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시가 없는 '시' 이야기를 꺼내어봅니다.
어느덧, 항아리에 시를 채운 지 4년이 넘었습니다.
지하철 역사에 시 항아리를 설치하고 항아리 안에 시를 채워 넣는 일입니다. 서울시의 요청으로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일하는 곳과 종교기관, 시인 단체를 통해 30여 곳이 넘는 지하철 역에서 운영해왔지만 지금은 7곳 정도만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제가 맡고 있는 곳이 양재역, 삼성역, 삼각지역 3곳입니다.
시 항아리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정서적 휴식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항아리 안에 시가 적힌 종이를 말고 스티커를 붙여 지나가는 이들에게 뜻밖의 행복을 전하는 목적입니다. 얼마나 호응이 있을지는 의문이었습니다. 시를 좋아하지만 조금씩 시가 다른 문화에 밀려나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글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채워 넣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씩, 한 번에 100여 개의 시를 말아서 항아리를 채웠습니다. 100개가 참 많을 것 같지만 공짜의 힘이었을까요? 오전에 채워 넣은 시는 저녁이 되면 거의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시를 담은 종이만 말아서 넣는 걸로 삶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생각보다 나는 단순한 노동이 맞는 것 같습니다. 시가 담긴 종이를 말고 스티커를 붙이는 속도가 빨라서 아내는 인형 눈알 붙이는 부업 같은 걸 하면 돈 많이 벌거라 말합니다. 칭찬인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욕일 수도 있겠습니다. 머리가 나빠서 단순 노동이나 하라는 말이거나 돈을 못 버니 차라리 부업이라도 하라는 말이거나...... 그냥 못 들은 척하겠습니다.
시를 채우는 하루는 문제가 없습니다. 시가 비워진 6일이 문제입니다. 텅 빈 항아리는 그저 쓸모없이 공간만 차지하고 있습니다. 불편함을 감수해 준다면 감사하지만 항의는 온전히 전해집니다. 쓸모없이 비워진 항아리가 불편한 분들의 치워달라는 민원이 들어옵니다. 민원이 잘 못 된 건 아닙니다.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시민의식이 이렇게 멋진 대중교통 체계를 만들어 왔으니까요.
매일 채워 넣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따로 아르바이트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루 종일 시만 말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시간을 아껴 보고자 집으로 가져와서 TV를 보면서 말거나 아이들 공부를 가르치는 아내 앞에 살며시 밀어 넣고는 심심한 손 놀리지 말라고 부탁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항아리를 채우는 일은 귀찮은 숙제가 되어버렸습니다.
운영을 시작한 지 1년 즘 지나서였습니다.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습니다. 예산도 부족하고 일손은 더더욱 부족하니 이제 그만 철거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한 달 정도 후에 서울시와 교통공사에 철거 공문을 보내고 치우려고 했습니다. 한 달만 더 고생하자 하고 항아리에 시를 채우러 갔습니다. 담아간 시 두루마리를 조심스럽게 항아리 안에 채웠습니다.
항아리 주변을 정리하고 있는데 어르신 한 분이 서너 발쯤 떨어져서 물끄러미 쳐다보고 계셨습니다. 길이라도 물으시려는 걸까 편안한 표정으로 목 인사를 건넸습니다. 어르신은 다른 질문을 건네셨습니다.
"이거 하나 가져가도 되지요?"
"네, 물론이지요. 하나 골라 가세요."
조심스럽게 고르시더니 하나를 손에 쥐고 뒤돌아 가십니다. 그렇게 몇 발짝 떼시다가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묻지도 않았던 본인의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내가 몇 달 전에 여기서 시를 읽었거든요. 너무 좋아서 매일 나와 기다리는 데 있는 날도 있고 없는 날도 있고 그래서...... 언제 채워지는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네? 아...... 이 시요? 여기는 매주 화요일에 채워요. 조금 늦어질 수도 있고요."
"고마워요. 다음에 또 기다릴게요."
그 일이 있은 후, 3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항아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어르신을 다시 만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시를 계속 읽고 계실 거라 기대합니다. 다행히 시를 채울 때마다 응원해 주시는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삼성역에서 자원봉사하시던 어르신은 시를 담으러 갈 때마다 인사를 나누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코로나 이후로는 뵙지 못해 아쉽지만 중견 기업을 은퇴하고 외국인에게 길 안내를 하시던 마음 좋은 어르신입니다. 좋은 일을 한다고 칭찬해 주실 때마다 행복한 마음을 선물로 얻었습니다.
디지털의 시대, 누구나 쉽게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여전히 디지털 환경이 어려운 분들이 있고 문화 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이 많습니다. 저작물의 권리가 중요하고 지켜져야 하는 만큼 문화, 예술의 복지 또한 커져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훌륭한 시를 제공해 주시는 강남 문인 협회, 문학의 집, 서울시청 문화 예술과에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아날로그는 디지털과 다른 감성이 있습니다. 화면으로 보는 것과 활자로 인쇄된 글로 전해지는 감정에는 미세한 차이가 있습니다. 화면의 해상도와 주사율이 높아졌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종이에 새겨진 잉크의 가독성을 이기지 못합니다. 시를 집어 든 분들 중에는 누군가에게 전해 주거나 간직하려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렇게 전해지는 마음이 소중합니다. 누구에게나 오랜 시간 이어지는 작은 행복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제법 습관이 들어 시를 마는 일이 고되지 않습니다. 사실 요즘은 거진 아내 혼자 다 하고 있습니다.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불평하지 않고 해 내는 그런 사람입니다. 하다 보면 언젠가 그만 하라고 하는 날이 오겠지요. 그때는 '네 알겠습니다.' 하고 얌전히 치우겠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시를 가져가 마음을 채우는 분들이 있기에 일손과 시간이 아깝지 않습니다. 뜻밖의 소소한 행복을 채우는 하루를 위해 오늘도 시를 담습니다. 누군가의 미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선물로 받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