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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연군 Feb 28. 2019

비행기는 조종사의 피를 먹고 자란다.

그 서른세번째 이야기. 헬기 추락.

이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휘영청 달 밝은 밤에 사무실에 앉아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는 그런 평범한 날 중에 하나였다. 항상 내 왼편엔 정훈병이 같이 있었다. 참모가 지휘부 운동을 갔다 와서 퇴근 지시를 내리기 전까지 꼼짝없이 사무실에 둘이 갇혀있어야만 했다. 


일이나 주고 가면 모를까. 참모는 꼭 5시에 운동하러 나간다고 하더니 꼭 9시를 넘겨 사무실로 들어와서 퇴근 지시를 하고 집에 간다. 그것도 내일 아침까지 보자는 업무를 하나 던지고서 말이다. 그래서 늘 우리의 퇴근은 11시가 넘었다. 정훈 병과 내에서 이상하다고 소문난 사람이었고 나도 말년이라 수없이 부딪혔다. 하지만 윗사람이 아무리 이상해도 군대는 군대. 계급이 깡패였다. 한두 번 그냥 퇴근했더니 다음날 업무 보복이 이어졌다. 퇴근 후에도 말도 안 되는 전화로 다시 출근을 종용하기도 하나하나 남은 정훈병을 들들 볶았다. 


내가 없으면 일 할 사람이 없으니 정훈병은 먼저 들여보내고 다음날 업무를 진행할 줄 알았다. 그리 급한일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웬걸. 내가 없으니 정훈병을 너무 고생시켜서 계속 같은 방법으로 먼저 가는 반항을 어어가지는 못했다. 같이 일하는 하나뿐인 동료라 나 몰라라 할 수가 없었다.


그날은 그런 날 중에 하루였다. 9시 넘어 슬슬 참모가 들어올 때가 됐는데 소식이 없었다. 10시가 되어도 깜깜무소식으로 일관했다. 전화를 몇 차례 했지만 계속 수신거부로 이어졌다.


"뭐야. 퇴근하지 말라는 거야? 뭐 일이라도 시켜놓고 이러던가."

화가 난 마음에 좋은 말이 나올 리 없었다. 10시가 가까워졌다. 우선 정훈병을 막사로 돌려보냈다.


"너까지 있을 필요 없으니 가서 쉬어. 무슨 일 있어도 잘 때 안 불러 낼 테니까 씻고 푹 쉬어"

안쓰럽고 미안했다. 간부야 월급이라도 받으며 이 고생을 하지만 병사는 무슨 죄인가. 10시를 훌쩍 넘어 11시가 다되어가니 슬슬 악에 받쳤다.


"모르겠다. 그냥 가야겠다." 11시가 넘어가는 시점에 참모에게 문자를 보냈다.

[참모님, 11시까지 대기했는데 연락도 받지 않으시고 별도 지시하신 업무도 없어 우선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충성]


문자를 보내고 짐을 싸서 나오려 하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참모였다.

"그래 공보장교야. 내가 정신이 없어서 못 받았다. 지금 일이 터져서 그러니 잠시 더 대기해라"

참모는 자신의 용건만 전달하고는 통화를 짧게 마쳤다. 화가 났다. 무슨 일인지 설명이라도 해야 보고서 초안이라도 작성할 텐데 그저 손 놓고 아까운 시간만 보내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12시가 다 돼서 참모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아직 있었네. 부대 근처에 헬기가 추락해서 사고 현장에 다녀오느라 늦었다. 내일은 공보장교 네가 가서 현장을 지켜야 하니 언론대응 기사 초안만 작성하고 들어가라.'


'헬기... 추락?' 바로 사무실 TV를 켜서 YTN을 틀었다. 육군의 500MD 헬기 추락이 연이어 속보로 나왔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

500MD는 70년대 도입된 오래된 헬기다. 공격용 헬기라 부르기 민만할 정도지만 나름 대전차 로켓인 TOW를 장착할 수 있다. 

500MD 헬기 대전차 로켓 TOW 발사 장면 / 출처: 육군항공


육군에는 별도 항공병과가 있다. 바로 육군항공이다. 대전차 공격이 가능한 최신예 아파치와 코브라, 500MD, 그리고 수송기 역할을 하는 UH-1H, 치누크 여기에 최근 보급되기 시작한 수리온까지 주로 헬리콥터를 운영한다. 


이날 추락한 것은 500MD 항공기로 기체 나이는 30년을 넘었다. 이튿날 찾아간 현장은 참혹했다. 헬기는 비닐하우스 한가운데 떨어져 있었고 파편은 여기저기 주변에 흩어져 사고 현장임을 대변했다. 밤 늦게부터 새벽까지 헌병이 나와 현장을 통제했기 때문에 기자들도 기체 사진을 찍어가지는 못했다. 당시엔 기자들이 동체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해서 언론보도가 계속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것이 주안점이었다.


오전 날이 밝자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지난밤부터 뉴스가 계속 나간 데가 더 이상 쓸만한 그림이 나오지 않아 서둘러 빠져나갔다. 해당 헬기가 소속된 육군항공작전사령부 소속 관계자도 현장에 나왔다. 현장 상황을 보고하고  파손된 헬기 인양을 위해서였다. 



비행기는 조종사의 피를 먹고 자란다

사고는 야간 비행 중 헬기 꼬리날개가 전선을 건드려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조종사 두 명은 사고 현장에서 3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항공작전사령부 관계자에게 물었다.


"헬기는 전투기 같은 비상탈출이 없습니까?"


현장을 지키던 대위는 점프슈트를 입고 있었다. 같은 조종사인 듯했다. 


"헬기는 위에 프로펠러가 계속 돌고 있어서 공중에서 조종사 탈출이 불가능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불시작 하든지 추락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처음 조종사의 시신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어 비상탈출을 시도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추락 충격으로 인해 몸이 튕겨져 나간 것이다. 


"잘 아시는 분이셨습니까"

"얼굴은 다 알고 있죠. 부조종사는 이제 애가 갓 태어났는데... 휴;;"


긴 한숨이 안타까움을 대신했다. 


"헌병 조사관 말로는 항공기 꼬리날개가 전선을 건드려서 추락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항작사에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조종사 과실로 결론 나겠죠."

"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조종사 과실로 결말이 나야 더 이상 다치는 사람이 나오지 않으니까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잔인한 두 가지 말 중 하나였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와 '산사람은 살아야지'. 모두 망자보다 생존자를 위하는 말이 나는 끔찍하게 잔인하게 느껴졌다.

 

"아니, 그래도 정비결함이나 기계 결함이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걸 밝히는 순간 여럿이 다칩니다. 어쩔 수 있나요. 비행기는 조종사의 피를 먹고 자라니까요."


저녁 해가 질 무렵 7톤 트럭과 크레인차가 도착해 비닐하우스 안에 박힌 동체를 들어내 옮겨 실었다. 헬기 동체의 모습은 형편없었다. 외관만 보더라도 생존자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당시의 사고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듣지 못했다. 다른 부대의 일이고 언론에 까지 나온 사항이니 나에게까지 그 상세 내용이 전달될 리 만무했다. 얼마 전 국내개발 마린온 헬기가 이륙한지 4초만에 회전날개가 이탈해 추락했다. 언론은 즉시 반응하여 이를 대서특필 했다. 


하지만 나에겐 사고 원인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조종간을 잡았을 선배 전우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예전 추락사고 현장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 자리에서 만난 관계자가 한 말까지도. [비행기는 조종사의 피를 먹고 자랍니다.]


먼저 간 전우들의 넋을 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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