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역사를 바꾼 열두 가지 사건 사고. 일곱 번째 이야기
비행기를 타면 이착륙할 때 귀가 먹먹함 느껴본 일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은 꼭 유럽이나 미국 같은 먼 외국이 아니더라도 제주나 부산 같은 국내선을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이런 느낌은 이륙할 때보다 착륙할 때 더 강한데, 성인보다 8살 미만 어린아이들이 착륙 5분 전부터 귀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일이 많다. 이때 승무원들은 아이에게 코를 잡고 바람을 넣어 막힌 귀를 뚫는 발살바(또는 이퀄라이징)를 하도록 하거나, 더 어린아이의 경우에는 뜨거운 물을 적신 휴지를 넣은 종이컵을 줘서 귀에 대고 있게 한다. 그럼 귀 주변이 따듯해지면서 통증이 잦아든다. 때로 여유가 있을 때는 착륙 전 미리 물 한 컵을 줘서 비행기가 하강하는 동안 천천히 마시게 한다.
이 모든 건 기압 차이 때문
착륙 전에 귀가 아픈 이유는 바로 기압 차이 때문이다. 여객기는 통상 장거리 비행의 경우 고도를 35,000~40,000ft까지 높여서 비행한다. 35,000ft를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대략 10,000m 정도로 전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 보다도 높다. 실제 비행을 하다 보면 유럽이나 네팔 비행에서 날이 좋으면 비행기 창 아래로 그림같이 펼쳐진 히말라야 산맥을 감상할 수도 있다.
비행기가 이렇게 높이 나는 이유는 돈이다. 고도를 높일수록 공기가 밀도가 낮아짐에 따라 공기저항도 줄어든다. 공기저항이 줄면 자연히 양력이 증가하고 같은 힘을 내도 더 멀리 갈 수 있어 항공기 연비가 좋아진다. 수십 톤의 그 무거운 비행기를 에베레스트 보다 더 높이 올리는 데는 막대한 기름이 소모되지만, 그 보다 공기저항이 낮아짐에 따라 얻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에 기를 써서 고도를 높이는 것이다. (국내선 같이 비행시간이 짧은 경우엔 고도를 높이기도 전에 착륙을 해야 돼서 25,000ft 정도로 비행한다.)
고 박무택 대장과 영화 히말라야
2015년 영화 히말라야는 큰 성공을 거뒀다. 에베레스트 등정 중 사망한 고 박무택 대장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것이 알려지면서 큰 화제를 일으켰다. 8,000m가 넘는 산을 아무리 많이 다녀도 산소가 낮은 고산지대에서 생존하는 것은 매번 생명을 건 도전인 것이다.
사람이 고산지대에서 생존이 힘든 이유를 우리는 중/고등학교 과학시간에 이미 배워서 알고 있다. 해발이 1,000m 올라갈 때마다 공기압은 1/10씩 줄어든다. 공기압이 준다는 소리는 밀도가 낮아진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숨을 쉬는데 필요한 산소가 100이라고 할 때, 지상에서는 1m 주위의 공기만 마셔도 충분하지만 8,000m 에서는 8m 주변의 공기를 다 마셔야 채워진다는 소리다. 쉽게 말해 숨쉬기가 8배는 힘들다.
몸에 산소가 적게 들어오면 몸에서 산소를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뇌가 사고를 하는데 장애가 발생한다. 정상적인 생각과 판단을 하지 못한다. 뇌가 쓸 산소도 부족한 마당이니 근육이 충분한 산소를 가지고 힘들 낼 수도 없다. 이런 일이 기내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백두산 정상과 같은 조건
객실은 0.7~0.8 기압을 유지한다. 수치로만 따지면 해발 2,000~3,000m 산 정상에 있는 것과 같다. 객실 기압을 이 정도로 유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이유는 객실 기압을 지상과 동일하게 맞출 경우 항공기 동체가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건 풍선에 바람을 넣는 것과 같다. 풍선에 계속 바람을 불어넣으면 외부보다 내부 압력이 강해지다가 풍선이 버틸 수 있는 압력의 한계를 넘어서면 터지게 된다. 항공기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 동체가 버틸 수 있는 수준으로 객실 기압을 맞추는데 최신예 항공기인 B787의 경우엔 객실 기압을 한라산 높이인 0.8 정도로 유지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객실 기압을 더 낮추면 승객의 생존이 어렵기 때문이다. 항공기 동체의 안전성만 생각하면 객실 기압을 0.3이나 0.4로 낮춰야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이유는 기압이 낮아지면 공기 밀도도 낮아지기 때문에 제대로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이다. 승객이 단체로 고산병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고산병은 8,000ft~10,000ft 높이부터 발생하기 때문에 객실 기압은 그보다는 낮게 유지해야 한다.
유령 비행기
2005년의 일이다. 키프로스를 출발해 아테네를 찍고 프라하로 향하던 헬리오스 522편이 아테네 공항에 착륙하지 않고 상공에서 30분째 선회만 계속하고 있었다. 관제소는 계속 조종사와 연락을 시도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당국은 테러 납치로 생각해 F-16 전투기를 급파했다. 만에 하나 9/11 테러와 같은 시도가 일어나면 공중폭파시킬 요량이었다.
전투기가 헬리오스 항공기에 근접해 내부를 살피니 승객은 모두 쓰러져 있었다. 조종석도 마찬가지였다. 조종간을 잡고 있어야 할 기장은 없었고 부기장은 기절해 있었다. 마치 유령 비행기 같았다. 그때 마침 한 명의 남자가 산소마스크를 쓴 채로 조종실에 들어와 조종간은 잡았다. 그는 무언가를 하려 노력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헬리오스 항공기는 인근 야산에 추락해 버리고 말았다.
사고 원인은 조종사들이 이륙할 때 여압장치를 작동시키지 않아서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여압장치는 고도를 높일 때 기내 압력이 낮아져서 에베레스트 정상처럼 되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이 장치가 정상작동하지 않으면 항공기가 급격히 고도를 높임에 따라 객실은 10분 만에 지상에서 에베레스트 꼭대기로 올라선 것과 같아진다. 산소가 부족하니 정상적인 생각과 행동을 할 수도 없고, 1분도 지나지 않아 뇌에 산소부족으로 기절하게 된다.
헬리오스 항공기도 산소 부족으로 인해 한 명을 제외한 기내 모든 사람이 정신을 잃었다. 그중 단 한 명의 남자 승무원 만이 비상 산소통을 사용해서 온전한 정신을 유지했고, 조종 기술을 배웠던 그는 조종실에 들어가 어떻게든 손을 써보려 했다. 하지만 연료 부족으로 인해 끝내 추락하고 만 것이다.
산소마스크
동체에 구멍이 나거나 기계 고장으로 압력이 급격히 떨어지면 산소마스크가 자동으로 내려오게 된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감압 상황'이라고 한다. 이때 살기 위한 방법은 산소마스크를 빠르게 쓰는 것 단 하나다. 산소마스크는 15분 동안 산소를 공급해 주는데, 기장은 이 시간 동안 항공기를 어떻게 해서는 10,000ft 고도까지 낮춰야 한다. 감압 상황을 이겨내기 위한 골든 타임은 단 15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