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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언 Sep 17. 2021

나는 런던의 플로리스트 (1)


드르륵, 드르륵, 덜컹 덜컹, 통 통


워털루 역에서 내려 지하철로 갈아타고 예약해 둔 한인민박을 향해 빠른 발걸음을 옮겼다. 런던의 지하철은 계단이 많고 턱 또한 높아 트렁크가 긁히고 치이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게 뭐 대순가, 지금 이 곳에선 나처럼 꿈을 쫓아 트렁크를 끌며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민자, 유학생, 그리고 영국의 시골에서 상경한 사람들. 택시비 조차 아까워 양손과, 등에 배에 걸칠 수 있는 모든 짐들을 걸치고 트렁크를 끌며 지하철에 오르고 있다.

런던의 인파를 뚫고 도착한 민박집 거실에는 이미 배낭과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다. 잠시만요, 조금씩 옆으로 옆으로. 네 네 고맙습니다. 민박집 사장님의 손짓에 따라 사람들이 어기적이며 움직였고 그 틈에 나의 공간이 생겼다. 우선은 짐만 내려 놓은채 그곳을 빠져 나왔다.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민박을 예약한 기간은 단 5일 남짓, 그 안에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만일 이 기간동안 성과가 없다면 구직을 하는 기간이 열흘이 되든 한달이 되든 별 차이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긴 기간을 버틸 만큼의 돈이 내겐 없었다.

런던의 원데이패스권은 하루 동안 지하철과 버스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먼저 존1 지역을 공략하기로 했다. 런던은 존1부터 6까지 있는데 존1은 중심부 중의 중심부, 내가 일하고 싶은 곳들이 밀집된 지역이다. 미리 리스트를 뽑아 두었던 곳들을 찾아가 밝게 인사를 하고 포트폴리오를 펼쳤다. 대부분은 시큰둥하고 일부는 영국인 특유의 학습된 친절을 베풀었다. 이력서와 함께 정성스레 만든 나의 압화 명함을 건넸다. 잠시 명함을 앞뒤로 관심있게 훑어 보더니, 오케이, 바이. 했다. 그렇게 나는 하루종일 오케이, 바이를 들어야만 했다.

하루, 이틀, 사흘 째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목표일을 5일로 잡은 건 잘한 결정이었다. 그 기간이면 런던의 꽃집이란 꽃집은 거의 다 시도해 본 것이기 때문이다. 민박에선 아침과 점심 그리고 식빵과 잼이 제공되었다. 빵에다 잼을 잔뜩 발라 점심으로 챙겨나왔다. 우걱우걱 마실 것도 없이 빵을 씹으며 계획에 수정이 필요함을 느꼈다. 원데이패스는 효율적이지 못하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 버려지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렇다고 무작정 걸을 수 있는 거리도 아니다. 한편, 이렇게 불쑥 찾아가는 것이 과연 옳은 방법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것이 나의 열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들의 문화에선 무례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점으로 향했다. 잡지코너에서 ‘Time Out’을 빼들었다. 이 잡지의 맨 마지막 장을 보면 런던의 레스토랑, 카페, 옷게가는 물론 꽃집의 리스트도 나와 있다. 이미 갔던 곳들을 빼고, 점원의 눈치를 살피며 하나하나 주소와 전화번호를 옮겨 적었다. 먼저 잡오퍼가 있는지 전화를 돌려 보기로 한 것이다. 역시나 영어는 쉽지 않은데, 전화로 한다는 건 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사람이 절박해지면 입도 트이고 귀도 열린다. 그 영험한 경험을, 홍해가 갈리 듯 나의 귀와 입이 열리는 체험을 하게 된다.

영국의 명물인 빨간색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수도 없이 전화를 걸어댔다. 그런데 마침, 드디어, 파이널리. 노팅힐에 위치한 어느 숍에서 구인 계획이 있으니 오라고 했다. 아니 실은, 내가 간다고 했다. 전화로 이것저것 물어보며 대화가 길어지면 혹시나 나의 영어 밑천이 금방 들통날까 염려 되었기 때문이다. 그쪽에서 주소와 오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지만 이미 전화 번호와 주소를 함께 적어두었던 터라 위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치 다 알아 듣고 이해하는 듯 예스, 으흥, 오케이 하며 다양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는 전화를 끊고 한달음에 지하철 역으로 달려갔다. 

노팅힐의 꽃집은, 사무실을 겸한 본점은 노팅힐 메인 거리에서 조금 비켜난 곳에, 그리고 키오스크라고 하는 가판 매장은 노팅힐 거리 중심의 포토벨로 마켓이 가르는 바로 그 길에 각각 있었다. 간단한 면접과 꽃다발을 만들어 보는 테스트 등을 거치고 언제부터 일을 할 수 있겠냐는 합격에 버금가는 결과를 받았다.

웰, 음. 몇 초간 뜸을 들이고 애써 실룩이는 입꼬리를 숨킨 채 대답했다. 내일이요.

처음 세 날은 일급이라며 퇴근 때마다 현금으로 받았다. 그리고 그 다음주 부터는 주급으로 매5일 째 되는 날마다 받았다. 영국은 주급제가 일반적이었다. 어쩌면 처음 세 날은 나의 인턴 기간 이었는 지도 모른다. 본점에서 잘 나오지 않는 할아버지 사장님이 지나가는 길이라며 자주 내가 있던 키오스크에 들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시나 나흘째 부터는 잘 오지 않았다. 주 5일이긴 했지만 신분은 파트 타이머였다. 하지만 그런걸 따질소냐 이 마저도 감지덕지였다.

취업을 한 그 주에 집도 새로 얻었다. 유학생 커뮤니티에서 찾아 낸 그 곳은 원래의 집 주인으로 부터 집을 빌린 사람이 다시 방과 거실 등에 단기간 살 사람을 얻는 쉐어하우스였다. 두 개의 방에 각 두명씩 네명, 그리고 거실에도 간이 침대를 놓아 두명이 지냈다. 그 작은 집에 여섯명, 주방과 부엌은 함께 썼다. 런던의 집값은 가히 살인적이라 이런 형태는 흔했다. 말할 것도 없이 외곽 지역이라 좀 으스스하긴 했지만 그런걸 따질 처지가 아니다.

기간으로 치면 일주일 남짓이지만 내 생에 이 때만큼 절박했던 시간이 또 있을까 싶다. 터벅터벅, 아무런 성과 없이 돌아오던 날에는 이 도시가 너무나 삭막하고 무섭게 느껴져 몇번이나 감정이 복 받치기도 했다. 일주일간 내 생애 느껴야 할 모든 희노애락을 압축하여 겪어낸 것만 같았다. 그렇게 집과 일, 이 두가지가 한꺼번에 펑하며 해결되다니, 다행히었다. 그것은 기쁨 보다 안도였다.

민박을 나와 드르륵, 드르륵, 덜컹 덜컹, 통 통. 다시 나의 트렁크를 끌고 지하철을 누벼 계약한 집으로 향했다. 계약할 땐 저녁 어스름이 내릴때라 잘 보지 못햇던지 낯에 보니 왜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나와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당시 나의 다이어리에 이날의 기분을 어떻게 남겼는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가난에 가장 가까워졌고, 지금의 가난이 앞으로 내 부의 원천이 되리라는, 상당히 오만하고 오글거리는 문장들이었다. 이후 나는 더 가난해진 적도 있었고 여전히 부를 쌓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 때의 시간들, 그리고 이 곳은 부의 원천은 되지 못했지만 플로리스트로서의 원천이 되어준 고마운 보금자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터까지 지하철로 삼십분 거리, 한 번만 갈아타면 되기 때문에 더 이상 크게 바랄 것은 없었다.

노팅힐 꽃집에서의 일은 말할 것도 없이 즐거웠다. 꽃을 마음껏 다룰 수 있다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현지인의 삶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볼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노팅힐의 땅 값이 어마어마 하다지만 원래 이곳은 런던 토박이, 그 중에서도 서민계층이 많이 살던 곳이었다. 특히나 꽃집의 가판매장이 있던 포토벨로 마켓은 평일은 주민들을 위한 과일, 채소등의 농산물이 거래되고 주말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빈티지, 골동품 가판들이 많이 들어선다. 이것을 보는 재미도 무척이나 쏠쏠했다. 노팅힐 사람들은 시장에서 먹거리를 사고 마지막 코스로 내가 일하던 꽃집에 들러 꽃을 샀다. 대부분 자신의 집에 꽂을 것 들이라 포장은 간단히, 종이를 둘둘 말아 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들은 과일과 채소가 담긴 종이봉투를 가판 앞에 내려 놓고 동료와 한참 수다를 떨기도 하고, 꽃을 사러 왔지만 이미 양손이 가득이라면 계산된 꽃을 들고 기꺼이 그의 집 앞 까지 동행 하기도 했다. 그 만큼 걸어 지척거리의 사람들이 우리 고객이었고 그들에게 꽃은 과일이나 채소와 다름없이 식탁을 채워주는 삶의 필수품이었다.

지금도 영화 ‘노팅힐’을 종종 찾아 보곤 한다. 주인공이 타던 23번 빨간 이층버스, 시장, 거리. 이 모든 것이 눈에 익고 정겹다. 그리고 주인공이 일했던 ‘트래블북숍’. 이곳은 내가 일했던 곳과 불과 골목 하나 차이라 길을 잃은 관광객들이 무수히 위치를 물어 보던 곳이다. 나는 능숙하면서도 살짝은 현지인 처럼 도도하게 위치를 알려주고, ‘실은 그곳은 가짜예요. 실제하지 않는 곳인데 영화가 유명해 지면서 누군가 같은 이름으로 차린 거래요' 라는 TMI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행운은 연달아 오는 것일까, 그렇게 노팅힐에서의 근무가 익숙해진 얼마 뒤 기대하지 않았던 소식을 듣게 된다.


나는 런던의 플로리스트 (2) 에서 계속..


내가 일했던, 노팅힐의 그 꽃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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