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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종택 Aug 21. 2019

결혼에 거리를 두니 비혼이 되었다.

이 글은 요즘 트렌드 혹은 키워드로 거론되는 비혼에 대한 글이다. 남들처럼 비혼의 이슈, 문제점, 시사점을 제시하는 글은 아니다. 아주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시작되고 마무리될 글이다. 


이 글의 배경은 비혼 주의자로서 살아보았던 지난 5년의 기록이다. 그 시간 동안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나에게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과 에피소드와 그 에피소드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글이다. 


이 글을 시작하기 앞서, 윗 문장을 읽어보았다면 의문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비혼 주의다로써 살아보았던 5년의 기록"이라는 말은 과거형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비혼에 대한 생각은 똑같다. 그러나 과거처럼 '비혼'이라는 울타리를 세우고, 결혼의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세웠던 비혼의 울타리에서 나와 '결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호기심을 가지고 한 걸음씩 다가가는 중이다. 그래서 요즘은 비혼 주의자로서의 삶과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비교하며 체험하고 있다. 만약 내 인생의 기록들을 계량화된 데이터로 만들 수 있다면, 데이터로 구축 후 분석해보고 싶다. 


나에게 비혼은 거창한 계획 혹은 사건으로 인해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나는 비혼이라는 단어가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른 체 살고 있었던 20대 남성이었다. 지금 내 나이가 34살이니 정확히 29살 남성이었다. 흔히 우리나라의 생애주기에서 29살~32살의 남성은 결혼 적정 기라고 분류된다. 아마 지금의 나는 결혼 적정기의 끝에 서있을지도 모른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현재 내 나이가 34살이기 때문에 비혼에서 황급히 결혼 주의자(?)로 전환한 것은 아니다. 



이 글을 쓰면서 결혼을 희망하지 않는 사람은 비혼 주의자로 명명되지만, 결혼을 희망하는 사람을 정의하는 단어가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29살의 나를 돌아보면 일반적인 남성들과 차이점이 많았다. 주변 친구들은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었다. 공무원부터 대기업 신입사원, 군 장교 등등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른의 사춘기가 온 것인지 "내가 원하는 일을 할 거야!"라는 생각을 품고 여러 직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4번의 이직 이야기도 잠시 풀어보겠다. 


게다가 대학원 석사과정 입학까지 준비하고 있었으니 부모님 입장에서 아들에게 결혼계획을 세우라는 것은 꿈도 꾸기 힘든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직장만 잡으면, 대학원만 졸업하면 결혼할 사람을 만나서 6개월 이내에 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말씀하셨다.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과연 '6개월'이다. 아마도 부모님 세대의 시간 기준이 아닐까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그 당시에 썸을 타던 사람도 있었고, 그 이후에도 꾸준히 썸과 연애도 했었다. 특히 30살 이후의 연애는 새로운 형태의 연애가 되었다. 왜냐하면 비혼 주의자라는 것을 밝히고 연애를 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의 연애를 했던 여성들은 '이 남자의 생각이 바뀔 것이다.'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들의 믿음만큼이나 비혼에 대한 나의 생각도 철옹성처럼 굳건했던 시기가 바로 30살~33살까지였다. 


나에게 비혼이란 단어를 알게 해 준 사람은 29살 때 잠시 썸 관계를 유지하던 여성이었다. 나이차도 3살 정도였으며, 결혼에 대한 생각이 꽤 강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카톡을 할 때마다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그때는 비혼이라기보다 '혼자 사는 삶'을 동경했던 나에게 결혼은 제약처럼 느껴졌다. 물론 지금도 결혼은 '제약 혹은 통제'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때의 나에게 '결혼은 미친 짓'이었다. 


그때 그 사람은 카톡을 통해서 '비혼 주의자'라는 단어로 나를 정의했었다. 한자의 아닐 비(非)의 혼인할 혼(婚)을 합쳐서 비혼(非婚)이란 단어가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지금도 그때의 기분을 떠올려보면 솔직히 나쁘지 않았다. 왜냐하면 '독신주의자'라는 말은 어감이 굉장히 강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혼자 사는 삶의 모습보다는 오히려 성직자의 모습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비혼은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을 칭하는 단어로써 의미가 정확히 전달되는 것이 매우 좋았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그녀의 카톡에 이렇게 답했다. 


"그러네요. 저는 비혼이네요."


단순히 결혼에 거리를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한 순간에 비혼 주의자로서 정의되었지만, 썩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왜 결혼을 생각하지 않는지 단순하고,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호칭을 얻었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비혼 주의자의 첫 번째 썸은 2015년 첫눈과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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