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연의 ‘시크하다’를 읽고.
프랑스 사람들은 대체로 행복한 사람이 많다. 물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프랑스인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끊임없이 고민하기 때문에 불행한 사람들도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다. 반면 한국인들은 대체로 불행한 사람이 많다. 주변 친구들을 만나서 물어보면 행복 보다는 불행을 선택한다. 이것은 같은 세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40대 이상 중년과 노년층인 우리 위 세대도, 20대 이하인 아래 세대도 보편적으로 불행을 고를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프랑스 사람들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조승연 작가의 ‘시크하다’를 읽었고 프랑스인들의 삶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세계문화전문가인데 직업으로는 작가와 118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를 겸하고 있다. 주로 외국의 역사와 문화, 예술을 전파한다. 중학생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뉴욕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프랑스 파리 에콜 뒤 루브르에서 미술사학과 박물학을 공부했다. 외국어 천재로도 유명한데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어에 능통하고, 독일어와 라틴어도 독해는 가능하다고 한다.
작가는 책의 서문에서 독자들의 보편적인 관점을 깨부수며 시작한다. ‘행복은 경제력과 상관 없는 하나의 노하우.’라는 것이다.(p5) 우리 한국인들은 행복과 경제력이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은 한국 사회에서 보편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학생일 때 좋은 대학, 소위 명문대학에 가야한다고 교육을 받았고, 그 이유는 좋은 회사, 흔히 말해 소득이 높거나 고용이 안정적인 기업에 들어가야 경제력이 생기고 인생이 행복해 진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한국 사회 전반에 팽배하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간 학교에서 배워왔던 가치였다. 행복이 경제력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믿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측면에서만 자신들을 키워왔다.
개인의 행복이 경제력과 상관이 없다면 이제는 무엇과 행복을 연결시켜야 할까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개인마다 모두 다르다. 아니, 그렇게 말한다면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닐까 싶지만 그게 사실이다. 하물며 우리 개인은 음악 취향도 다르고, 좋아하는 음식도 다르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다 다르다. 이 외에도 말하자면 끝이 없다. 결국 우리 자신을 알아야 행복할 일들을 하나라도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작가는 행복할 일들을 잘 만들어내는 프랑스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한국인들과 몇가지 측면에서 큰 차이를 느꼈다고 한다. 이 글에서는 그 중에 두가지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첫째는 ‘편안함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다. (책의 PART 1)
“편리하다고 해서 반드시 편안한 것은 아니다.(p14)”
흔히 착각하는 것이 편리함과 편안함이 같다고 혼동해서 불행한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편리한 것을 찾으면 편안함을 느껴 기분이 좋아질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편리하지만 편안하지 않을 수 있음도 사실이다.
예전에 운전을 배울 때가 생각이 났다. 기숙사에 살고 있을 때였는데, 경기도 외곽에 위치했기 때문에 도심으로 나오는 교통편이 부족했다. 운전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이동이 정말 편해질 것 같다고 생각했고, 운전을 배웠다. 역시 이동은 참 편리했다. 하지만 마음이 계속 불편했고 쉽사리 차를 끌고 나오기가 어려웠다. 한동안 차를 주차장에 모셔 두었다. 가끔 시동을 켜보고 운전석에 앉아서 휴식도 취하며 두 달 정도를 보냈다.
자차 운전이라는 편리함이 생기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히려 심적으로는 불행함이 컸다. 당시에는 편리함과 편안함이 다르고, 그것을 구분하여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진보된 기술을 얻었다고 해서 당장 편안한 마음이 생기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런 사고가 나거나, 주차를 잘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 불안이 해소되지 않아서 당시에 마음이 힘들었다.
이제는 운전 실력이 늘어서 운전대를 잡는 일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원하는 목적지에 가기 위해 대중교통을 몇 번 환승하거나, 먼 곳으로 여행을 갈 때에도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다니거나 하는 수고스러움이 사라졌다. 여름철이면 땀이 나고 겨울철이면 손이 꽁꽁 얼던 뚜벅이 시절도 사라졌다. 운전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완화됐기 때문에 자차를 운전하는 것에서 오는 행복감이 생겼다. 행복해지기 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었던 것은 예측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운전 중 갑작스런 상황에 대응하거나, 좁은 공간에 주차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서 그렇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 편안함의 정체는 바로 삶이 예측가능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프랑스식 편안한 삶의 정체다.”(p25)
둘째는 ‘성공할 것인가, 즐겁게 살 것인가’이다. (책의 PART 7)
“미국이나 우리나라 같은 곳에서는 성취가 성공의 척도라면, 프랑스인은 노동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자기가 즐기는 레저 스포츠나 식사 같은 이벤트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쓸 수 있는지를 성공의 척도로 본다고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p189)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성공의 척도인 성취는 좋은 대학에 합격, 고용이 보장되거나 소득이 높은 기업에 입사, 수도권에 아파트 매매, 그리고 담당하는 프로젝트의 완수 등이 있을 것이다. 경험적으로 볼 때, 성취는 순간적인 행복감을 매우 크게 준다. 하지만 지속적이거나 일상적인 행복감의 측면으로 본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런 성취를 쫓는 행위는 일상에서는 불행하다는 기분을 만들어주기 쉽다.
‘즐겁게 살 것인가’는 지속적이고 일상적인 행복을 찾기 위해 던져지는 첫 질문이다. 즐겁게 살기를 원한다면 일상에서 오는 행복감을 찾아야한다. 앞서 말한, 성취로 오는 거대한 행복감은 예측가능성이 너무 떨어져서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구성하기 위한 플랜으로는 가성비가 떨어진다.
일상에서 오는 행복감은 그 크기가 작더라도 문제가 없다. 오히려 작으면 더 긍정적일 수도 있다. 그것은 적은 노력으로 가져올 수 있는 행복감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투입되는 노력이 적다면 작은 행복감의 빈도를 높이기에는 아마도 좋은 조건일 것이다. 그렇다면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행복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성공의 척도를 우리와 다른 관점에서 본다. 프랑스인들은 성공의 척도를 말할 때, 노동으로부터의 자유, 자기가 즐기는 레저 스포츠, 식사 같은 이벤트 등을 대상으로 하고, 그것을 얼마나 자기에게 맞는 방식으로 자주 할 수 있을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아마도 노동으로부터의 자유는 본인을 위한 이벤트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라 생각되고, 이벤트를 그들의 방식으로 잘 수행하기 위해 어릴 적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 동안 자기자신들을 탐구한다. 프랑스인으로 살아왔다면 성공한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개인의 행복이 경제력과 상관없다는 것을 점점 배워가야 한다. 행복은 우리의 마음이 편안함은 커지고 즐거운 일들이 보다 자주 일어날수록 커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이유를 물어보는게 좋다. 나는 어떤 걸 할 때 편하고 재미를 느끼는지 말이다. 추운 겨울 아침에 일어나서 따뜻한 커피 한잔을 먹고 재즈를 들으며, 촉각과 미각 그리고 청각을 자신의 취향에 맞게 자극하는 것도 일종의 행복을 위한 작업이 될 수 있다. 행복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 우리도 프랑스인들처럼 행복을 만들어내는 성공을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