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잘 꽂고 싶었다.
작가가 좋은 글을 쓰고 싶고, 디자이너가 세상에 없을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내고 싶은 것 처럼 꽃을 잘 꽂고 싶다는 건 플로리스트에겐 너무나 당연한 욕심이다. 어쩌면 꽤 오랜기간 이 욕심에 매몰되어 있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스스로가 아둔했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당시엔 절박했고 그 생각 밖에 없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어렸고, 빨리 성공하고 싶었고, 나는 이런 사람이다 하고 보여 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조급함에 빠져 나를 채근하고 닥달하지 않았나 한다. 우리는 쉽게 ‘열심의 함정’에 빠진다. 어쩌면 학교에 가기 시작하면서 부터일 것이다. 열심히 하는 것이 잘 하는 것이라는 등식을 성립하는 시기 말이다. 열심히 하는(듯한) 학생은 어른들로부터 애정과 기대를 한몸에 받는다. 그러한 시간을 경험하며 자연스레 ‘열심히 하겠습니다'를 인사처럼 하게 된다. 열심히는 하겠는데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열심히 해야할지를 몰랐다. 플로리스트도 나름 디자이너이다 보니 은근 서로의 작품에 대한 견제랄까, 관심이 많다. 나 역시 플로리스트 특유의 쫌생이 기질이 있어서 같은 꽃을 가지고서도 왠지 나보다 더 그럴듯하게 꽂은 작품들을 보면 시기의 샘이 뭉근하게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그럴때면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본능처럼 하게 된다. 정작 어떻게 열심히 해야하는지도 몰랐으면서.
그러한 채로 꽤 오랜동안 눌러 두었다. 이것은 마치 플로리스트의 끊이지 않는 과제 혹은 숙명 처럼 이 일을 하는 동안 평생을 끌고 가야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실력의 한계가 느껴질 때면 무엇이든 그저 닥치는대로 열심히 하여 단계를 넘고, 또 넘어서면 되는 문제라 덮어 두었다. 하지만 언젠가 우연히, 아주 우연히 이 난제에 대해 해답을 얻게 되는 일이 있었다.
텔레비전을 보며 습관적으로 채널을 바꾼다. 화살표 위아래 버튼을 눌러 숫자가 커지는 채널로 갔다가 다시 거꾸로 내려 오거나 자주 눌러 번호를 기억하는 채널은 직접 번호를 입력하기도 한다. 리모콘의 화살표를 눌러 주르륵 바뀌는 채널 중에 우연히 걸렸는지, 아니면 선호하는 채널의 번호를 입력하다 주변의 숫자까지 같이 눌러져서 원치 않는 채널로 옮겨 갔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리모콘 조종이 멈춘 것은 만화채널이었다. 거기에선 ‘플란다스의 개' 라는 고전 만화를 방영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 눈물 콧물을 쏙 빼 놓은 바로 그것으로, 성인이 되어서는 잊고 지내다가 이를 다시 보게 된 것이 영국에서 돌아온 직후 부터 였다. 영국의 플라워 스쿨 시절, 기숙학교 였던 그곳은 적막했다. 다섯시면 어두워지고 자전거로 십오분 거리에 있던 상점들 마저 문을 닫기에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이십대 초반의 몇 안 되는 한국 학생들은 벌써 영국의 겨울에 지쳐가고 있었다. 한국음식은 물론 한국의 소리 마저 그리운 그때, 우리 중 한 명이 트렁크 안에 꽁꽁 챙겨온 것은 노트북과 만화 ‘빨간머리 앤' 전 시리즈를 담은 CD 열 장이었다. 처음엔 그 친구를 무척이나 놀려댔지만 이내 우리는 그 작은 노트북 화면 앞에 모여 그 만화를 보고 또 보았다. 한국 방송은 당연히 전무하고 인터넷은 느려터졌고 유튜브도 없던 시절이라 오로지 한국말이 나오는 방송은 그것 뿐이었다. 영국 겨울의 긴 밤, 기숙사를 나가지 않는 주말, 과제를 하는 중에도 마치 라디오 처럼 그것을 틀어 놓았다. 끝내 우리는 대사를 외울 지경까지 되었지만 대안은 없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우리는 이미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종종 그 때의 만화들을 찾아보곤 했다. ‘빨간머리 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동심에 젖게 했던 ‘그 시절'의 만화들 말이다. 단연 ‘플란다스의 개'도 그중 하나였다. 마침 TV에서 방영을 해 주다니, 잠시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집중하여 보게 되었다.
주인공 소년 네로는 파트라슈와 우유 배달을 하던 중에 강둑에서 맞은 편 성당을 그리고 있는 화가를 지나치게 된다. 어깨너머로 그림을 구경하던 네로는 화가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느냐고. 그때 화가의 말이 깊은 여운을 주며 가슴에 남았다. ‘나는 저 성당의 모습을 눈을 감고도 떠올릴 수 있다고, 오랜동안 지켜보며 형태 하나하나를 모두 기억할 수 있다’고 했다. 화가는 붓을 들기 전에 그 대상을 관찰하고 또 관찰하였을 것이다. 낮 부터 저녁까지 같은 자리를 지키며 시간에 따라 다른 그림자를 지우는 모습과, 아침의 찬 공기가 만들어 내는 벽의 색과 점심의 더운 공기가 만들어 내는 벽의 색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첨탑의 십자가 끝 부터 바닥의 주춧돌 주름까지 충분히 눈으로 담아 내고서야 붓에 물감을 묻혔을 것이다.
만화가 끝나고 화가의 말을 오랜동안 되뇌어 보았다. 꽃을 잘 꽂기 위해 여러 열심을 기울였지만 과연 그 꽃이 어떻게 자라나고 피어나는지 의문을 갖고 관찰해 보았던 적이 있었던가. 눈에 마음에 이 여린 식물의 씨앗이 땅에 뿌려지고 굳은 땅을 비집고 움트는 모습을 그려 본 적이 있었던가. 그저 습관처럼 꽃시장에 가고 이미 길러지고 피어진 꽃을 받아 들어 이것으로 어떤 모양을 낼지, 무슨 색으로만 쓸지에만 골몰했을 뿐이다. 결국 꽃을 ‘잘 꽂는다’라는 건 오롯이 손의 움직임에만 집중한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손의 움직임은 기술적이다. 우리 일은 단 1미리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그런 냉정한 분야는 아니다. 오히려 어딘듯 비어 보이고 한편으론 짧아 보이고, 일종의 이 모자람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 내어 놓고 평가를 받는다. 그들의 평가는 다양하겠지만 단연 최고의 호평이라할 것은 ‘자연스럽다'일 것이다. 억지로 꾸미지 않았다는 이 말은 결국 자연을 닮았다는 뜻이다. 자연은 스스로를 꾸미지 않는다. 한줄로 쪼로록 줄 맞춰 꽃을 꽂아서는 안되는 이유는 자연에서는 꽃이 그렇게 피지 않기 때문이다. 높고 낮게 혹은 휘어서도 피는 꽃들은 모두가 제각각인 듯 하지만 그 안에서도 규칙과 순리를 가지고 피어나고 진다. 자연스럽게 꽃을 꽂았다는 건 플로리스트에겐 최고의 찬사이며 자연스러워지러면 눈과 마음에 온통 자연의 모습을 담아야 했다. 플라워 스쿨에 다닐 때 선생님께서 왜 그렇게 ‘be natural(자연스럽게)’라는 말을 자주 하셨는지 알 것 같다. 플로리스트는 자연을 모방하여 작품에 담아내야 한다.
이후로 마음은 한결 여유로워졌다. 그저 만화 한편으로 모든 깨달음을 얻었다 말할 수는 없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일은 언제나 크고 작은 부침을 겪지만 적어도 잘 꽂아야, 잘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만큼은 벗어난 것은 확실하다. 머리를 쥐어 뜯으며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골몰하기 보다는 차라리 아파트 화단 사이를 걸으며 틈틈이 피어난 꽃들을 구경한다. 그러는 동안 더 가치있는 영감을 찾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지는 꽃들은 자연에서라면 어떻게 피고 어떻게 지어갈지를 떠올리며 작업을 한다. 플로리스트는 자연을 담아야 하니까.
한번씩 일이 풀리지 않거나 여전히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습관처럼 스스로에게 말한다. 자연을 담아야 한다. 화려한 손의 놀림이 아니라, 이 꽃이 자연에서라면 어떻게 피었을지를 떠올려야 한다 라고 말이다.
플로리스트로서의 생이 허락하는 동안은 나의 손을 통해, 나에게 주어진 공간 안에 자연을 담아내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다면, 지금껏 플로리스트로 지내온 시간 만큼이 다시 흘러간다면, 자연을 닮은 플로리스트로 늙어갈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를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