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케팅, 길을 묻다 (1)

by Dr Ryan


STP 전략을 통해 우리는 어느 시장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가치로 자리 잡을지를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방향을 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제 남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 목표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행할 것인가?’

지금부터 살펴볼 네 가지 구성 요소는 흔히 마케팅 믹스(Marketing Mix)라고도 불립니다. 4P는 STP에서 정한 방향을 현실로 구현하는 실행적이고 전술적인 단계입니다. STP가 ‘어디로 갈지'를 정하는 전략이라면, 4P는 그 목표에 '어떻게 도달할지'를 실행하는 전술인 것이죠. 이 두 가지 프레임워크는 성공적인 마케팅을 위해 필수적으로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마케팅의 첫걸음 4P


마케팅에서 4P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입니다. 물론 학문적, 실무적 발전 과정에서 5P, 7P, 혹은 그 이상의 확장된 틀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네 가지 4P만 제대로 이해해도 마케팅의 큰 줄기는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복잡한 개념을 외우는 것보다, 기본이 되는 4P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4P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된 후에 확장된 개념들을 접하면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네 개의 P를 하나씩 알아볼 시간입니다.


1. 상품 (Product)

첫 번째는 상품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팔 수 있는 물건이나 서비스가 있어야 돈을 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만드는 상품을 이해하고, 그 안에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담는 일입니다. 이것이 정의되어야 나머지 세 개의 P를 정의하고 구현할 수 있습니다. 상품은 또한 고객이 기대하는 결과를 실제로 만들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매장에서 도끼를 단지 미적인 이유로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본다면 멀리 도망가세요. 대부분 사람들은 도끼로 나무를, 혹은 다른 어떤 것을, 자르기 위해서 구매합니다. 좀 더 멀리 보면, 도끼라는 ‘상품’ 자체보다 나무를 베거나 장작을 효과적으로 패서 모닥불을 만들어 삶의 질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죠. 많은 기업이 여기서 흔히 실수를 합니다. 제품의 기능이나 사양(Features)에만 집중하다가, 정작 고객이 진짜로 원하는 효과와 가치(Benefits)를 간과할 때가 있습니다.


상품은 단순히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라 고객이 인식하는 가치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고객이 찾는 가치는 단순히 내재적 가치(intrinsic value) 일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스마트폰을 사는 이유가 더 빠른 프로세서나 카메라 때문이 아니라,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오픈카를 사는 이유도 시원한 바람을 즐기기 위해서라기보다, 오픈카에 탄 자신의 모습을 통해 얻는 만족감일 수 있습니다. 물론 내재적 가치를 논하기 전에 전제는 하나입니다. 내가 선보이는 상품이나 서비스 자체가 우수해야 한다는 것이죠. 세계적 마케터인 세스 고딘의 말처럼 그것은 반드시 ‘관심을 둘(Remarkable)’, 즉 눈에 띄고 이야기할 만한 것이어야 합니다. 마케팅에는 하나의 정답은 없지만, 분명히 잘못된 답은 존재합니다.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그것이 기능적 특성이든, 아니면 더 깊은 내재적 의미이든, 정확히 짚어낸 상품을 만드는 것, 바로 거기서 마케팅이 시작됩니다.


상품에는 브랜딩과 패키징 역시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상품을 가치로 전환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브랜딩은 쉽게 생각하면, 여러분이 어떤 상품을 떠오를 때 함께 연상되는 스토리와 정체성을 만드는 것입니다. 패키징은 이를 실현하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면 편하겠네요. 긍정적인 첫인상과 감각적 경험을 설계하는 수단 역시 패키징의 역할입니다. 주변 물건들을 살펴보세요. 브랜딩과 패키징에 성공한 제품들은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흔치 않을 겁니다. 이는 곧 브랜딩과 패키징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필립 코틀러는 여기에 더해 상품의 세 가지 단계를 정의했습니다.


처음은 핵심 제품(Core product)입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이자,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우산이 필요하다면 비에 젖지 않게 해주는 것이 여러분이 진정으로 원하는 본질적인 가치일 것입니다.


그다음은 실제 제품(Actual product)입니다. 여러분이 매장을 나올 때, 손에 들고 있는 우산인 이죠.


마지막은 확장 제품(Augmented product)입니다. 이것은 위의 두 가지를 충족하고 난 다음에 오는 것들입니다. 일종의 ‘덤’이라고 생각해도 좋겠네요. 예쁜 패턴과 세련된 디자인으로 패션 아이템이 되기도 하고, 접었을 때 가방 속을 젖지 않게 해주는 사례가 포함되기도 합니다. 보증기간까지 있으면 더욱 안심되고 충성 고객이 될 수도 있겠네요. 심지어는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감성 사진’을 만들어주는 것도 확장 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고객은 단순히 비를 막기 위해 우산을 사는 것이 아니라, 비 오는 날의 기분과 분위기까지 함께 구매하는 셈입니다.



2. 가격 (Price)

가격은 고객이 어떤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지불하는 대가입니다. 동시에 고객이 인식하는 가치(Perceived Value)가 실제로 지갑을 열 의지를 결정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언제, 무엇에 돈을 쓸지 예측하는 것이 절대 단순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고객 각자가 생각하는 가치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환경과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가격은 기업이 직접 조절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케팅 도구입니다. 가격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수요를 자극하고 이익을 좌우하며 브랜드의 시장 내 위치를 재정립하는 수단이 됩니다.. 어떤 기업은 낮은 가격으로 접근성을 넓히고, 또 어떤 기업은 높은 가격으로 희소성과 지위를 강조합니다. 때로는 9,900원 같은 아주 작은 차이가 고객의 심리를 움직이기도 합니다. 가격은 품질을 드러내는 신호이자, 세 개의 자리매김하게 하는 메시지인 셈입니다.


중고 악기 시장을 한번 볼까요? 악기의 세계에서는 수십 년 된 악기나 장비들이 신품보다 몇 배나 비싼 값에 거래되기도 합니다. 어떤 물건은 ‘이게 과연 연주가 될까?’ 싶을 정도의 상태인데도 그렇습니다. 심지어 신품 악기를 구매하면서도, 일부러 세월의 흔적을 덧입힌 렐릭(Relic) 옵션을 고르기도 하지요. 연주자나 컬렉터들은 새 악기에서는 얻을 수 없는 감성, 즉 모조(Mojo)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악기에 관심 없는 이들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는 가치입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명품 현악기인 스트라디바리우스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의 기타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두 부르는 게 값인 악기들이죠. 누군가에게는 낡은 물건에 불과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역사와 감성이 담긴 무형의 자산이 되는 것입니다. 가격은 바로 이 무형의 가치를 반영합니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개념 하나가 등장합니다. 바로 수용성(Receptivity)입니다. 수용성은 고객들이 새로운 상품이나 정보에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은 상태를 말합니다. 수용성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무엇(What)과 언제(When)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모든 것에 열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특정한 순간에, 특정한 범주의 것들에만 마음을 여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유능한 마케터는 모든 사람의 시선을 붙잡으려 애쓰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사람의 주목을 얻는 일에 집중합니다. 결국, 마케팅은 ‘누구나’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언제 무엇을 보여줄지 정밀하게 조율하는 작업인 셈입니다.


여기서 떠오르는 작품이 있습니다. 유명한 일본 만화인 ‘강철의 연금술사’의 세계관에는 ‘등가교환’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작품을 관통하는 개념이기도 한 등가교환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예를 들면, 작품 속의 ‘오토메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겉보기에는 경이로운 의수·의족 기술이지만, 수술 과정의 극심한 고통과 몇 년에 걸친 적응 훈련이라는 대가를 치러야만 비로소 손발처럼 쓸 수 있죠. 소비자 행동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무엇을 포기할지(Trade-off)를 끊임없이 저울질합니다. 결국, 가격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고객이 느끼는 가치와 지불하는 대가 사이의 균형점입니다.




keyword
이전 09화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관계로서의 마케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