리가 악플을 남기는 건, 상대방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미는 것과 다르지 않아."

"그냥 내 생각을 남기는 건데 그게 어떻게 그렇게 이어지냐?"

"물론 글의 강도에 따라 다르겠지. 적당한 비판이라면 뒷 통수 한 대 맞는 기분일 수도 있겠지만

적당하다는 것이 수치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잖아?"

"그래서?"

"나는 그냥 소리친 정도라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총구를 갖다 댄 것과 비슷하게 느낄 수 있다는 거지."

"에이 그건 너무 비약이 심하다."

"비약이라고? 과연 그럴까?

sns에 올린 너의 사진에 물음표 하나만 달려도 이게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서 잠이 안 올걸?"

"......"

"악플은 상대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함께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같아.

상대가 쓰러져도 죄의식은 없지. 모두 함께 당겼으니 내가 죽인 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두 친구의 대화입니다.

A와 B는 이어지는 대화 같지만 사실은 시간의 간격이 있는 이야깁니다.

B에서 악플의 폭력성을 설명하는 인물은

놀랍게도 A에서 유명인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인물입니다.


두 이야기의 주인공은 모두 '나'입니다.


나는 한 때 가해자였고 방관자가 되었다가 지금은 가르치려 하고 있습니다.

악플에 대해 이해시켰다고 생각하는 순간, 오래전 내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습니다.

젊은 시절에 내뱉었던 그 폭력적인 말들이 잊어지지 않습니다.

도리어 시간이 갈수록 더욱 선명하게 남습니다.

이따금 가슴에 박히는 평범한 비웃음에 스스로 무너져가는 일이 생기면 더욱 그렇습니다.



악이란 뿔 달린 악마처럼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가 아니며

사랑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우리 가운데 있다.

- 한나 아렌트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악의 평범성은 유태인을 학살하던 그 시절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악은 항상 내 안에 숨 쉬고 있고 나는 그 악을 외면하고 살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내 안에 잠재된 폭력성은 인식하지 못하고 타인의 폭력성에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타인을 정죄하는 데에는 거리낌이 없을지라도

자기 자신에게 유죄를 선고할 수 있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홀로코스트의 중심에 서 있었던 아이히만도 스스로 무죄를 주장했듯이 말입니다.


내 말과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해성사와 같은 글을 남깁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후회로 가득 차는 건 행동보다 말이었습니다.

생각이 말보다 빠른 것 같지만 차분히 내려앉은 생각은 항상 뒤늦게 찾아왔습니다.

결국 내 말과 글은 완성된 생각보다 항상 빨랐습니다.

다시 주어 담을 수도 없는 것들이 내 인격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무서운 존재는 찾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연예인이 세상을 뜨고 몇 달이 지났습니다.

마음이 힘들고 미안한 마음에 글을 썼는데 한 참 동안 올릴 수 없었습니다.

쓰라린 마음 한 편에는 오래전 가해자로 남아 있는 내 모습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리워하는 분들이 많아 함께 하는 마음이 외롭지 않습니다.

그렇게 나는 사랑하는 마음을 통해 스스로 위로를 얻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처럼, 싫어하는 마음도 누구나 품고 있습니다.

인간이기에 도무지 벗어낼 수 없는 감정입니다.

그러나 싫어함을 표현하는 마음이 공간을 벗어날 땐 폭력으로 변질됩니다.

상처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상처 주지 않기 위한 노력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방아쇠에서 손을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우리 주변의 수많은 상처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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