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네번째 이야기. 거짓말의 모래성
뻔한 이야기를 각색하는 것과 없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자기소개서를 쓰다 보면 수많은 유혹의 손길이 뻗쳐온다. 인터넷에서 참고했던 자기소개서 내용이나 주변에서 대기업을 한 번에 합격한 이들의 수기를 보면 휘황찬란하기 그지없다. 각종 경시대회에 참가해서 상을 탔거나 어려서 외국에 살았거나 하는 이야기를 보면 주눅이 든다. 유학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몇 달간의 어학연수 경험은 가지고 있다. 솔직히 대한민국의 일반가정에서 외국 유학이나 어학연수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모든 취업 준비생은 외국이라는 접두사가 붙는 경험을 자기소개서 어딘가에 가지고 있는 것만 같다.
비단 외국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도대체 같은 20대를 지내왔을 텐데 어떻게 저런 일을 했을까 하는 이들도 많다. 마치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처럼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함께 벤처 창업을 해서 사업을 꾸려나갔던 경험을 자랑하기도 하고 작게는 포장마차 같은 자영업의 경험을 말하는 이도 적지 않다. 여느 기업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 입상했거나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 같은 국제적 행사의 자원봉사를 했던 이들도 있다.
이런 이들의 수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저절로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두세 개 자기소개서를 섞어서 한번 만들어 볼까? 외국 생활 그까짓 거 TV나 영화에서 보면 별거 없던데, 우선 거짓말로 몇 줄 써서 서류나 통과하고 보자."
WHY 앞에서 무너지는 모래성
거짓말로 자소서를 꾸미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인터넷을 통해 잘 쓰인 자소서 몇 개만 추리면 금세 놀라운 경험을 한 지원자를 만들어 내는 건 일도 아니다. 문제는 들통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이런 거짓말이 질문 몇 마디면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포장마차를 운영했다가 3개월 만에 망했던 이야기를 어디선가 가져와 자소서에 담는다고 하자. 이 거짓말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사전에 많은 것을 준비할 것이다. 포장마차 운영과 관련된 인터넷 기사나 후기, 자영업자의 고충 같은 것들을 참고해서 거짓말 뼈대에 살을 붙여나간다. 그리고 몇 번을 외워서 옆에서 누가 찔러도 답이 나오도록 준비한다.
"창업일은 2017년 10월 30일, 폐업일은 2018년 1월 17일. 폐업 사유는 창업 위치 선정 실패와 타깃층과 아이템 분석에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훌륭한 실패 스토리가 완성된 듯하다. 하지만 정작 면접관은 다른 디테일을 묻는다.
"제가 소주를 좋아하는데 포장마차는 주류를 어떻게 납품받나요?"
"안주 메뉴는 몇 개였어요? 제일 자신 있는 메뉴와 만드는 방법을 좀 말씀해 보시겠습니까?"
"포장마차 한 달 운영할 때 들어가는 고정비용은 얼마 정도인가요?"
실제로 경험해 보지 않은 이들은 대답할 수 없는 내용들이다. 면접관들이 일부러 거짓말을 캐내려 이런 질문을 쏟아내진 않는다. 다만 회사생활로 다져진 그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일상적인 디테일이다.
거짓말로 쌓은 모래성은 질문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경험을 포장하자
우리가 재미있게 보는 영화나 드라마 중엔 실제 사건이나 인물을 기반으로 한 것이 많다. 멀리 서는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천만 영화도 있고 가깝게는 '보헤미안 랩소디'나 '말모이' 같은 영화도 있다. 실제 사건이나 인물을 기반으로 한 영화라고 해서 반드시 모든 것을 역사적인 내용으로 담아내진 않는다. 아무리 위인의 삶이라고 해도 그의 모든 삶의 순간이 영화처럼 다이내믹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을 바탕으로 픽션을 가미한다. 이른바 각색을 하는 것이다.
단 한 줄의 역사책의 이야기만으로도 대하드라마가 완성될 수 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광해군의 일기 한 줄에서 모티브를 땄고,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는 연산군일기에서, 전 세계 한류 시작을 알린 <대장금>은 중종실록에서 한 줄 언급된 내용으로 서사를 써 내려갔다.
자신의 인생에서 변곡점이 되는 경험을 적어보고, 그 경험에 살을 붙여나가는 포장 스킬이 자기소개서에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