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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Choi Feb 08. 2023

<일타 스캔들>과 학원의 추억

80년대생의 Latte is horse.

드라마 <일타 스캔들>이 인기다.


와이프가 열심히 보고 있길래, 나도 옆에 앉아 몇 번 같이 본 적이 있었다. 요즘 시대의 학원가 풍경이 나오고, 연예인급의 인기를 구가하는 일타 강사와 고등학생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정경호와 전도연의 자연스러운 연기도 꽤나 볼만하다.   



#1_Latte is horse.


나 역시, 강남에서 초중고를 나온 덕분에, 90년대 강남 학원가를 충분히 흠뻑 경험했었다.  


그 당시에는 손선생(손주은 선생님, '메가스터디' 창업자)이 가장 유명한 일타 강사였다. 수능 사회탐구 영역을 가르치셨는데, 당시 통합교과 문제가 유행하면서 그런 유형의 문제풀이에 도움이 많이 됐던 듯하다. 이 분의 특징은 '분필'과 '쌍욕'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자기 강의 때 조금이라도 졸거나 집중 안 하는 학생이 있으면, 분필을 그 애 얼굴에 집어던지고 쌍욕을 퍼붓기도 했다. 분필은 어쩜 그렇게 던지는 족족 잘 맞추시던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도 잠깐 등장했던 서연학원 김삼용 선생님도 기억에 남는다. 강남에서 꽤나 유명했던 수학 강사였는데, 애들을 엄청 패면서 가르치셨다. 한 번 수업하면 정석 책에 있는 문제 2~3개 정도만 푸는데,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가끔은 어디서 어려운 문제를 가져와서 맞추는 사람한테 만원 준다 하고 문제내고, 칠판에 침을 뱉고, 거기에 돈을 붙이고, 머리로 비비기까지... 쇼를 했었다.


수업내용도 내용이지만, 맞은 기억이 대부분인데, 수업 직전에 쪽지 시험을 봐서 틀리면 앞으로 불려 나가서 파란색 청테이프가 둘둘 말린 50cm 정도 길이의 긴 막대기로 종아리를 맞았다. 그리고 한 번 맞으면 종아리에 피멍이 들었다. 쪽지 시험은 <수학의 정석> 책에 나온 예제나 연습문제를 그냥 복사한 것이었는데, 정석 책을 달달 외우면 풀 수 있는 문제들이었지만, 그걸 또 못해가서 어찌나 맞았던지. 아직도 내 이름이 불릴 때의 부끄러움과 맞을 때의 공포가 생생하다.


<일타 스캔들>의 '올케어반'과 비스무리한 그룹 과외도 했었다. 주변 고등학교에서 나름 공부 잘하는 친구들의 엄마들이 모여 유명 강사를 섭외하고, 학원 교실 하나를 빌려 거기서 수업을 들었었다.


중학생 때는 당시 선릉역에 있었던 한국학원에서 단과 강좌도 들었는데, 인기 강사의 경우에는 마감이 되기 전에 수강 등록을 해야 해서, 해도 뜨기 전에 학원에 달려가서 줄을 서거나, 엄마가 미리 가서 등록을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90년대 강남 학원가의 풍경이었다.



#2_서울대 나온 아빠가 제일 위험하다.


학원에 가서 수업을 들으며, 가르치고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분명 있음을 실감했다. 혼자 책을 보고 공부할 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외워지지도 않던 것이 학원에 가서 설명을 들으면, 머리에도 쏙쏙 들어오고 암기가 잘됐다. 그래서 지금도 학원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적극 공감하는 편이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마음의 저항이 크다.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이런 말들이 웅웅거린다.

"공부는 결국 혼자 하는 거다. 그리고 잘하는 애들은 어디 가나 잘한다. 사는 곳이 무슨 상관이냐."


러던 중, 최근 브런치에서 발견한 이정원 작가님의 글에 공감했다. 이 글에 나온 서울대 아빠들의 모습을 요약하자면, 대략 이렇다.

"내가 공부 잘해봤는데, 니들처럼 그렇게 하는 거 아냐. 우리 때는 그런 거 안 하고도 공부 잘했어."



그래서 서울대 나온 아빠가 제일 위험하다. (나 역시도...) 내가 잘해봤으니까. 고집이 세다. 내 방식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리고 이걸 인정해야 할 때가 온다.



#3_자녀 교육이란


공부를 잘한다 하여 성공하는 시대는 이제 났다. 하지만 자식이 나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더 훌륭하게 자라주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같은 강남이라도, 청담동과 대치동은 분위기가 다르다고 한다. 청담동에는 자산이 많은 부자들이 많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가 많고 그래서 교육열이 그렇게 세지 않은데, 대치동은 부모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인 경우가 많아 자신이 일궈온 경제적 수준을 자식도 유지하게끔 하기 위해 열심히 학원을 보내며 자녀의 공부에 목숨을 건단다.


사실 어느 정도 공감되는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식에게 물려줄 자본이 많다면, '공부'가 아닌 선택지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내 경제적, 사회적 수준이라도 자식이 유지할 수 있게 하려면, 그리고 많지 않은 기회라도 잡게 하기 위해서라면 '공부'라는 선택지는 빼놓기 어려운 대안이다.


뭣도 모르던 초보 부모 시절에는 와이프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애 하고 싶은 거 시켜야지 무슨 공부냐. 공부하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서 애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게 해야지."


하지만 지금은 그 '다양한 경험'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말이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자녀의 다양한 경험에는 돈, 시간, 부모의 노력과 희생이 뒤따를 수밖에 없기에. 부모가 된 지금, 나는 이제 현실을 봐야 한다.


학생이었던 그때 그 시절과 부모가 된 지금의 나. 한 아이를 키우고 교육시키는 일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임을 새삼 실감한다. 


드라마 <일타 스캔들>. 나에게는 학창 시절의 추억과 현재의 고민을 일깨운 드라마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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