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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방황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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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된 Sep 29. 2020

종이와 볼펜 그리고 글씨체

일상에서 깨달음

장기기억이 약한 나는 암기과목에 꽤나 취약했고,  며칠째 반복되는 내용을 외우고 있었다. 공부하기 싫어, 안 할 핑계를 대기 딱 좋았다. 억지로 엉덩이를 붙인 채 적기를 반복했다.  이런 상태에서 평소에 쓰던 노트를 다 채우고, 다른 노트로 바꿨다. 종이가 달라지니 펜의 느낌도 달라졌다. 내가 평소에 쓰던 펜이지만 낯선 펜인 듯하였다. 글씨도 마음에 안 들고 부드럽게 적히는 펜이 이번에는 글씨를 쓸 때 미끄러졌다. 필기감이 내 글씨체에 큰 영향을 줬고, 나는 최대한 이쁘게 적고 싶은 욕심이 컸다. 엉망이 된 글씨체는 공부에 영향을 줬다. 펜이 제멋대로 나가서 지렁이가 기어가는 노트 필기가 돼버렸다. 그러다 보니 정리하는 맛이 안 났다.


몇일 간을 그렇게 공부하고 나니 글씨 쓰는 재미가 반인 공부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갑자기 종이의 질이 좋아지니 볼펜과 종이의 궁합이 내 글씨체를 훌훌 날렸다. 글씨를 컨트롤하기 위해 손에 힘을 더 줬다. 손가락은 아팠다. 손목은 일주일동안 약해진게 눈에 띄게 느껴졌다. 아침에 일어나고 나면 항상 손목이 아파서 파스를 붙이고 생활을 했다. 몸이 아픈 할머니와 한의원 나들이를 다니는 김에 약해진 손목을 위해 침을 맞을 정도였다. 공부는 해야겠고 글씨는 써야 하는데, 어떻게 손목을 덜 쓸 고민이 생겼다. 볼펜이 너무 부드러운 탓에 바뀐 공책과 안어울리는건 아니였을까? 내가 들고 있는 펜 중에 제일 구린 볼펜을 쓰면 어떨까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책상 연필꽂이에서 볼펜을 꺼냈다. 바뀐 공책에 서본 결과는 '이거다!' 적당히 마찰감있고 적당히 부드러웠다.


글씨체도 마음에 들게 나왔다. 종이와 필기구도 맞는 궁합이 있다. 필기감이 구린 펜도 좋은 종이를 만나니 나에게는 좋은 볼펜이 되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글씨를 오랫동안 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나는 글씨를 쓸 때 꾹꾹 눌러 펜을 꽉지고 쓴다. 펜을 힘주고 글씨를 써 주변 근육들이 신경을 곤두세웠다. 손과 손목은 하루종일 반복하는 작업이었다. 글씨를 힘을 주고 쓰는 이유는 글자가 뭉게질까봐다. 힘을 주지 않아도 이쁘게 적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쓰는 습관을 바꾸면 어떨까? 그렇게 힘을 살짝 빼고 글씨를 썻다. 힘이 덜드니 훨씬 글이 쓰기 편했고 오랫동안 써도 무리가 덜했다.


깨달았다. 종이와 펜과 그리고 글씨체에서 갑자기 일상 속에서 깨달았다. 글씨체를 보면 사람의 성격을 안나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는 눌러쓰는 필체가 내 성격이 아니었을까. 성격 상 작은 근심과 걱정도 부풀려 크게 생각하는 면이 있다. 생활을 하면서 항상 긴장을 하여 어깨가 올라가 있다. 힘이 들어가 있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다. 이게 내 글씨체에 반영이 된다. 필체는 날리지만 꾹꾹 눌러쓰는 버릇. 나의 급한 성격과 긴장된 모습이 눈에 보였다. 내 성격을 알았다. 펜에 힘을 빼니 훨씬 편해졌다. 편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은 힘을 빼고 편히 즐기자. 과정을 즐기고 결과에 대한 걱정은 덜어보자. 특별한 경험으로 깨달은 점도 있지만, 일상 속에서 깨달은 생각들이 나를 만들어주는 기반이 되는 것을 느꼈다. 이런 과정을 잘 꾸려서 생각이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일상에서 깨달은 것을 잘 기록하고 남겨 다른 사람에게 생각의 다양성을 주고 싶다. 이 이야기에서 같은 맥락으로 추천해주고 싶은 유투버가 있다. 알간지님이다. 귤을 먹다가 인생이야기까지 흐른다. 인생과 귤이 어떤 관계이지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영상을 보고 나면 달라질 것이다.


 "신 귤을 주무르면 당도가 올라가는 이유는 스트레스를 주고 성숙 호르몬이 나온다. 그 호르몬이 귤을 더 달게 만든다. 힘든일을 겪고 성숙해지고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과정과 상처입은 귤이 달아지는 과정이 참 비슷한것 같다."  - 알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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