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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언 Apr 28. 2021

플로리스트의 몸에선 꽃향기가 날까


평생 용접일을 하셨던 아버지의 몸에서는 언제나 쇠 냄새, 불 냄새가 났다. 그 시절의 아버지들이 그러하듯 잔업이다 특근이다 아버지의 퇴근은 언제나 밤이 늦어서였고, 9시 뉴스가 한창일 때면 잠겨있지 않은 현관문을 통해 당신과 함께 그 쇠 냄새, 불 냄새를 한껏 몰고 들어 오셨다. 현관문을 잠그지 않는 건, 열쇠로 문을 열기 귀찮아 하는 아버지를 위한 배려였다. 그렇게 가족들의 소소한 배려를 받으며 하루의 일과로 부터 탈출한 아버지는 거실 구석에 작업복을 벗어둔 채 간단히 샤워를 하고 곧장 잠이 드셨다. 아버지의 내일은 누구보다 일찍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의 하루가 얼마나 고단 했는지는 작업복의 쇠냄새가 얼마나 강렬한가로 가늠할 수 있었다. 지금도 우연히 공사장을 지나치며 용접기가 뿜는 냄새를 맡을 때면 그때의 시간들이 떠오른다. 이것이 무슨 냄새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치거나 손을 휘휘 내 저으며 좋을리 없을 그것을 쫓을 테지만, 나에게는 용접 불꽃에 숭숭 구멍이 뚫린 아버지의 작업복을 떠올리게 하는 반가운 냄새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사람에 따라 다른 냄새가 난다는 설정은 정말 기발했다. 물론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소득과 계층에 따른 주거 환경, 그리고 그것과 연관된 어두운 부조리에 관한 것이지만 영화를 보며 떠올랐던 생각들은 그 슬픈 면 보다는 오히려 냄새로 인해 상기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었다.

어쩌면 정말, 직업에 따라 우리의 몸에선 다른 냄새가 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플로리스트인 나의 몸에선 어떤 냄새가 날까. 꽃 향기? 설마, 그럴리가.

향기는 꽃의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그저 미미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플로리스트의 작업실은 언제나 색색의 꽃들로 가득하다. 이 꽃들이 모두 저마다의 향을 내뿜는다면 나는 아마 질식해 죽을지도 모른다. 꽃 시장에서 갓 출하된 꽃은 향이 아닌 좀 특이한 냄새를 가진다. 농장에서 꽃시장 까지 이동하는 동안 마르지 않도록 뿌려된 물이 수증기로 변하면서 내는 습한 공기의 냄새와 줄기 틈틈이 묻어 있을 흙의 냄새 그리고 잎 사이사이에 적당한 양만큼 녹아 있을 농약의 내까지 한데 뒤엉켜 나는, 참으로 묘한 냄새다.

플로리스트는 이 미묘한 냄새 덩어리의 꽃들을 정성스레 다듬는다. 가시를 벗겨내고 불필요한 잎 들을 뜯어낸다. 상처난 꽃잎을 다듬고 줄기에 묻어 있는 이물질들도 닦아 낸다. 그 다음, 미리 깨끗이 씻어 놓은 통에 시원한 물을 가득 받아 다듬은 꽃들을 담는다. 이러한 과정 동안 꽃에서 나는 불필요한 냄새들 마저 함께 사라진다. 하지만 공기중에 떠돌던 냄새들이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분명 어딘가에는 입자인 채로 알알이 박혀 그 흔적들을 남겨둘 것이다. 아마도 나의 몸에서 냄새가 난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한다. 꽃이 아닌, 잎과 줄기와 가시에서 나는 냄새, 물 때와 흙과 미량의 농약이 한껏 뭉쳐 진 냄새 말이다. 나의 손 끝에, 나의 가슴에 그리고 나의 작업실 곳곳에 켜켜이 쌓여 있을거라 믿는다.

그리고 어쩌면, 이 냄새는 직업인으로서의 플로리스트에 대한 설명도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꽃과 그 향기는 언제나 고객의 몫이다. 씻고 다듬고 꽂고 돌보는, 노동이 집약된 일련의 모든 과정만이 오직 플로리스트인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다. 물론 결과에 대한 가혹한 평가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에 대해선 일종의 만들어진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우아할 것 같고, 고상할 것 같고, 일은 그다지 힘들지 않지만 돈은 많이 벌 수 있는 전문직 같은 것으로 말이다. 물론 소수나마 그러한 부류도 있을 것이다. 전국에 ‘꽃집’으로 등록된 사업자의 수가 2만 5천명 가량 된다하니 실제로 활동하고 있는 플로리스트의 수도 그 언저리일 것이다. 2만 5천의 모두가 우아하지도 않을 것이고 또한 모두가 오직 생계만을 위해 하루하루를 희생 하지도 않을 것이다. 모든 직업인이 그러하듯 플로리스트 역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전업 플로리스트로서 적절히 풍족하고, 적당히 괴롭다. 일상으로 보자면 보통의 직업인, 평범한 회사원과 다를 것이 무엇일까 싶기도 하다.

스물 세살의 겨울, 동네 작은 꽃집에서 허드렛일을 시작한 것을 처음으로 플로리스트로서의 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시간이 되기까지 꽃을 통해 크고 작은 성취도 경험하며 꽃이 맺어준 인연을 통해 가정도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반면, 그러한 가운데 실패도 겪고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며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건강을 망가뜨리기도 했다. 플로리스트로 이십여년을 지내오는 동안 이 직업은 단짠단짠한 애증의 덩어리. 내게는 마치 소금을 가득 품은 버터 쿠키 같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을 것은, 이 삶이 앞으로도 계속되길 바란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내게 종종 묻는다. 왜 플로리스트가 되었냐고. 하지만 이 물음에는 대답해 줄 수 없다. 이제 더 이상 ‘왜’에 대한 이유가 생각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만큼이나 긴 시간이 흘렀다. 첫 시작의 기억, 내겐 영원히 각인 될 것만 같은 소중한 의미의 시간 마저 희석되어 버릴 만큼의 과거가 되었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닌 앞으로의 시간일 것이다. 지금의 바람이 있다면 여태 그래 왔듯이 플로리스트로 나이 들어 가는 것이다. 각기 다른 상호명으로 사업자를 냈다가 접기도 하고, 시류에 따라 꽃의 판매에서 웨딩 플라워로 변화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의 시간 동안 비어버린 순간 없이 꽃과는 늘 함께였다. 꽃은 나의 삶을 관통하는 주요한 것이고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은 나의 정체성이 되어 주었다.

앞으로의 삶 역시 그랬으면 좋겠다. 당신은 누구냐는 질문에 ‘저는 플로리스트입니다.’라는 한 문장의 말로 지체 없이 갈음 할 수 있는 삶 말이다. 그때를 상상해 본다. 다시 이십년 만큼의 시간이 흘러 흰 머리가 성성하고 꽃가위를 잡은 손은 주름으로 자글거리겠지만 여전히 물이 잘 빠진 청바지를 한 단 접어 입고 날렵한 로퍼를 신은 채 요상한 냄새 가득한 작업실에서 꽃을 꽂는 할아버지 플로리스트. 혹여나 마침 그 때 누군가가 빼꼼히 나의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과연 이 노인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 하는 눈빛이라면 밝은 목소리로 이렇게 환대해 주어야지.

”안녕하세요? 플로리스트의 작업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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