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아야 공부하죠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법

by 선율


40대 중반 내 또래, 또는 나보다 조금은 나이 어린 엄마들까지도 아마 최소한 초등 때만큼은 공부에 대한 부담이나 압박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기억에, 초등 6학년 때까지는 동네에서 술래잡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고무줄, 공기, 종이인형 등을 하고 노느라 바빴다(?). 학교 갔다 오자마자 책가방 던져 놓고 뛰어나가서는 저녁 먹으러 들어오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옆집, 앞집 친구들과 동생들과 마냥 놀았던 것이다. 우리 집이 서울 북쪽 끝의 동네라 학구열이 높지도 않았고, 잘 사는 동네도 아닌 고만 고만한 집의 아이들이 살고 있었기에 초등학교 때까지는 피아노 학원 정도를 제외하고는 학습과 관련된 학원을 다니지 않는 아이가 많았다. 그래서 놀 친구가 많았고, 아무 생각 없이 놀이에만 집중할 수도 있었다.


난 가정형편상 중학교까지도 학원을 다니지 않았는데, 그 덕분에 그때까지 엄청나게 많은 자유시간이 나에게 주어졌다. 초등학교 때는 여자건 남자건 상관없이 마냥 동네에서 놀기 바빴다면, 중학교 와서는 대부분 여자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다. 떡볶이를 먹으러 다녔고, 친구 집에도 차례로 놀러 갔으며, 저녁시간에는 친한 친구와 한 시간씩 통화하기도 했다. 매일 학교에서 보는 친구를 학교 밖에서도 따로 만나고, 전화도 하고, 따로 엽서나 편지도 쓰고, 만나서는 또 얘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에도 시험기간을 제외하고는 평상시에 특별히 공부한 기억은 없다. 필요한 문제집이나 자습서를 풀긴 했지만 매일 꾸준히 풀지는 않았다. 엄마가 특별히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거나, 오후 일을 하고 돌아오셔서 숙제를 다 했는지 또는 문제집을 풀었는지 확인하지 않으셨기에 순전히 내 의지에 따라 내 생각에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때만 공부했고, 그 외에는 친구와 대부분 놀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놀면서, 친구와의 관계를 쌓으면서 초, 중 시절을 보내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야 본격적으로 공부를 했다. 1, 2 학년 때는 방학을 이용해 학원을 다녔고, 평상시에도 매일은 아니지만 조금씩은 공부를 했다. 고등학생이 되자 시험기간에만 공부하기엔 그 양이 너무 많아 시험 전에 미리 조금씩은 공부를 해 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고3 때는 매일 학교에서 9시까지 했던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두세 시간 더 독서실에 가서 공부하다 1시에 집에 왔다. 아침 7시까지 학교에 가서 아침 자습을 해야 했기에 기상 시간은 5시 30분, 매일 딱 4시간 자는 수험 생활을 1년 했다. 학교 시험과 매달 모의고사로 힘들었던 거 외에 다른 활동이나 여행 따위를 한 적이 없으니 고등학교 3년 내내 특별히 생각나는 일은 없다. 선생님들이나 친구들과 학교 내에서의 학교 생활에 관한 기억이 전부다.


대입을 위해 본격적으로,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하는 데 쏟으며 힘든 수험 시간을 보냈던 고등학교 3년을 특별한 문제없이, 물론 힘은 들었지만 괴로워하거나 못 견딜 만큼의 스트레스는 아니었고, 특히 부모님과도 아무 문제없이 무사히 보낼 수 있었던 건 그 전, 초중학교 때 열심히 노느라 그때까지 공부를 제대로 안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동안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집에서 공부를 해결함으로써 어릴 때부터 미리부터 학원에 질리는 일 같은 건 나에게 없었다. 초중고 내내 공부에 매달리지 않아도 때가 되었을 때 스스로 필요성을 느껴 학원과 공부를 하면 그만큼 집중도 되고, 몰입이 가능하다. 난고등학교 때 학원을 필요한 과목만 방학이라는 한정된 시간 동안 잠깐씩만 활용했고, 과목 전체가 아닌 해당 부분만을 학원을 통해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학원 수업은 나에게 새로운 분위기에 새로운 친구들과 공부하는, 그리고 버스를 이용하여 왔다 갔다 함으로써 기분전환 삼을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최대한 늦게 효율적으로 학원을 다님으로써, 그에 따라 공부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도 생기고, 실질적으로 성적에도 도움이 되었다.


지금 초등 저학년부터 학원을 다니며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면 안쓰럽다. 내 학창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공부의 절대량이 많은 걸 보고 하는 말이 아니다. 스스로의 마음대로 생각대로 놀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는 말을 하고 싶다. 우리 아이조차 나의 복직을 대비하여 초등 입학 다음날부터 돌봄 교실에 아이를 보냈고, 3개월쯤 지난 지금은 학원을 두 개 다니고 있다. 즉,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돌봄 교실에 가고, 그 뒤로 피아노와 태권도 학원을 간다. 모든 수업이 끝나고 내가 아이를 찾는 시간은 5시 20분이다. 그때부터 4~50분 놀이터 친구들과 뛰어노는 게 하루 놀이의 전부다. 물론 돌봄 시간에도 체육활동이 있고 태권도도 일주일에 반 이상은 체육 활동을 하기 때문에 이 또한 노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선생님이 정해준 활동과 정해진 규칙에 맞게 수동적으로, 선생님의 감시하에, 정해진 테두리 공간에서만 하는 체육 활동일 뿐 내가 어릴 적 놀았던 거처럼, 친구들과 무슨 놀이를 할지를 정하고 놀이 규칙을 정하고, 골목골목을 누비면서 하는 놀이가 아니다. 매일 놀이를 바꾸고 때론 그때그때 만들어 내고 같이하는 친구들 구성도 변하고 주위 환경도 변화하는 경험을 하는 것과는 다르다. 놀 때마다 매번 여러 가지 시도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 동안 맘껏 어울릴 수 있는 놀이가 아닌 것이다. 그래도 저학년 때 이렇게라도 놀 수 있는 걸 감사해야 한다고 한다. 이마저도 고학년이 되면 더더욱 시간이 없어지고, 그나마 시간이라도 나면 언제 어디서건 할 수 있는 게임에 빠져 버리게 된다니 하는 말이다. 참 속상하다.


독일에서 아이 셋을 키우는 저자가 쓴 ‘아이라는 숲’이라는 책을 보면 공부는 쉬어가며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안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이 쉰다는 의미는 휴식의 의미일 수도 있고, 일탈의 의미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영감이란 것이 이렇게 쉬거나 일탈의 순간에서 오기 때문에,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안 하고 쉬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놀아야 하고 심심해야 하고 멍 때리는 시간이 있어야 공부도 하고 싶어 지고, 부모가 바라는 책도 읽을 수 있다. 며칠 전, 초1인 우리 아들에게 유튜브 시청을 시간을 제한했더니 심심하다고 투덜거렸던 적이 있다. 왔다 갔다 하면서 뭐 재미있는 게 있나 찾아보던 아이는 결국 만화책을 손에 집어 들더니 읽기 시작했다. 몇 번 그런 경험을 한 뒤부터는 이제는 저녁 먹고 나서 또는 자기 전에 스스로 책꽂이의 책을 꺼내와 잘 찾아 읽는다. 비록 만화책을 읽지만 종이책에서 짧은 문장을 스스로 읽고 재미를 느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심심하니까 책이라도 집어 들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아이에게 심심할 시간을 주면 분명 스스로 재밌어하는 것을 찾아내고, 거기에 몰입할 거라는 사실을 믿고 싶다.


‘놓아주는 엄마, 주도하는 아이.’라는 책에 보면 공부가 아닌 좋아하고 원하는 것에 몰입해본 경험이 있는 아이는 나중에 공부를 제대로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몰입의 경험을 살려 전력투구 할 수 있다고 한다. 아직은 공부가 뭔지 모르는, 무조건 놀기만 좋아하는 우리 아이는 요즘 남편 덕분에 야구에 푹 빠져있다. 좋아하는 LG팀의 선수를 줄줄이 외우고 있고, 글러브, 유니폼, 보호대까지 사 주었더니, 학교 갔다 오면 매일 아빠한테 캐치볼을 하자고 조른다.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당당히 말한다. 내가 어렸을 때 놀면서도 몰입했던 경험으로 정작 공부가 필요했던 시기에 큰 어려움 없이 집중해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건 아니 었을까. 지금 우리 아이에게 뭔가를 좋아하고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거에 감사하다. 지금은 아이가 공부가 아닌 최대한 노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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