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내나는 경험
드라마를 세 번 내리 보았다. 마음을 흔드는 대사가 귓속을 뱅뱅 돈다.
'수틀리면 빠꾸' 왜 그 지점에서 더 짠내가 났는지 모를 일이었다.
한 사람의 일생이 통째로 담백하고도 알싸하게 머물렀다. 관식이의 그림자가 꿈에도 자꾸 나타나 하루의 고단함을 위로해 주었고, 애순이의 선한 메아리가 뾰족하게 솟아난 내 마음을 정갈하게 가꾸어 주었다.
마흔.
4차원 소녀에서 언제 40이라는 숫자와 가까워졌는지 가끔 낯설 때가 있다. 엄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마음은 청춘이라 그렇다고 한다. 숫자 4로 시작되면 괜찮은 어른이 될 줄 알았다. 어른은커녕 사고만 안 치면 다행일 터다. 자기 계발 관련 채널에 귀를 기울이다가 지금 무언가 하지 않으면 내 인생이 곧 망할 것 같은 조급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30대에 꼭 해야 할 일, 40대에 하면 안 되는 것, 50대에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것들을 듣고 있으면 가끔 거부감이 든다. 왜 거부감이 드는 걸까? 내가 못 할 것 같으니, 스스로 부담을 덜기 위해서일까?
낭만을 쫒던 20대의 풋풋했던 나는 뭐든 야무지게 스스로 밥벌이를 하며 발길 닿는 대로 살았다. 하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나름 ‘분수’를 지켜 가며 양심껏 살았다. 그러던 중 한참 방황하던 시기에 올 것이 왔다.
‘도를 아십니까’
가끔 뉴스에서 사이비 종교를 다루는 기사가 나오면 가슴이 두근 세근. 아직도 그 장면이 생생하다. 대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던 22살의 여름이었다. 남자 두 명이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는 나를 보고 한마디 던진다.
“얼굴 관상이 좋으시네요. 그런데 조상님이 근심이 있어 일이 잘 풀리지 않네요.”
지금이야, 뭐 하려는 수작인지 단박에 알 수 있지만 아무런 정보도 없고 의심도 없었던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요즘 돈도 벌어야 하고 학교도 다녀야 해서요.”
그들은 말했다.
“저희는 절에서 사람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사주도 봐 드리고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서 그쪽 가족분들이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10분이면 되는데 뭘 좀 마시면서 이야기하시죠.” 하면서 바로 뒤 롯데리아로 자연스레 들어갔다. 음료와 햄버거를 고르더니 “저희는 수련 중에 돈을 들고 다니지 않아서 그런데 사주실 수 있을까요?” 한다.
어이가 없었지만 점원 앞에서 냅다 도망치기도 뭣하여 일단 돈을 냈다. 사주 명리가 뭔지도 잘 몰랐지만 나에게 좋은 기운이 있는데 뭐가 막고 있다 하니, 들어나 보자는 마음으로.
이야기의 내용은 대략 이랬다.
-우리 집안에 조상의 척이 씌어서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는다.
-죽은 조상 중에 한 맺혀 돌아가신 분이 있다.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조상님께 참배를 드려야 하는데 공덕을 쌓아야 하니, 돈을 내야 한다고. 그리고 지금 당장 가야 한다고. 하루라도 지체하면 집안에 안 좋은 일들이 줄줄이 이어진다며. 학생이라 돈이 없다고 하자, 인심 쓰듯이 얼마를 낼 수 있냐고 되묻는다. 집에 20만 원은 있다고 하자. 처음에는 그 정도면 충분하고 많이 낼수록 액운을 끊어내는 것이 빨라진다고 말했다. 지갑엔 돈이 없고, 집에 가야 했다. 건장한 두 남자와 함께 겁도 없이 택시를 타고 우리 집까지 갔다. 남자들은 아파트 밑에서 택시 기사와 대기하고 있었다. 엄마는 낮잠을 주무시고 계셨다. 나는 엄마의 지갑에 손을 댔다. 어떠한 사명감을 가지고.
‘엄마, 내가 꼭 갚을게.’
타고 왔던 택시를 그대로 타고 도착한 곳은 풀숲이 사방으로 우거지고 옛 기와로 지어진 으리으리한 곳이었다. 전천당 할머니를 연상시키는 외모에 보라색 머리카락을 하고 개량 한복을 멋스럽게 입으신 분이 나를 맞이했다. 귀인이 오신다길래 마중을 나왔다고 했다. 그분은 나에게 한복을 건네며 입고 나오라 했다. 찰랑거리는 살구색 커튼 사이로 나와 비슷한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절을 하며 울고 있었다.
오래되어 보이는 낡은 장판에 앉았다. 이상한 냄새가 났다. 절에서 주로 맡아본 향냄새와 장판의 묵은 냄새가 합쳐진 듯 코가 지끈거렸다. 보라 머리 할머니는 웃음을 머금은 눈으로 보통 집안에서 있을 법한 우환이나 걱정거리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퍼즐을 맞춰갔다. 그동안 마음이 외로웠던 터라 그들의 관심은 내 오장육부를 춤추게 하여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더니 공감되고 말았다. 하늘에 정성을 들여야 하는데 앞으로 손해 볼 운수가 깔려 있으니 큰 정성이 필요하지만 아직 학생이니까 천천히 하자고 했다. 속으로 참 좋은 분들이라 생각하며 돈봉투를 내밀었고 정신 차렸을 땐 이미 절을 하고 있었다.
곱게 절을 올리고 음복을 했다. 내가 낸 돈으로 제사상을 차렸으니 많이 먹으라고했다. 덜 삶아진 것 같은 닭다리를 기름진 손으로 쥐어뜯어 내미는데 벌써부터 속이 능글댔다. 나와 처지가 비슷해 보이는 청년들이 자기 할 일을 마저 끝내고 빙 둘러앉아 살아온 이야기들을 속에서 끄집어내는데 나의 진지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동안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느낌은 거기서부터 알아차렸고 이제 똑똑히 보였다. 그들의 물음에 시들시들하게 대꾸하며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빠져나왔다. 보라 머리 할머니의 시선과 울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들이 무섭고 거슬렸지만 내 코가 석 자였다.
그렇다. 무언가에 홀려도 단단히 홀린 것이었다. 오매불망 뒷걸음질 치며 돌부리에 걸려 뒤뚱거리는 나의 뒷모습을 스스로 상상하며 실로 그렇게 행동했다. 처음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허둥지둥하며 우두망찰 반복했다.
집으로 향했다. 간이 콩알만 해진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내 속은 온통 깜빡거리는 빨간 신호등처럼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하게 번져갔다. 엄마는 깨어 있었다.
“어디 갔다 왔노. 밥 무라.”
“급똥!”
사실 똥이 아니었다. 거울 속 똥보다도 못한 나를 봤다. 갑자기 측은해졌다. 한참 물을 틀어놓고 있자니 짠맛이 났다. 시원했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집에 돌아오지 못할까 봐 오금이 저렸던 그 심정을 누가 알까. 수치스러움과 자랑스러움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흩어졌다.
밥을 먹으러 거실에 나왔는데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이 허망한 피로감에 허기진 나를 불렀다. 킁킁. 향긋한 바다향. 꼬들 오독 식감의 미역 줄기와 짭조름 달달 실 오징어 반찬에 조금 전 일은 꿈이 되어 버렸다. 내가 쏟아낸 짠내가 비로소 채워졌다.
정신을 차리고 얼굴을 들었는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파란 꽃무늬 편지봉투가 식탁 위에 있었다. 먹을 때는 왜 못 봤을까? 편지봉투 밑에는 현금 20만 원이 놓여있고, 낯익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
“돈 필요하면 말해. 그리고 어떤 것이든 뭐든 해봐. 다 경험이 다이~ 해보고 아님 말고.”
관식이는 아니지만 광례같은 엄마는 늘 그랬다.
여전히 짠내 나는 인생
그래, 수틀리면 빠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