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아픈 이유는

의외로 간단한 이유

by 류민


아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영양 보충이 필요한가? 어제 사 둔 달걀에 눈길이 갔다.

계란말이! 그래 계란말이를 하자. 요리할 때 대충 눈대중으로 하는 편이다. 양배추와 당근, 파를 넣어서 그동안 보충하지 못했던 야채 섭취를 즐기려고 꽤 나 신경을 곤두세웠다. 노랑 초록 주황이 섞여 오동통통하면서 몽글몽글 길쭉한 모양을 만들어냈다. 스스로 만족했다. 불과 3분 전만 하더라도 기분이 좋았다. 딸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녀는 내 소중한 계란말이를 한 입도 아니고 선나 꼽재이(찔끔) 먹으며 연신 틱틱 거린다. “양배추가 넘 많이 들어간 거 아냐? 당근도 좀 잘게 썰면 좋겠다. 그냥 달걀하고 소금만 넣으면 안 돼?” 학 씨!!!

아서라, 통으로 내 입에 넣어 우적우적 씹어버렸다. 덩달아 방귀도 같이 나왔다. 뿡! 딸이 코를 쥐며 도망갔다. 만족스러웠다.


머리는 여전히 아프다. 아플 때는 청소를 해야지. 털이 보송보송한 귀여운 토끼로 인해 집안은 매일 털 잔치다. 몇 시간에 한 번씩은 청소기를 돌린다. 청소기 끝에 레이저 나오는 것으로 바꿨는데 참 마음에 든다. 먼지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들어 주는 아이템이다. 게으른 나에게 직접적으로 보여 주니 청소가 조금은즐거워 진다. 흥얼거리며 청소기를 밀고 있는데, 아뿔싸 양말 한 켤레가 빨려 들어갔다. 그 뒤로 청소기는 먹통이 되었다. 나는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우리 집 해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묵묵히 듣던 해결사는 한마디만 했다.

“그냥 놔둬.”


“엄마~ 수학 모르겠어~” 머리가 더 아파 왔다. 가르치다가 열불이 날 것을 알기에 아니, 아이랑 부딪히기 싫었다. “엄마도 모르겠다. 수학은 엄마한테 물어보지 마. 선생님한테 물어보는 거야.” 다른 과목은 설명 가능한데 수학은 꼴도 보기 싫다. 유전인가? 스스로 자문한다.

“아~ 왜~ 왜! 왜! 아빠는 바쁘고 언니는 자기 거 한다고 안 알려 주고 엄마는 모르겠다 하고! 왜 안 알려 주는 데에~!”선인장의 가시가 온몸을 찌르는듯, 머리에 피가 모두 모여있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나는 친절이 뭔지 모르는 사람처럼 변해버렸다. 공부방 선생님에게 아이들이 붙여준 별명은 '천사 선생님' 나도 안다. 이건 아니라는거. 직업인의 엄마와 엄마로서의 엄마는 아이들 눈에 이중인격처럼 보일 터였다. 한번 터진 폭탄은 빠른 수습이 불가능했다. 아이들은 무방비 상태의 엄마를 마주해야만 했다. 엄마의 폭탄을 건네받은 큰딸이 말했다. “엄마 그날이야?” 못난 엄마는 한 달에 한 번씩 화를 낸다. 나조차도 이해할 수가 없다. 그것을 이해해 주는 딸이 처방을 주었다. “아빠 오늘 올 때 고기 사 와요. 안 사 오면 큰일 나.”


해결사는 집 안의 수상한 분위기에 치킨을 조심스레 건넨다.

“타이레놀 먹었어? 오늘 밥 하지 마.” 그래. 밥을 하지 말자. 뭐지? 밥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머리가 조금 덜 아팠다. 오자마자 설거지를 끝내고 냉장고 문을 열어 일주일째 똑같은 콩자반과 멸치 그리고 어제 먹다 남은 감자전을 꺼낸다. 하나하나 반찬을 싸고 있는 남편의 등짝이 고마워 보여야 하는데 말 못 할 측은함이 느껴졌다. 동시에 미워졌다. 순간 알아차렸다. 내가 이상하다는 것을.


며칠 동안 두통이 지속되어 병원에 갔다. 병명은 스트레스 신경 과민성.

의사는 약을 처방해 주지 않고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하고 싶은 거 한 번 해보세요.” 아니 뭐 다 아는 얘기를 하고 그래? 난 속으로 의사의 말에 하찮은 토를 달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있다며 생색을 냈다. 그런데 아니었다. 집에서 공부방을 하며 집안 살림에 아이들 케어까지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 업무 과중이었다. 그래서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글쓰기와 책 읽기가 뒷전이 되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이 매 순간 있었다.

40대가 되면서 나에 대해 몇 가지 알게 되었다. 내가 언제 어떻게 두통이 시작되는지,

1. 해야 할 말을 못 했을 때

2. 하루 중 유일한 내 시간을 빼앗겼을 때

3. 가족 간의 대화가 없다고 느낄 때

4. 운동을 게을리했을 때 (40대가 되면서 근 손실이 현저히 감소한다.)

나는 그 막중한 미션을 완료해야만 했다. 나로 살기 위해.


진료를 받고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아이들 저녁 부탁해.” 말을 하면서도 생각했다. 나도 일하는데 남편은 나에게 이런 부탁하지 않는다는 것이 조금 서글퍼졌다. 하지만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 나를 낮추는 것이 익숙해서 그런 거였다.

노란 노란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오늘은 '매콤 치킨 유부'가 제격이었다. 혼밥을 하고 카페에서 테이크 아웃 커피를 들고 동네 스카로 향했다. 아마 그때부터 두통이 있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그동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하루 2시간만 이용했었는데 시간제로 결제했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유쾌. 상쾌. 통쾌.

자리에 착석하여 글을 한편 내리쓰고 평소 좋아하는 박완서 작가님의 책을 읽었다. 이상하다.

두통이 말끔히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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