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목적

우리는 누구나 여행을 하지만 그것은 모두 다르다.

by Ryan mn

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여행의 방식은 다르더라도 각자의 형태로 여행을 즐긴다. 즐기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은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탐방하기를 좋아할 수도 있고, 휴식을 취하길 원할 수도 있으며, 일상을 잊는 그 자체로 여행의 목적이 될 수도 있다. 여행을 좋아한 지 10년 정도가 되었다. 여행을 즐겼던 목적이 조금씩 변해왔다. 작은 차이들이었지만 시간이 많이 흐르니 여행의 목적이 크게 널뛰기했다.


2009년 여름, 스물한살이었다. 대한민국 남성 대다수가 그렇듯 나는 입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10월 19일로 입대 일자를 받아놓았다.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많았다. 당시에 유행처럼 번지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내일로 여행이다. 코레일에서 만든 무제한 국내기차여행 상품으로 비록 입석이지만 약 6만원이하를 지불하면 1주일간 국내를 철도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2008년도부터 판매가 시작된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와 든 생각이지만 유럽의 유레일패스를 벤치마킹하여, 내수 경제 활성화 및 청년들의 우리 것 탐방을 도모하고자 만든 게 아니었을까 싶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30만원 가량을 가지고 무작정 떠났다. 20여년 동안의 인생에서 해보지 못한 것을 해보고 싶었다. 혼자서 여행하는 것은 처음이었고, 1주일간 여행하는 것도 인생에서 없었다. 입대를 하기 전에 하나의 에피소드를 그려보고 싶었다. 누군가에는 작지만 스물한살의 나에게는 매우 큰 일이었다.


2016년 여름에는 한량처럼 살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지 않았다. 재학 중에도 취업준비를 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면 참 한량처럼 들릴 것이다. 회사에 취업하기 보다는 개인의 경쟁력을 갖추고 싶었다. 전문자격시험에 응시해서 어느 기업에 소속되지 않더라도 개인의 능력을 지니고 싶었기 때문이다. 노력은 오래가지 않았다. 1년 정도 준비 끝에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내가 가질 능력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앞으로 무얼 해야할지 고민이 많았다. 도전할 여력은 남지 않았다. 하루하루 시간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서 산책을 하고, 책 한권 들고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직장인인 지금으로써는 꿈같은 휴일의 모습이지만 당시에는 하루하루가 너무 지겨웠다. 힘들었다. 이대로 계속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 묻고 또 물었다. 가까운 미래부터 먼 훗날까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방향을 잃은 일상이 반복됐다. 어쩌면 방향을 잃는게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삶을 살기 위해 그 날은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나와서 일반국도를 타야 했던 것이다. 인위적으로 연결해놓은 최단거리가 나에게 맞는 최적루트는 아니었던 것이다. 어느날 누나네 부부가 찾아왔고 국도로 빠져나갈 톨게이트를 선물했다.


누나는 신혼여행으로 유럽을 처음 다녀왔다. 파리, 인터라켄, 로마를 다녀왔는데 적지 않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이런 여행을 이제야 가본 것이 아쉽다고 했다. 직장 생활을 하기에 길게 다녀올 수 없는 현실도 얘기해주었다. 젊고 시간이 있을 때, 한량인 내가 적기라고 했다. 누나와 매형은 비행기를 끊어주었다. 여행 경비를 지원해주며 떠나라고 했다. 마음 속으로 꼭 갚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솔직히 그럴 능력은 없었다. 앞으로도 있을까 싶었다.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들어가서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으로 나왔다. 약 40일 동안 유럽을 돌아다녔다. 남는게 시간이라 많은 것을 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지난 일년간 공부로 그럴 체력도 없었다. 하루에 하나를 보면 40가지를 본 것이니 엄청 많겠구나 생각했다. 새로운 자극을 받고 휴식을 취하는 연속이었다. 오늘 할 것이 있고 다음날에도 계획이 있다는 게 정말 행복했다. 한국에서 따라다닌 내일 할 일에 대한 고민이 사라졌다.


도시간 이동은 버스와 기차를 탔기 때문에 런던-파리 서유럽 종단 여행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여행루트를 지도에 긋게 되면 유럽을 동서로 나누게 되는데 이것은 마치 지루했던 한국에서의 일상과 여행 후 갖게 된 새로운 활력의 경계선과 같았다. 고갈되어 바닥난 에너지가 샘솟았다. 하나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이 해소됐다. 그건 내 마음에서 오는 것이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미래가 달리 보였다. 무언가 보인 것은 아니었다. 보이진 않지만 한발쯤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많은 게 달라졌다. 조급함이 사라졌고 불안감도 해소됐다. 조금 천천히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해보면 된다 느꼈다. 작지만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 하였다. 졸업장이 있으니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갈 수 있는 회사에 가면 되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잠시 소설가가 되는 것이라 최면을 걸었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다 보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소설가가 된다는 의미로 자기소개서를 자소설이라 풍자하고는 한다. 나는 자소설가가 된 것이다. 이런 생활도 즐기게 되었다. 적어도 채용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내일도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회사에 입사하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게 느꼈다. 긴 여행 전에는 입사 지원은커녕 취업 준비조차 하지 않았다. 일단 해보는 것 자체로 삶은 바뀌었다. 머지않아 덜컥 취직이 되었다. 서울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첫 직장은 경상남도 창원이었다. 잠깐 겁도 났다. 연고도 없고 솔직히 너무 멀었다. 시급이 쎈 비싼 아르바이트라 생각하고 떠났다. 아니면 그만두면 된다는 마음이었다.


2020년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전세계가 발이 묶였다. 참으로 아쉬웠다. 첫 유럽여행의 매력에 빠진 후로 해외여행을 취미로 살았기 때문이다. 여행을 가기 위해 일을 했고, 여행 계획을 세우며 일상을 보냈다. 여름휴가, 명절 그리고 징검다리 휴일이면 무조건 여행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바이러스가 퍼졌고 나의 취미생활은 19년 여름의 스페인과 가을 보라카이를 끝으로 중단됐다. 석가탄신일과 어린이날을 빌미로 예약해놓은 이탈리아 여행을 취소해야 했다. 코로나 블루에 시달렸다. 이제 무엇으로 삶의 원동력을 찾아야할지 혼란에 빠졌다. 다시금 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느꼈다.


여행의 목적은 무엇일까. 다시 글의 첫머리로 가서 하나씩 진단해보고자 한다. 입대 하기 전에는 자의에 의해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자 했다. 군대 생활을 하기 위한 자신감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나 혼자서 이렇게 해낼 수 있다는 증표가 필요했다. 그런 경험이 군생활을 할 때 실제로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여행 후부터 입대 당일까지 버티는 원동력은 되었다고 생각한다.


타의에 떠났던 첫 유럽여행은 절망에 빠졌을 때 돌파구가 되어 주었다. 좌절되어 무기력과 의욕 상실에 빠진 삶을 다시금 움직이게 해주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게 의미나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착각을 해소시켰다. 삶은 그냥 사는 거였다. 다만 내일 할 게 있다면 오늘 밤이 덜 외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 날 일정이 거창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해도 그것은 그냥 타인의 판단이다. 진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사는 이유는 내가 찾는 것이고 그것에 경중이란 없다. 개인의 선택이고 책임이다.


취업 후 코로나 전까지 해왔던 여행은 일상을 버티는 낙이었다. 나의 하루는 내가 결정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어려움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감내 해야한다. 스트레스 해소를 여행에서 찾았다. 회사 생활을 잊는 게 좋았다. 긴장된 뇌세포와 날이 선 미간이 풀어지는 경험이었다. 동시에 해외여행에서 왜 즐거움이 느껴지는지도 알게 됐다. 다른 문화권과 시대에서의 삶을 아는게 좋았다. 박물관에 가는 것을 좋아했고 건축물을 찾아가거나 미술관 관람도 즐겼다. 특히 미술작품은 사람이 출현한 것을 좋아했다. 주로 작품 속에 담긴 시대적 배경을 궁금해했다. 여행지가 어디이고 무엇을 볼 수 있는지가 중요했던 이유였다. 반면 아내는 달랐다. 아내와는 연애 때부터 함께 여행을 자주 다녔다. 그때마다 어디든 좋다는 의견이 잦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일상을 잊을 수 있다면 어떤 여행이더라도 행복해진다는 것이었다. 장소가 국내이든 가까운 동아시아 국가이든 먼 해외이든 본질적으로 행복을 느끼는 요소는 갖췄기 때문이었다. 코로나 이후로 국내를 주로 다녔는데 그때에도 아내는 해외여행을 하는 것처럼 즐거워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즐거울 수 있을 것인지 말이다. 그것을 안다면 떠나지 않더라도 내가 사는 곳에서 하루를 재밌게 살 것 같았다. 여행을 떠난 이유인 일상을 버티는 낙을 지금 여기서 가져보고 싶어졌다.


여행의 목적은 다양하다. 타인이 나와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면 그는 현재 그게 필요한 사람이다. 지금은 그게 와 닿지 않지만 인생에서 언젠가는 그 목적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다른 모습을 인정하길 바란다. 자신감을 얻거나 무력감을 해소하고 싶을 수도 있다. 일상의 버팀목이 필요할 수도 있다. 모든걸 잊는 휴식일 수도 있다. 그리고 자기 삶을 더 즐겁게 만들 것을 찾아나서는 탐방일 수도 있다. 우리는 누구나 여행을 하지만 그것은 모두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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