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 되기 실패 일지

칭찬도장은 남이 아닌 내가

by 류민




나는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 믿어 왔다. 하지만 가끔, 나조차 모르고 있던 또 다른 내가 모습을 드러낼 때면 낯설고 의심스럽다. 그래서 가능한 한 충돌보다는 회피를 선택할 때가 있다. 그것도 상황에 따라 옳은 방법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편안함 속에서도 관계의 ‘경계’를 존중할 줄 안다. 그 적절한 거리감 속에서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다. 관계를 이어 가며 많이 배운다. 내 감정을 모두 쏟아 낼까 봐,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봐 걱정을 하지만 과정에 진심은 숨길수가 없다. 나의 부족함을 인지하면 미안해할 줄 알고, 개선점을 찾으면 된다.


"진정한 친구란, 나의 모든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나이와 무관하게, 내가 어떤 모습일지라도 그 본질을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보다, 기쁨의 순간에 마치 자신의 일처럼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친구지요."_법륜 스님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는가?

이건 상대에 따라 다르긴 하다. 그런 친구가 몇 있는데 잘 되면 배가 아픈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심으로 기쁘고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바라는 것 없이 그 존재만으로도 행복한 기분마저 든다.


나는 자주 생각에 얽매여 있다. 말 한마디에 3일을 곱씹고, 행동 하나에 나 자신을 3년간 기소시킨다.

슬프게도 나는 나를 자주 재판한다. 때때로 약속을 어기며 ‘양심’을 붙잡고, 돈이 중요하다면서 게을러지고 여유를 찾는다. 착한 엄마 행세를 하면서 사소한 일에 분노가 자리 잡고, 그렇게 내 안의 아이는 어정쩡한 어른이 되었다.


어릴 적 친척과 엄마의 지인분들 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자랐는데 그때의 경험이 도움이 될 때가 의외로 많다. 부작용이 있다면 굳이 신경 안 써도 될 부분마저 나를 점검하려 드는데 실로 피곤함을 자처한다. 그래서 상대의 잘못을 들추기보다는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며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삼켜왔다. 하지만 변치 않는 관계가 어디 있으랴, 서로의 마음이 변했다기보다는 상황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상황이야 어찌 됐건 똑같이 선을 넘는 행동이나 말을 하면 관계가 소원해진다.


'왜 하필 그렇게 말했어?'

'그런 것까지 해 줄 필요는 없잖아?'


이만큼 살아온 나에게 칭찬도장도 꽝! 하고 주지만 벌을 주기도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부 재판이 열린다. 그때마다 나를 제대로 변호해 본 적이 있던가. 변호는커녕 날 선 질문을 던진다. 나를 이해하기보다는 판단을 먼저 했다. 착한 사람이어야 하고, 도덕적이어야 하고, 괜찮은 선택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살아보니 그런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온전히 나를 드러내어 인간관계에 흠이 생기기도 했다. 내가 정말 착한 것인지, 착한 척을 하는 것인지 나조차도 헷갈릴 때가 종종 있지만, 그 상황에서는 진심인건 분명하다. 때론 옹졸하게 보일 수도 있는 행동과 말도 하고, 이기적인 선택을 하며 후회를 거듭했다. 그것이 나란 인간이었다.




스스로에게 엄격하기보다 자주 웃어주기로 했다.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무거운 감정들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 뿐이었다. 오늘은 내가 나에게 선언한다. "이봐, 오늘도 웃으며 보내자고."

착한 사람 되기 실패일지?

아니다. 그냥, 살아가는 일지다.

그리고 그 일지를 조금 더 가볍게 써 내려가기로 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