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역사를 바꾼 열두 가지 사건 사고. 여덟 번째 이야기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호빵이 편의점에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길가엔 따끈한 김을 내는 붕어빵과 달달함을 머금은 호떡이 겨울이 왔음을 알린다. 겨울은 크리스마스와 설경으로 아름다움이 가득한 계절이다. 스키장에서 스노보드를 타고 내려오는 짜릿한 기분과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바라는 연말연시 분위기는 겨울이 설레는 이유다.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항공인이 되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항공인이 되면 겨울은 피하고 싶은 계절이다. 겨울철 따듯한 남쪽나라로 비행 가면 좋지 않냐 생각할 수 있지만 가기 전까지의 고생이 만만치 않다. 특히 눈 예보가 있는 날은 최악의 하루가 되기 십상이다. 눈은 군인들만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항공인도 피하고 싶은 대상이다. 이유는 군인처럼 눈을 치워야 해서가 아니라, 항공기에 쌓인 눈을 치우는 동안 기내에서 꼼짝없이 대기해야 되기 때문이다.
날개 위의 눈을 치워라
가끔 하늘을 나는 항공기를 보면 저 큰 게 어떻게 하늘을 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수십 번 기내에 타서 일을 해도 눈으로는 보지만 머리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영역이다. 항공기가 하늘로 뜰 수 있는 힘은 바로 양력이다. 물에 뜰 수 있는 힘이 부력, 하늘을 날 수 있는 힘은 양력인데 공통점은 다 무언가를 뜨게 한다는 것이다.
양력이 발생하는 원리는 공기의 흐름에 따른 기압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는 베르누이 효과라고도 한다. 간단히 설명하면 항공기 날개가 공기를 가르는데 항공기의 날개는 윗면이 곡선으로 되어 있어서 아랫면보다 더 넓다. 날개 시작점에서 2의 공기가 위아래로 1씩 나뉘어 지나가서 날개 끝에서 동시에 만난다고 하면, 날개 위의 공기는 더 넓은 면적을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더 빠른 속도로 이동하게 된다. 이렇게 빠른 속도가 계속 유지되면 날개 위는 날개 아래보다 압력이 낮아지면서 날개 아래서 위로 상승하는 힘을 받게 되는데 이게 바로 양력이다. 태풍의 눈 주위로 공기가 빠르게 순환될 때 태풍 중심부 기압이 낮은 것과 같은 이치라 할 수 있다.
// 양력 발생 원리에 관한 추가 설명 //
많은 분들께서 제 글에 관심을 가져 주시고, 부족한 점을 말씀 주셔서 아래와 같이 양력 발생 원리에 대해 보충 설명을 추가 합니다.
'베르누이의 원리'는 양력을 발생시키는 주요 원리로 지금까지도 인용되고 있지만, 베르누이의 원리 만으로는 양력 발생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베르누이 원리 자체는 틀리지 않고 이를 통해 양력이 생성되는 영향도 있지만 '긴 경로'나 '동시 통과' 이론의 가정보다 뉴턴 제2법칙인 '가속도 법칙'과 제3법칙인 '작용/반작용 법칙'을 더해야 양력 발생의 올바른 설명이 될 수 있다.
어떤 물리 법칙을 적용하더라도 만약 날개 위에 이물질이 쌓여 매끄럽지 못한 경우엔 정상적인 기류 순환이 이뤄질 수 없어서 결코 양력이 발생할 수 없다. 날개가 있어도 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쌓인 눈을 우습게 본 결과
1982년 1월 아주 추운 날의 워싱턴에서의 일이다. 눈 폭풍으로 인해 공항이 폐쇄될 정도로 날씨가 좋지 않았다. 다행히 한낮이 되니 날씨가 조금 풀려 공항도 폐쇄를 풀고 다시 운영될 수 있었다. 따듯한 남쪽에서 날아온 에어플로리다 90편의 조종사들은 눈보라로 인해 너무 많은 시간이 지연되어 초초한 마음이 가득했다. 공항 운영이 재개되자 이륙을 서둘렀다.
앞에 대기하고 있는 항공기가 많이 이륙이 늦어지는 가운데 다시금 눈이 내렸다. 원칙적으로는 항공기에 내린 눈을 다 치우는 작업인 제/방빙을 해야 하지만, 따듯한 지역에서 주로 비행했던 이들은 이 절차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그 둘은 눈은 금방 녹으니 앞에 이륙하는 비행기 바로 뒤에 붙어 있으면 그 비행기의 제트 엔진 열기와 바람으로 쌓인 눈은 금방 녹아내릴 것이라 생각했다.
이들의 생각은 반만 맞았다. 제트엔진 열기로 일부 눈이 녹았지만 추운 날씨와 차가운 금속성 항공기 표면 때문에 녹은 눈은 금세 얼음이 되어 굳어버렸다.
기장과 부기장은 이런 사실은 전혀 모른 채 이륙했고, 충분한 양력을 받지 못한 항공기는 이륙 1분 만에 추락해 탑승객 대부분이 사망하는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다.
창 밖을 보라
한 겨울에 비행기에 오르면 늘 창 밖을 보라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생각난다. 승무원들은 언제 눈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수시로 창 밖에 눈길이 향한다. 항공기 날개 위에 있는 검은색 표시가 눈에 덮여 보이지 않을 때는 절대로 이륙해서는 안된다. 비행기는 속도가 빠르니까 이륙하는 과정에서 눈은 다 날아가겠지 하는 생각은 사고로 직결된다. 실제로 한 겨울 고속도로에는 눈을 가득 쌓은 채로 100km 이상을 달리는 자동차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눈이 얼어붙으면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쌓인 눈을 치우기 위해서는 전문 차량으로 항공기 전체에 특수 용액을 뿌리는 제/방빙 절차를 거쳐야 한다. 보통 제/방빙을 하고 나면 30분 이내 이륙을 해야 하는데, 그 시간을 놓치면 다시 같은 절차를 해야 한다. 이륙이 계속 늦어지게 되는 것이다. 앞에 비행기가 밀려있고 눈이 계속 오는 최악의 상황에서는 제/방빙 작업에 4~5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시간이 걸리고 불편해도 어쩔 수 없다. 한 겨울 안전한 비행을 위해서라면 모두가 감수해야 하는 불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