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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연군 Mar 05. 2019

운 좋은 군인

그 서른 여섯번쨰 이야기. 운칠기삼

군 생활에는 운이 필요하다.


군 생활을 위해선 강운이 필요하다. 다른 말로 하면 재수가 좋아야 한다는 소리다. 선착순을 외쳤는데 내 앞에서 끊긴다거나, 하필 내가 속한 소대에 이상한 이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다거나 하는 사소한 운수 외 군인의 길을 가는데 큰 방향성을 좌우하는 운도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앞에 운은 재수, 뒤에 운은 관운으로 구분한다. 재수는 누구나 알 수 있는 범주의 행운을 말한다. 새로 바뀐 지휘관에게 경례만 잘했을 뿐인데 포상휴가를 받는다거나, 힘든 훈련 대상에서 나만 제외된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소소한 군생활에 재미를 더해준다. 반면 관운이 있는 사람이라면 군생활에 몸을 담아도 좋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운칠기삼 

영화 타짜에서 회자되었던 유명한 말이 바로 "도박은 운칠기삼"이다. 도박의 결과를 운이 70%가 좌우한다고 하는데 이는 군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다. 가만히 있어도 주변이 알아서 도와주는 기적을 맛볼 수 있다. 오죽하면 나폴레옹도 유능한 장군보다 운 좋은 장군이 좋다고 했겠는가? 해당 기수에서 1등을 하더라도 장군 진급이 보장되는 것이 아닌 만큼 '관운'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관운으로 유명한 사람 김관진 전 안보실장이다. 김관진 전 안보실장은 호남 출신으로 육사를 졸업했다. 군인으로 재직 기간에 호남 출신에 대한 차별을 피하고자 철저히 이를 숨기고 살았다. 덕분인지 관운을 타고난 것인지 육사를 졸업해도 좀처럼 쉽지 않은 장성진급은 물론 별 네 개 대장 계급까지 큰 사건 사고 없이 올라가게 된다. 그의 관운이 빛을 발한 건 이때부터. 


함동 참모 의장 이취임식(좌:김태영, 우:김관진) / 출처: 중앙일보


당시 국방부 장관은 김태영이었다. 김태영은 김관진의 육사 1년 후배다.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도 군 내에서는 관운이 좋기로 소문난 이었지만 김관진 전 안보실장에 비할바는 못되었다. 김태영 전 장관의 불운은 국방부 장관 취임 이후에 집중되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제주 강정 해군기지 등의 굵직한 사건이 계속되면서 결국 자리를 김관진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이명박 정권에서 김관진은 제1순위 국방부 장관 후보가 아니었지만 연평도 포격 도발 등 엄중한 군사적 사태를 고려해서 강직한 성품 등이 고려되었다는 후문이다. 이후 박근혜 정권에서는 국방부 장관 직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새로 내정된 김병관 후보자의 갖은 의혹이 터지면서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했다. 대체자를 찾지 못한 박근혜 정권은 사상 최초로 국방부 장관 유임을 결정했다. 이후엔 세월호 참사로 김장수 안보실장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자 그 자리를 다시 물려받아 청와대에 입성했다. 



불운과 재수 그리고 불똥

웬만한 사단급 부대에는 역사관이라는 건물이 하나씩 있다. 뭐 사람들이 얼마나 그 부대 역사를 궁금해하겠느냐 만은 이상하리 만치 사단장들은 역사관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들이 많다. 자신이 떠나고 나도 영원히 이름 석자가 기록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 부대에도 그런 역사관이 있었다. 안 쓰는 창고 한편에 있어서 10년 넘게 아무도 찾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폭설이 내렸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눈이 계속되었다. 그저 눈이 많이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던 중 옆에서 포병 창고 지붕이 무너졌다는 소리가 들렸다. '아 포병부대는 그거 치우느라 고생하겠다' 정도 생각만으로 지나쳤던 사건이다. 사건의 발단은 그때부터. 10년간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부대 역사관이 하필 그 자리에 있을 줄이야.


사단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역사관 관리를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 역사관 복구 계획을 수립해 오라는 지시가 뒤따랐다. 역사관은 정훈이 담당하는 업무였다. 아 말년에 역사관이라니. 절망이었다. 우선 천정이 무너진 역사관 자리를 찾았다. 무슨 폭격을 맞은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고 내부 자료는 관리가 안돼 색이 바래 형편없었다. 역사관 복구가 아니라 거의 새로 만들다시피 해야 했다. 


11사단 역사관 개관식 / 출처: 홍천일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때 육군본부에서 공문 하나가 날아왔다. [올해 12월부 부대 역사관 관련 업무는 부관부로 이관한다.]라는 지시였다. 세상에 내 사정을 어찌 알고 이런 공문을 보내 주셨는지. 부관부에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전전긍긍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여기저기 찔러가며 대책을 강구했다. 


그러던 중 전산과장이 사이버 역사관을 제의했다. 부대 내 새로이 역사관 장소를 선정해서 운영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선도적으로 사이버 역사관을 운영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게 그 명분이었다. 사단장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 일은 일사천리였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그렇게 우리 부대는 사이버 역사관을 가지게 되었다. 



운과 능력을 시험하는 장소

군대는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는 장소임과 동시에 운을 측정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소한 재수에서부터 큰 관운까지 능력을 뛰어넘는 우주의 기운(?)을 느껴볼 수 있다. 김관진 전 안보실장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정권이 바뀌는 것이나 후임자의 청문회 등은 어찌해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유능한 지휘관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좋은 동료와 부하를 만나는 것도 하나의 큰 운이라 할 수 있다. 


이 모든 게 자신 주위에 있다면 군생활을 이어가는 게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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