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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언 Mar 16. 2021

봄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

살랑살랑, 어느 결에 봄은 다가와 닫힌 나의 방문을 두드린다.

쾅쾅쾅 쾅!

조금 친절하게 두드려주면 좋으련만, 그렇게 인정도 사정도 없이 찾아온다. 물론 봄은, 자연이 주는 가장 값진 선물이다. 얼었던 모든 것은 녹고 그 틈에 새로운 생명이 솟고, 우리의 시간을 모두 영으로 되돌려 다시 시작하게 해 주는 형언키 조차 힘든 축복이다. 그러나 웨딩 플로리스트인 나로서는 이러한 시간을 온전히 즐기기에는 뭐랄까, 가슴 한켠에 작지만 견고한 돌덩이 같은 것이 느껴지는 기분이다. 이 돌멩이는 겨울이 다 갔음에도 깨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봄이 올 수록 더욱 굳어진다. 그리고 봄이 옴으로 녹여지는 내 감정의 시내, 그 물줄기를 막아 버린다. 이러한 기분은 2월에서 3월로, 달력이 한 장 넘겨 질 때면 더욱 요동을 친다. 그 즈음 부터 달력의 칸칸을 붉은 글씨로 채운 일정들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겨울 동안 시나브로 쌓인 봄의 새로운 웨딩들은 그렇게 달력의 일정표를 채우고 내 마음에 부담을 채운다. 물론 그것은 감사한 부담이다. 만일 텅 비어진 봄의 달력을 본다면 얼마나 허망하고 괴로울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마음이란 것이 참, 못됐다. 일정이 많으면 많은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걱정이다. 그리고 그 걱정은 어쨋든 이 즈음, 겨울이 끝이나고 봄이 시작될 무렵에 거칠게 나의 방문을 두드리며 찾아온다. 거창한 말로, 웨딩 플로리스트의 운명이라 해 두자.


운명하니까 떠 오르는 한명의 위인이 있다. 베토벤이다.

방세를 제 때 내지 못한 베토벤은 자주 독촉을 받았고, 집주인이 밀린 돈을 받으러 올 때면 언제나 쾅쾅쾅 쾅! 하고 방문을 거세게 두드렸다고 한다. 이 쾅쾅쾅 쾅! 네 번의 두드림이 운명 교향곡의 그 유명한 첫 시작 '솔솔솔 미'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정확한 일화는 아니다. 그를 둘러싼 허구의 이야기는 워낙에나 많아 그 중의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애초에 베토벤은 이 곡의 이름을 '운명'이라고 짓지도 않았다. 이 또한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조수에게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리며 찾아온다'라고 말했던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모든 사실관계를 차치하고서, 이 일화들은 재미있고 흥미롭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로가 된다. 빚쟁이 처럼 성난 발걸음으로 찾아와 쾅쾅쾅 쾅! 부술듯 문을 두드리는 운명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한편, 이것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잃어가는 청력과 창작에 대한 부담을 떨치기 위해 베토벤은 자주 숲 속을 거닐었다. 그 속에서 평안을 느끼며 그에게 찾아오는 두려움을 애써 이겨내려 했던 것이다. 그에게 들려오는 새소리, 물소리는 분명 위로가 되어 주었을 것이고 어느날 새들이 일시에 지저귀는 삐삐삐 삐. 하는 소리에 영감을 얻어, '솔솔솔 미'라는 간단하지만 의미있는 화음을 만들었으며 이것에 그를 둘러싼 불안과 두려움, 기대와 부담을 덧입혀 빰빰빰 빠암! 하는 터질듯 폭발하는 아주 장엄한 소리를 만들어 내었다는 것이다.

모든 이야기는 그럴듯 하다. 피식하며 웃어버릴 수도 있고 만일 이런 부담과 불안을 몸소 겪고 있는 중이라면 예사롭지 만은 않게, 마치 자신의 일처럼 감정이 이입되어 느껴질 것이다. 작은 일화가 전설이 되어 긴 시간을 이어져 오는 이유는 분명 그 시간을 관통하여 똑 같은 상황과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적용이 되어,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거부할 방도도 없이, 어쨋든 찾아올 운명의 시간은 그렇게 화가난 빚쟁이일 수도 있으며 숲 한 가운데를 오가는 새들의 지저귐일 수도 있다. 어떻게 적용을 시킬지는 본인의 몫일 것이다


나는 숲 길을 걷는 편을 택한다. 물론 베토벤이 걸었을 그 목가적인 숲길은 내 주변에는 없다. 그러나 다행히, 정비가 잘 된 개천까지 갖춘 마을의 산책로는 제법 그럴듯한 숲길이 되어준다. 이것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며 그 길을 따라 온전한 봄의 태동을 만끽한다. 간간히 들리는 새 소리는 그것이 삐삐삐 삐든, 빠바바 빰이든, 쾅쾅쾅 쾅이든 관계 없이 그저 봄이 옴에 한껏 신이난 노랫 소리로만 들리운다.


매년의 이 즈음이 이랬고, 아무리 가혹한 일정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불과 두 세주 쯤 지나면 이내 몸과 마음은 그 상황에 맞게 적응이 될 것이다. 그러니 투정과 엄살은 이제 그만, 두 팔을 벌리어 한 껏 그것을 맞을 준비를 하자.


오라 봄이여, 나의 운명이여.

다만 나의 방문을 두드릴 땐 똑똑똑, 조금만 상냥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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