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의 필요성

비워내는 것은 채우기 위한 선행 작업이다.

by Ryan mn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멍 때리며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좋다. 밤새 꿈 속에서 무슨 생각들과 활동들을 했는지는 기억이 희미하지만 수면 상태에서도 두뇌가 일정시간은 켜져 있었던 게 분명하다. 오히려 잠에서 깬 아침이면 두뇌 가동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 의식적으로 비워내려고 한다. 머리를 식혀주고 정신을 차리며 휴식을 취하려고 한다. 커피 한잔을 내려서 마음이 놓이는 공간에 가져와서 한 모금, 한 모금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바쁜 직장인의 특성상 자주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출근시간이 없는 재택근무 날이거나 여유있는 주말이면 꼭 그런 시간을 가져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비워내는 것은 채우기 위해 필요한 선행 작업이다.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새로운 것이 들어오려면 현재 가진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고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간을 인테리어 한다고 생각해보자. 새로운 집을 얻었고 고쳐나갈 계획이 있다. 그 중에서도 욕실에 한정하여 이야기를 해보자. 욕실을 수리한다면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진행할 수 있다. 올철거와 덧방으로 나눈다. 구분 짓는 기준은 이전에 시공되어 있는 타일을 철거하는 정도의 차이다. 올철거는 말 그대로 현재 붙어있는 모든 타일을 떼어내고, 드러난 시멘트 바닥과 벽면 위에 새롭게 타일을 시공하고 욕실을 채울 자재들을 설치한다. 반면 덧방을 한다면 비워내는 정도가 간소화된다. 욕실 철거에 있어서 시간과 노력이 가장 많이 필요한 것은 타일을 떼어 내는 것인데, 타일 철거를 다른 자재를 설치하는데 무리 없을 정도만 진행한다.

올철거가 많은 노력을 들여서 새롭게 시작하는 완전한 새로움이라면, 덧방은 합리적인 인풋으로 적절한 아웃풋을 낸 효율적인 새로움이라고 할 수 있다.두 시공 모두 욕실을 새롭게 만든다는 것에서는 결이 같으나, 목표하는 정도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비워내는 깊이가 다르다.


다음은 심리적인 비움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유시민 작가는 ‘어떻게 살것인가’에서 삶의 방향을 논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 어떠한 인간이든 저 4가지를 하면서 삶을 꾸려나간다는 것이다. 물론 그 방식과 비중과 빈도는 모두가 다를 것이다. 각각 개인의 선택과 책임으로 이뤄질 것이다. 우리의 마음도 4가지 방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놀이의 방, 일의 방, 사랑의 방, 연대의 방. 인생을 살아가며 각 방을 인테리어한다. 어떤 목적과 목표로 방을 구성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결정한다. 현재 상태는 어떤지 점검하고 앞으로의 계획도 그려본다. 그것은 마음의 방들을 채워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채우는 것에 집중하기 때문에 선행되어야 할 비움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비워내는 것이 있어야 채울 공간이 생긴다. 적어도 가진 것을 차곡차곡 정리는 하여야 자투리 공간이라도 생긴다.


멍 때리며 커피를 마시는 것이 좋은 이유는 채우고 싶은 욕망이 컸기 때문이었다. 많은 것을 넣고 싶은데 공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미 마음의 방이 상당히 채워졌을 확률이 크다. 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다니며 채움의 중요함은 매일 배워왔지만 비움의 역할은 쉽사리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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