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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May 12. 2021

잉여로운 생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물리적 시간의 체감 속도는 다르게 느껴집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의 시간과 하기 싫은 일을 할 때의 시간이 그렇습니다.

상대성 이론을 이런데 갖다 붙이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시간을 느끼는 감각이 달라지는 건 분명합니다.


해야 하는 일을 할 때보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좋습니다.

설레고 흥분되는 마음으로 그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좋아하는 팀의 경기를 보기 위해 야구장으로 달려갔고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해 용돈을 모아 연습실을 빌리기도 했고

교과서를 펴면 집중력은 10분 넘지 못했지만

만화책은 열 권을 정독하는데 두 시간이면 충분했습니다.


고등학생 때 유행하던 만화책을 수업시간에 돌려보기로 했습니다.

3교시가 내 차례였습니다. 

연재만화인지라 그 시간이 정말로 기다려졌습니다.

그러나 2교시 끝날 때 즈음 돌려보던 친구가 걸려서

만화책을 선생님께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내가 안 걸려서 다행이라는 생각보다는

보지 못한 만화책이 더 안타까웠습니다.

차라리 다 보고 걸린 친구가 부럽게 느껴졌던 기억이 납니다.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한다고 혼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나의 청춘은 꼭 해야 하는 일보다 하지 않아도 되는

잉여로운 시간으로 꼭꼭 채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에는 꼭 해야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일단 공부가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학과 공부, 학습지, 참고서를 푸는 것이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독서도 필요한 일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읽어야 하는 책 보다 읽지 않아도 되는 책을 더 많이 읽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직업을 갖고 돈을 버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재산을 늘리는 행위가 가장 생산적이며 인생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때때로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면 눈총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업무와 관계가 없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게임을 하는 행위는

남들에게 알려지기 부끄러운 혼자만의 비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해야 하는 일을 할 때보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할 때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더 쉽게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보다 간식을 먹을 때,

공부를 할 때 보다 좋아하는 책을 읽을 때,

일을 할 때보다 취미 활동을 할 때,

나의 스타일, 성향, 특징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개인주의적인지, 이타적인지, 눈물이 많은지, 웃음이 많은지

그 사람의 개성과 특징을 쉽게 알려면 그의 취미, 혹은

잉여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 빠릅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은 그 속에 있습니다.

나의 모습, 나의 꿈도 그 안에 있습니다.


반드시 해야 한다고 다그치던 일들은 돌아보면 꿈을 이루기 위한 보조 장치였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도움이 되었을지라도 꿈을 찾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면 잉여의 시간, 잉여의 공간, 잉여의 생각 속에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도전의 용기를 얻었습니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차고에서 꿈을 찾았습니다.

미국의 미래가 차고에 있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닙니다.






뒤늦게 자신의 길을 찾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kfc 창립자 할랜드 샌더스는 65세에 체인점을 내기 시작했고

007 시리즈의 원작자 이언 플레밍은 신문기자로 활동하다

43세에 처음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악역을 맡았던 배우 크리스토퍼 리는

80세가 넘은 나이에 헤비메탈 음반을 발표했습니다.

내 주변에도 놀라운 도전을 이어가는 분들이 계십니다.

40대의 대학 후배가 교사에 임용되었고, 

환갑이 다 되어가는 선배는 식당을 열기 위해 요리를 배우고 있으며,

은퇴한 지인은 열심히 피아노를 배우고 계십니다.

모두 잉여의 시간을 꿈으로 채우며 이룬 소망입니다.


배우를 꿈꾼 적이 있었습니다.

평범한 외모에 키가 작아 꿈을 이룰 만한 용기가 없었지만 

글로서 이야기를 만들어 낼 때마다

무대에 서는 것 같은 설렘이 있어 이 또한 행복합니다.

쓰지 않아도 되는 글을 이 곳에 올리면서 행복한 기운을 얻습니다.

잉여로운 생활 속에서 얻는 작은 감동이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는 이 순간들만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미래는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의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할 때,

자신의 모습을 더욱 진지하게 바라보세요.

행복하다면 이 길로 향하는 걸음을 진지하게 마주하시길 추천드립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라면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잉여로운 생활을 응원합니다.

그 속에서 멋진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마음 깊이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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