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공부보다 필요한 것

좋은 부부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

by 선율

우리 부모님은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한 번의 실수로 탄탄한 직장을 그만두신 이후로 이러저러한 일을 전전하시던 아빠와 아이 셋을 키우면서 빠듯한 살림에 도움이 되고자 식당 일까지 하셨던 엄마는 돈 때문에, 실속을 차리기보다는 다 퍼주는 아빠 성격 때문에, 그리고 매일 아빠가 마셨던 술 때문에 늘 다투셨다. 어렸을 때 방 두 개였던 우리 집은, 큰방에서 부모님이 다투는 소리를 작은 방에 있던 내가 들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부모님 싸우는 소리는 다른 무엇보다도 참 못 견디게 듣기 싫었다. 맨날 같은 이유로 같은 말을 주고받으며 싸우는 소리를 들을 때면 다음날 시험공부를 하다가도 그날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이렇게 부모가 싸우는 환경에서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겠냐며 시험을 못 봐도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는 말로 옆에 있는 언니한테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사춘기 때는 좀 컸다고 부모님 싸움에 참견도 많이 했다. 내가 이 싸움을 끝내리라 굳은 마음을 먹고 부모님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지르고, 때론 눈물도 흘리고 아빠와 말싸움도 하면서 그만하시라고 매달렸다. 하지만 그런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싸움은 3년 전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우리 집은 자상하거나 화목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나마 아빠를 칭찬해 드린다면 도박 같은 건 하지 않았다는 점, 화가 나거나 싸울 때 엄마를 때리거나 욕을 한 적은 없다는 점, 그리고 매일 술을 드셨지만 과음으로 몸을 추스르지 못하거나 술버릇은 크게 없었다는 점이다. 부모님의 소소한 다툼이 늘 있는 가운데, 가족 여행 경험 같은 건 없고 아빠와는 일상적인 말 외에는 크게 말을 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자랐다. 우리 집은 저녁시간 가족 간의 대화로 웃음꽃이 피고, 자주 가족여행을 다니고, 아빠와 딸이 가끔씩 데이트를 하며 비밀을 털어놓는, 그런 이상적인 가정과는 한참 거리가 먼 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대 중반인 지금, 결혼해서 아이 낳고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럭저럭 살고 있는 건 하소연할 수 있고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는 언니가 옆에 있었고, 정서적으로 안정감 있게 내 마음을 받아주고 공감해주는 엄마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집안 환경에서 자라온 덕분에, 뭔가 불편한 상황이 생겼을 때 차근차근 얘기로 풀어가기보다는 그 상황을 피해 버리려고 하고, 그때그때 해결하지 않고 꾹 참았다가 한 번에 문제 상황을 터트림으로써 상대방을 당황하게 더 화가 나게 만들어 버리고, 그리고 무엇보다 애교나 상황을 부드럽게 만드는 유머가 나에게는 참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그로 인해 굳이 싸우지 않아도 될 일조차 싸움으로 만들어 버리고, 차근차근 내 생각이나 감정을 상대방에게 얘기하며 내 상황을 이해시키기보다는 먼저 목소리가 커지고 화부터 내버리는 등의 생활 습관은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보고 듣고 같이 생활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나에게 체화된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여러 교육서들을 접하면서 깨닫는 건 아이에게 무엇을 해주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기본이 되고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은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싸움이 났을 때 어떻게 화해하고 해결하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아이를 위해서는 모든 걸 다 내어 줄만큼 헌신적으로 다정한 모습을 하면서 남편한테는 냉랭하고 무시하고 쌀쌀맞게 대한다면 아이는 ‘내가 사랑하는 엄마는 이렇게 두 가지 얼굴이 있네. 언제 가는 나한테도 이렇게 무서운 표정과 화를 내는 모습을 보이겠지’라는 생각에 한없이 잘해주고 자상해주는 엄마가 곁에 있음에도 불안정한 마음이 생긴다니 남편과 싸운 후, 아이한테는 최선을 다해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울 뿐이다.


매번 서로 말을 들어주지 않고 자기 할 얘기만 일방적으로 항변하는 모습, 몇 번 얘기를 하다 늘 목소리가 커지면서 화가 난 말투로 변하고, 결국 싸우고 나서 며칠 동안 서로 본체만체하며 상대적으로 아이에게만 온갖 친절히 대하는 모습이 바로 우리 부부의 모습인데 이젠 남편과 싸울 때마다 아이가 마음에 걸린다. 성숙하지 못한 우리 부부의 모습을 직간접적으로 보면서 아이가 안 좋은 말투와 모습을 분명 닮아 갈 텐데 본의 아니게 이런 능력을(?) 키워주고 있다는 사실에 부모로서 부끄럽다. 아이를 잘 먹이고 입히고 학습능력을 키워주는 것보다 먼저 인간으로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필수적인 상대방을 배려해주고 대화로 자기감정을 설명하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음을 반성한다.


부부가 싸우고 난 후, 화해하는 과정도 잘 보여주는 것도 꼭 필요하다. 아이가 이해 못 할 거라는 핑계로 귀찮고 민망하다는 이유로 화해 과정 없이 아이 앞에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상시로 돌아오는 우리 부부의 모습에서 과연 우리 아들은 올바르게 화해하는 능력을 스스로 알아서 갖출 수 있을까. 상대방을 존중하는 기본적인 마음 바탕에 서로의 얘기를 들어주면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주고받는 가운데 오해도 풀리고, 협의점도 찾아 기분 좋게 화해하고, 그런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친구와, 부부와, 사람과의 관계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돈독해지고 단단해지는 그런 경험을 하기 위해 아이는 부모로부터 보고 듣고 배워야 한다.


부부관계가 좋지 않으면 아이는 그게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스스로를 비난하는 우리 아이들은 그 무엇보다도 내 부모들이 더 행복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 아이 앞에서 하는 부부싸움으로 인해 오히려 당사자인 어른보다 아이의 마음이 더 다칠까 봐 걱정이다. 오은영 박사님이 해결책을 찾아주는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본 적이 있다. 보통의 부모인 내가 봐서도 정말 부모가 힘들고 어찌할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해 보이는 아이들 조차 따로 인터뷰를 해보면 하나같이 부모 걱정뿐이다. 부모가 아이들을 걱정하는 것 못지않게 아이들도 부모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며, 부모가 행복하지 않고 다툴 때, 아이는 불안할 수밖에 없고, 다른 무엇보다 부모 걱정을 최우선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어린 나이의 나처럼 공부는 안 해도 못해도 명백한 핑계가 있기에 당당하고, 솔직히 부모 걱정 외에 다른 무엇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부분을 생각했을 때, 난 아직 너무나 많이 부족하고 미숙한 부모임을 인정한다. 그래서 늘 아이한테 미안한 마음이다. 그럼에도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는다. 그만큼 난 더 노력할 것이고 더 나아질 것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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